주간동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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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소냐 한우냐

농림부-축협, 양보없는 신경전… 농림부 “수입쇠고기 늘려라”에 축협 강력 반발

  • 입력2006-07-03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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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소냐 한우냐
    설을 코앞에 두고 선물세트용 쇠고기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농림부와 축산업협동조합 등 생산자단체간에 쇠고기를 둘러싼 신경전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농림부가 내려보낸 공문 한 장이 전부였다.

    농림부는 지난해 12월9일 한국슈퍼체인협회와 교육부 등에 공문을 보내 수입쇠고기의 판매-사용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슈퍼체인협회에 발송한 공문에서는 소값 안정을 위해 수입쇠고기를 이용해 갈비 선물세트를 만들어 성수기에 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낸 공문에서는 정부가 수매해 방출한 한우가 모두 소진되었으니 학교 급식에서 수입쇠고기 공급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지방조직의 제보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축협 등 생산자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한우 사육농가 등 생산자 단체들은 김성훈 농림부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고 대대적인 신문광고 공세를 시작했다. 농림부도 사태가 의외로 크게 번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농림부는 축산국장을 전국한우협회 등 생산자단체에 보내 이 공문이 농림부의 본의가 아니었음을 해명하는 등 유감을 표명했고 공문을 전결 처리해 내려보낸 조규담 축산물유통과장을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축협과 교육단체들에서 성명전을 계속하자 이번에는 직위해제 당사자인 조규담 전축산물유통과 장이 농림부 홈페이지에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호소문을 띄워 축협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또다른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조과장은 이 호소문에서 슈퍼체인협회와 시도 교육청에 협조공문을 보낸 자신의 의도는 번식용 암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수입쇠고기를 적절하게 소비해 한우값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해명한 뒤 축협이 계속 선전공세를 펼치는 것은 한우농가 보호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김장관 퇴진과 협동조합 통합 반대를 노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축협이 이번 일을 문제삼으려면 쇠고기수입 판매업무를 포기한다는 선언부터 내놓으라’며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실명으로 게재된 이 호소문에서 보듯 농림부와 축협간의 신경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농림부 축산유통과 관계자는 “이 호소문이 개인 명의로 게재됐지만 농림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협동조합 통합논의 과정에서 관계가 좋지 않았던 농림부와 축협의 관계는 신구범 축협중앙회장이 국회에서 할복하는 해프닝을 벌인 뒤 더욱 악화됐다. 축협은 아예 농림부가 축협을 강압하거나 회유한 사례들을 열거하며 이 때부터 농림부가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왕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축협은 이를 위해 120쪽이나 되는 별도의 자료집을 발간해 농림부가 축협을 무시한 사례들을 조목 조목 열거하며 농림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농림부가 그동안 전국한우협회 창립총회나 농업인의 날 등 주요 행사에서 신구범 축협중앙회장만을 초청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의도적으로 축협을 따돌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림부 관계자는 “축협이 문제의 본질에 관계없이 사사건건 농림부와 김성훈장관을 물고늘어지는 것은 협동조합 통합에 저항하려는 의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농림부는 이번 공문 파동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오히려 지난해 12월10일까지 실시한 축협에 대한 감사 결과를 지난 1월14일 발표하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해 축협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라는 시선을 받아가며 축협중앙회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축협은 감사 일정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으나 농림부는 이를 묵살했다. 얼마 전 발표된 감사 결과는 축협이 부천 공판장 신축공사비 낭비, 수입 사료곡물 수송계약업무 부당처리 등 40건의 부당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농림부는 이에 따라 7명의 축협 관계자를 징계에 회부하고 3억1000만원을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농림부와 축협의 ‘여론 차지하기’ 신경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축협의 안승일홍보부장은 “축협이 농림부 기자실을 방문해 무슨 발표만 하려들면 농림부가 과거 자료를 재탕해 기자들을 빼돌리는 등 ‘물타기’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농림부는 축협이 수입쇠고기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나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파문으로 직위해제된 조모 과장은 “축협이 쇠고기수입 목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쇠고기를 수입하는데 앞장서 왔을 뿐 아니라 정부 수급조절용에 대한 보관 판매 위탁 등을 통해 1900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이익을 얻어 직원들 월급이나 복리후생비로 사용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고 반박했다.

    축협중앙회는 현재 쇠고기수입 면허를 가진 12개 실수입업체, 이른바 슈퍼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축협이 담당하는 수입쇠고기는 전체 판매량의 13% 수준. 쇠고기 등을 수입할 때는 면허를 가진 업체들만 수입에 참여할 수 있는데 축협이 이미 여기에 깊숙이 관여해 쇠고기수입의 과실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2001년으로 다가온 쇠고기시장 본격 개방을 앞두고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일단 대다수의 농업 관계자들은 농림부의 이 번 공문에 대해서만큼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유철호박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수입쇠고기 판매를 권장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농림부의 공문이 장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장 선에서의 조치라는 것을 누가 믿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공문 파동의 배경이 됐던 소값 폭등 가능성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와 생산자 단체의 시각마저 엇갈리고 있다. 농림부의 시각은 지난해 말 산지 소값이 300만원(500kg 기준)을 돌파하면서 한우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제2의 소값파동’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생산자 단체는 농림부의 이런 인식이 한우농가의 투매심리만을 부추길 뿐이라고 공격한다. 설 연휴를 보름 정도 앞둔 1월18일 현재 299만원대로 소값이 내리는 것은 오히려 ‘이상 하락세’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생산자단체간의 시각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시장개방을 앞둔 한우시장 안정대책을 마련하는 데에서도 농림부와 생산자단체들은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IMF 터널을 지나면서 쇠고기 수급상황이 겨우 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불거진 농림부의 공문 파동은 올해 7월로 다가온 협동조합 통합, 2001년으로 다가온 쇠고기수입 개방 등의 일정과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이번 파동은 단순히 공문 한 장이 빚은 해프닝이라기보다는 한우시장을 둘러싸고 올 한해 내내 벌어질 신경전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라는 것이 축산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설날 아침에 배달된 갈비선물세트를 뜯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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