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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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이든 정치든 가업에 귀천 있나?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11-21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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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질이든 정치든 가업에 귀천 있나?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명문대에 진학한 아들이 갑자기 가업을 잇겠다며 학업을 그만둔다.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겠다니 반가워해야 하건만 아버지는 결사적으로 말린다. 그 가업이란 게 다름 아닌 도둑질이었기 때문이다. 도둑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도둑질하는 것을 보며 자란 게 한이 돼 자식만은 반듯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조를 이뤄 한탕에 나서게 된다. 도둑질이 됐든 떳떳한 일이 됐든, 외모를 이어받듯 가풍도 면면히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패밀리 비즈니스’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가업이니 가문이니 하는 영예로운 말은 범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은 그 부조화 때문에 대부분 코미디물이 되기 쉽다. ‘가문의 영광’ ‘가문의 부활’ 등의 제목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은 가족이 어느 집단보다 단단한 결속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어떤 집단이든 가족 같은 결합 형식을 취할 때 가장 강력한 팀이 된다. 내부 결속은 물론 외부로부터는 신비함과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영화 ‘대부’에서 그려지는 마피아 세계가 후광을 얻는 것은 이 갱단이 혈연과도 같은 ‘가족’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범죄가 아닌 정치가 ‘패밀리 비즈니스’화 돼가고 있다. 사실 현대정치에 가업적인 요소는 범죄집단과 가문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현대 민주정치의 역사는 권력 선출에 핏줄이라는 전통적 요소를 씻어낸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최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남편의 뒤를 이어 아내가 당선된 것은 일단 퇴행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걸 정치문화가 후진적인 남미만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가. 현 후쿠다 총리도, 전임자 아베 총리도 모두 대를 이은 유력 정치인 집안이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도 클린턴-부시 집안 간에 4대째 교차 당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똑똑한 힐러리로선 억울한 일이겠지만 그의 인기가 클린턴 패밀리의 후광을 전혀 입지 않았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부시 왕조’보다는 적격이라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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