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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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 없는 ‘뻔한’사랑 담론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입력2004-10-04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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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움 없는 ‘뻔한’사랑 담론
    안진우 감독의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는 참으로 순진한 영화다. 순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영화는 순진하지만 순수하지는 않다. 오히려 영악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영화가 겉으로 표방하고 있는 전략은 대략 두 가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착한 영화’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친 폭력도 선정적인 섹스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달콤한 키스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일종의 러브스토리인데도 말이다. 말하자면 얌전은 있는 대로 다 떠는, ‘무균질’을 추구하는 천사표 영화다.

    이런 전략을 세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는 이른바 조폭영화들이 한국 영화판을 폭력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시기였다. 거칠디거친 폭력적 화면에 찌든 관객들이 그런 유의 영화들에 식상함을 느꼈다면, 좀더 평화로운 세계를 다룬 영화들로 눈길을 돌릴 법하지 않겠는가.

    그런 징후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역시 ‘무균질’적인 착한 영화를 표방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전국 관객 300여만명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오버 더 레인보우’도 제작 시기로 볼 때 그런 틈새를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움 없는 ‘뻔한’사랑 담론
    그런데 단지 ‘착함’을 표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저절로 흥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으로...’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 관객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에 대한 향수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분명 향수영화다. ‘집으로...’에서 나타난 것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오버 더 레인보우’는 대학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 사랑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두 번째 전략이다.

    향수영화를 다른 말로 ‘복고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전에도 복고를 내세운 일련의 영화들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금’이나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랬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곽경택 감독의 ‘친구’도 비록 조폭영화로 싸잡아 불리기는 하지만, 넓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향수영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오버 더 레인보우’는 위의 영화들을 뒤따라 새로운 흥행 대작으로 부상할 잠재력을 지닌 화제작인가. 이에 대해 필자의 생각은 다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흥행을 예측한다는 것은 신의 소관이라고들 하지만, 이 영화에 뇌관(雷管)이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친구’의 경우 유오성의 카리스마와 장동건의 비장미가 없었더라도 대박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집으로...’에서 외할머니와 손자 간의 화해라는 모성애의 신화가 없었더라도 관객의 발길이 이어졌을까?

    새로움 없는 ‘뻔한’사랑 담론
    ‘오버 더 레인보우’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충격적 요소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기존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진부한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에 이르는 선남선녀의 운명적 사랑이야기다. 대학 시절 사진부 동아리였던 남녀 주인공 진수(이정재)와 연희(장진영)가 그때는 그냥 철없이 스쳐 지나쳤지만 좀더 성숙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확인해 간다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그런데 감독은 이런 소재의 진부함을 면피할 방편으로 부분기억상실증을 도입했다. 이것은 진수가 교통사고로 인해 앓게 되는 증세인데, 좀 억지스럽다.

    이것은 ‘듀 에 마키나’, 즉 외부(신)의 도움의 손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야기의 개연성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다. 지금의 기억에 따라 과거가 그냥 짜 맞춰진다는 인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희가 진수의 부분기억상실증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간택당하는 수동적 위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도록 설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설정으로 영화는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남자의 사랑 쟁취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오버 더 레인보우’는 기존의 사랑에 관한 담론에 새로운 어떤 것도 보태지 못했다. 감독은 그저 영롱하게 빛나는 무지개의 허상에 이끌리는, 사랑에 관한 남근적 팬터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선정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이 순진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새로움의 추구를 단념한 사람들이 기댈 곳은 과거의 향수뿐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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