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욱 전 국방부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 2013년 11월 청와대 국방비서관 재직 시절 모습이다.
7월 초 국방부는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관련 활동이 벌어진 시기 사령관을 맡았던 연제욱, 옥도경 두 장성을 불구속 입건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8월 초 이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군 검찰에 송치하겠다는 게 국방부 조사본부의 내부 방침. 지난해 12월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조사본부는 “두 사람이 정치 관여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후 수사 방향은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의 입건 소식을 전하며 국방부 측은 “단순히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것뿐 아니라 정치 댓글 작성 과정에서 일정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입건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형사처벌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이유다.
총 3만여 건으로 알려진 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의 정치 관련 글은 대부분 연 전 사령관의 재임 기간(2011년 11월~2012년 10월)에 집중됐다. 그 직후 그가 영전한 국방부 정책기획관은 장관을 대신해 사이버사령부를 관할하는 자리. 청와대로 이어지는 ‘승승장구 이력’도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연 전 사령관은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상당 기간 자리를 지키다 4월 정기인사 당시 육군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이동했다. 군 안팎에서는 조사본부의 사건 송치와 군 검찰의 기소 여부에 따라 전역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 명석함과 성실성을 두루 갖춘 뛰어난 인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육군 문화에서 이처럼 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이버사령부 사건이 터졌을 때 의외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능력의 소유자가 ‘선을 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2013년 12월 19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의혹 수사를 진행 중이던 백낙종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왼쪽). 2011년 3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2박 4일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현지 파견부대인 아크부대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의 말이다.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는 성격과 정치 개입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함께 일했던 상관들은 “정치적으로는 무색무취에 가까운 실무형”이라 말하고, 동기생들은 “질투를 부를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평한다. 부하직원들에게는 “모시기 쉽지 않은, 전형적인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리더”였다. 눈앞의 승진이나 성공을 위해 무모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망가진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그를 아는 이들 대부분의 평가다.
그랬던 그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연 전 사령관의 부친은 7대 국회의원(전국구)을 지낸 연주흠 전 연흥산업 회장(2004년 작고)이다. 육사 1학년 때 독일 육사 유학생에 선발돼 출국한 연 전 사령관이 방학 기간 부친과 함께 유럽여행을 했을 정도로 유복했다는 게 가까운 지인들의 회고. 일반인은 출국 자체가 쉽지 않았던 1970년대 후반 분위기를 감안하면 ‘가난한 인재들의 탈출구’에 가까웠던 당시 육사 동기생들의 질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가늠할 만하다.
3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1983년 임관한 연 전 사령관은 야전장교를 거쳐 영관급으로 승진한 후로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부서에서 군사외교나 안보정책 실무를 주로 담당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2001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그가 쓴 석사학위 논문 제목은 ‘21세기 한미동맹의 변화방향에 대한 연구’. “냉전적 대치구도하에서 성취된 한미동맹 관계의 기본틀은 변화에 더 유연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전향적인 관계 발전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핵심 주장은 전통적 보수우파의 논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독일 유학을 거친 육군 장교들은 대체로 전방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형보다 정책통에 가깝다. 기획력이나 행정능력이 탁월하다 보니 청와대나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에 파견근무를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잦았다. 연 전 사령관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2006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 파견된 그는 특유의 성실성으로 상관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당시 NSC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각 부처에 “가장 뛰어난 인재를 추천하라”고 지시해 받았을 뿐, 본인들이 파견을 자원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게 이 무렵 NSC 관계자들의 설명. 그러나 그 기회가 악연으로 뒤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살생부(殺生簿).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군 사정당국이 주축이 돼 노무현 정부에 ‘부역했던’ 장교들의 명단을 정리해 만들었다는 문서다. 청와대 NSC나 국방비서관실, 국회 연락단 등에 파견돼 일했던 중·대령급 장교들이 그 대상이라는 소문이 육군 전체에 파다했다. 본인들 의사와는 관계없는 파견이었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당시 몇몇 군 출신 실력자들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챙기고자 억지로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했다”고 잘라 말한다. 경쟁자들을 견제하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 다른 능력 있는 장교들을 장군 승진 대상에서 밀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견강부회에 청와대가 부화뇌동한 결과라는 시각이다.
진급과 탈락,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
연 전 사령관은 당시 희생자로 지목된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9년 유력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별을 달지 못하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진급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10년의 경우가 좌절감을 가장 크게 느꼈으리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 무렵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출과 관련해 UAE 측이 강하게 요구했던 두 나라 사이의 국방협력을 책임지는 태스크포스(TF)를 맡았다.
극도의 보안 속에서 추진된 당시 프로젝트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에만 직접 보고되는 주요 사안이었고, 연 전 사령관은 김 장관과 함께 UAE를 직접 방문하는 등 사실상 전체 실무를 책임졌다. 원전 수출 성사로 이어진 프로젝트는 2010년 12월 UAE 특수부대의 훈련을 담당하는 국군 아크(Akh)부대 파병으로 이어진다. 파병부대의 성격을 두고 다양한 논란이 있었지만, 정권 차원에서 보자면 더할 나위 없는 공(功)이었다.
그러나 그해 인사에서도 그는 장성 진급에 실패한다.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살생부’와 이를 만든 이들의 입김 때문이라는 후문도 한결같았다. 뜻밖의 기회가 열린 것은 2010년 말 김관진 장관이 부임하면서. 이듬해 가을 인사에서 국방부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심사대상을 4∼7년 차까지 확대했다”며 이른바 ‘살생부’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진 이들을 장성으로 진급시킨다.
2013년 10월 22일 국방부 조사본부가 정치 댓글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서울 용산 국방부 내 국군사이버사령부 건물.
“대내 심리전은 분명 사이버사령부에 하달된 고유 임무 중 하나였다. 평범한 군인이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행위 자체에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게 선거 시점에 야당이나 야당 측 후보를 비난하는 게시물로 이어지는 경우다. 실무자에게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범죄와 임무를 가르는 중대한 차이다. 이를 구분하는 게 바로 사령관이 맡아야 할 몫이었으나, 그는 실패했다.”
상당수 전·현직 안보부처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던 연 전 사령관의 경험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인 능력이나 성향과 관계없이 ‘밉보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겪은 후로는 자신의 꼬장꼬장한 원칙주의를 고집할 수 없게 됐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 다른 전직 군 관계자의 말이다.
“진급한 이들이나 떨어진 이들이나 능력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다. 진급 경쟁이 거세질수록 능력 외 다른 변수들이 한층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해당 특기 내에서 누가 가장 탁월한 전문성을 갖췄는지보다,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가 내 말을 잘 들을까를 먼저 고려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장교라도 이 분위기 속에서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그러한 추세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 전 사령관 등을 ‘구제’하며 “삐뚤어진 인사를 바로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던 2011년 하반기 인사는, 그러나 2년여 뒤 거센 역풍에 휘말린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정부에서 군 최고수뇌부를 역임했던 이들이 대거 안보당국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자,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인물들이 연이어 승진을 거듭하는 결과가 나타난 것. 연 전 사령관 역시 2012년 다시 한 번 임기제 형식으로 진급해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 된다. 2년 뒤 전역하는 조건으로 이뤄지는 임기제 진급을 연거푸 한다는 것은 제도 취지 자체에도 맞지 않고 전례도 드문 편법이라는 뒷말이 쏟아져 나왔다.
‘정치화한 행보’의 참혹한 결과
2013년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이 ‘김관진 장관이 임기제 진급이라는 형태로 독일 육사 출신의 ‘자기 사람들’을 챙긴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했고, 이는 결국 그해 10월 장 전 사령관의 전격 해임과 ‘기무사 물갈이’ 파동으로 이어진다. 연 전 사령관이 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시점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이 터진 직후. 정권이 오가면서 선후배, 동기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모습을 지켜본 군 고위장교 상당수가 ‘정치화한 행보’에 나선 참혹한 결과였다. 군 내부 기류에 정통한 한 군사전문가의 말이다.
“정치로 사람을 쓰고 버리는 문화가 자타가 공인하던 ‘탁월한 장교’를 망가뜨린 것인지, 연 전 사령관 본인이 정치 댓글 작성을 ‘애국충정의 일환’이라 굳게 믿었는지는 오직 본인만 알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당시 살생부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 여전히 군사정책에 왈가왈부하며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훤히 지켜보는 젊은 장교들에게 과연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또다시 정권이 바뀌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간동아’의 휴대전화 연락에 연 전 사령관은 통화를 거절했다. 그는 7월 20일 장인상을 당했다. 부고기사는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고 방문자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