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지펠 그랑데 스타일’.
와이파이 확대 등 꽃피는 시장
“아스파라거스.”
4월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LG전자 서초 연구개발(R·D)센터. 냉장고에 달린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에 대고 “아스파라거스”라고 외치자 화면에 아이콘이 떴다. 아이콘을 눌러봤다. 화면에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냉장고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보가 떴다. 유통기한은 냉장고에 아스파라거스를 넣을 때 기록해둔 것이다. ‘레시피 기능’을 누르자 유통기한이 다 된 재료부터 순서대로 나열됐고, 이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요리 정보가 나왔다.
이것은 LG전자의 ‘스마트 매니저’를 탑재한 스마트 냉장고다. 주부라면 누구나 냉장고 구석에서 상한 채소나 두부를 발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넣어두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해 스마트 매니저를 설계했다. 냉장고에 식료품을 넣을 때 스마트 매니저에 기록해두면 알아서 빨리 먹어야 할 것을 알려준다. 625가지 요리 정보가 들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만약 냉장고에 있는 바지락으로 달래된장찌개를 끓이려고 하는데 두부와 달래가 없다면? 부족한 요리 재료는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장바구니 리스트를 만든다. 장을 보러 갔다 애호박이 냉장고에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면 이때도 스마트폰으로 냉장고에 있는 재료 목록을 확인한다.
사실 인터넷과 만난 냉장고는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등장했다. 10여 년 전 가격은 무려 900만 원.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 김영수 상품기획팀장은 “과거 인터넷 냉장고가 있었는데 콘셉트는 비슷하지만 비싼 컴퓨터를 냉장고에 얹는 식이라 가격대가 높았다. 게다가 사회 인프라망도 갖춰지지 않아 대중화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영하 HA사업본부장 사장도 “당시엔 LCD가 비쌌다. 지금은 850리터 대용량임에도 300만 원대인 걸 보면 진정 스마트 가전을 실현할 수 있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6년 삼성전자는 ‘LCD 홈패드’를 갖춘 ‘스마트 지펠’을 내놓았다. 무선 LCD 홈패드는 TV와 라디오뿐 아니라 푸드매니지먼트, 터치스크린 기능까지 갖췄었다. 마치 냉장고에 태블릿PC가 달려 있는 식이었다.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당시 스마트 가전 시장은 설익었다. 집 안에 와이파이 환경을 마련해둔 곳도 많지 않았고, 홈패드의 개념도 생소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스마트 TV의 등장으로 와이파이 환경을 구축한 가정이 급증했다. 와이파이 개념도 널리 퍼졌고, 다른 스마트 기기와도 쉽게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 가전 시장이 꽃피울 만한 제반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편리함’과 ‘절전’ 두 토끼 잡기
가전 기기에도 ‘스마트’ 바람이 불면서 스마트 가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휴대전화로 에어컨을 작동하는 ‘하우젠 스마트 에어컨’을 내놓았다. 이 에어컨은 네트워크 기능인 ‘스마트온’을 탑재해 더운 날 실내를 미리 시원하게 해 놓고 싶거나, 외출 시 에어컨 전원을 껐는지 걱정될 때 언제 어디서든 휴대전화로 조정,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외부에서 작동 지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집 안에 설치된 무선공유기를 통해 지시를 전달받아 에어컨이 수행하는 식이다. 이에 LG전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기능으로 맞대응했다.
세탁기는 고장 진단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경쟁한다. 수도꼭지를 잠근 채 작동시키거나 세탁기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작동시키는 등의 사용 오류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버블에코 드럼세탁기’에 QR코드를 부착해 소비자가 오류 종류와 문제 해결 방법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LG전자는 세탁기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소리로 고장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스마트 진단’ 기능을 선보였다.
로봇청소기의 변신도 눈에 띈다. 요즘 로봇청소기에는 청소 구역 확인 등을 위해 카메라를 달아놨다. 로봇청소기에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면 밖에서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집 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로봇청소기가 집 안 감시자 구실을 하는 셈이다. 조명 기능도 있기 때문에 깜깜한 실내에서도 내부 상황을 외부의 집주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로봇청소기를 조정하면서 다른 스마트 가전 기기에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스마트 가전의 한 축이 ‘편리함’이라면 다른 한 축은 ‘절전’이다. 전기요금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요금이 가장 비싼 시간대에는 가전제품이 스스로 절전운전을 하는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이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가장 화제가 되는 스마트 가전의 특징이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어두기만 하면 알아서 전기 값이 가장 싼 심야시간에 작동하는 식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파이크는 전 세계 스마트 가전 시장이 스마트 그리드 제품 위주로 성장하고, 2015년에 6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그리드 가전의 핵심은 관련 정보를 처리하고, 잘 운용해 사용자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는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7월부터 전기요금을 계절별, 시간대별로 2~3단계 차등화한 요금제를 시범운영할 계획이라 스마트 그리드 기능은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LG전자는 4월 선보인 냉장고에 스마트 그리드 기능을 넣었고, 향후 세탁기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절전 기능을 갖춘 가전 기기도 있다. 바로 삼성전자의 하우젠 스마트 에어컨으로 정밀 센서를 이용해 사람 수와 위치, 거리를 인식하고 사람의 활동량을 측정해 움직임이 많은 사람에게는 강한 바람을, 적은 사람에게는 약한 바람을 보낸다. 또 에어컨이 켜진 순간부터 꺼질 때까지의 소비전력량과 그에 따른 전기요금을 아이콘으로 표시해줘 소비자가 전기사용량을 쉽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