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중동의 정치적 격동이 민주화 쪽으로 잘 마무리될지는 지구촌 많은 사람의 관심사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 숨어 멀리 중동지역에서 피어오르는 정치변혁의 불길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인물이 있다. 2001년 9·11테러로 5000만 달러(550억 원)의 현상금이 걸린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는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현 상황을 바라본다. 만일 어떤 언론사 기자가 그를 만나 인터뷰한다면, 그는 “이집트나 튀니지 시민혁명으로 정치 지도자를 덜 억압적인 사람으로 얼굴만 바뀐다면 결국 또 다른 친미정권이 출현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빈 라덴이 그리는 정치구도는 ‘이슬람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배제된 신정(神政)국가 건설’이다. 지구상에서 그런 나라를 찾는다면, 지금의 이란 또는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을 들 수 있다.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우두머리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고, 이란 헌법상 시아파 최고 성직자는 대통령보다 큰 힘을 지닌다. 빈 라덴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이 이슬람 신정국가가 되길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랍혁명의 불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번져 친미독재 왕정이 엎어지길 희망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린스턴대 미첼 도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중동 전문가가 지적했듯,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우디의 호메이니’가 되는 것이다.
빈 라덴과 아랍 보통사람의 생각 차이
2011년 봄 아랍 정치변혁 과정에서 빈 라덴을 우두머리로 한 알 카에다가 어떤 구실을 할지가 큰 관심거리다. 알 카에다는 지금까지 중동지역의 친미독재자들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꼭두각시이자 반이슬람 분자이며, 따라서 이들을 제거해야 마땅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런데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와 튀니지의 정치변혁 과정에서 이렇다 할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아랍거리에서 민주화를 요구한 보통사람은 빈 라덴이 바라는 것처럼 ‘이슬람종교가 힘을 쓰는 신정국가’보다 ‘서구적인 자유를 누리는 세속적인 민주국가’ 건설을 바란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꿈이 ‘이슬람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라면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은 ‘독재자 없는 나라, 부패와 가난이 없는 나라’를 꿈꾼다. 빈 라덴의 반미 투쟁조직인 알 카에다의 지도자들이 아랍계 미디어를 통해 “이번에 중동지역에 이슬람 율법을 따른 정부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해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관심 리비아가 아니라 사우디
둘째, 알 카에다의 힘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알 카에다는 9·11테러 이후 10년간 이어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 타격을 받은 탓에 구성원 상당수가 체포 또는 사살됐다. 우두머리인 빈 라덴을 비롯해 지도부는 모두 지하로 들어갔다. 미 정보당국도 지금은 알 카에다가 9·11테러 같은 작전을 펼칠 능력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참조할 만하다. 호주 출신의 테러 전문가 리어 패럴은 ‘포린 어페어스’ 2011년 3·4월호 ‘알 카에다는 어떻게 활동하나(How al Qaeda Works)’라는 글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이 알 카에다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펼쳤지만, 지금 알 카에다는 9·11테러를 저지를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며 서방세계를 향해 경고했다.
9·11테러 이후 지난 10년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웠어도 알 카에다가 소멸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서북부 아프리카를 뜻하는 마그레브 지역(알제리, 모로코, 니제르 등)을 활동 근거지로 삼아 투쟁해온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2002년 출범), 예멘을 근거지로 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 2009년 출범)는 그동안 외국인 납치, 폭탄테러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0년 11월 예멘 남부지역에서 한국석유공사의 송유관을 폭파한 것도 AQAP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권에는 빈 라덴의 반미투쟁에 공감하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며, 알 카에다는 그런 정서를 존립 기반으로 삼아왔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1년 봄의 중동 상황이 빈 라덴에겐 세력을 키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리비아처럼 중동지역에서도 민주화의 진통에 따른 혼란이 장기화한다면, 알 카에다가 다시 중동 정치의 어엿한 한 축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리비아 내전이 오래가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경우 알 카에다가 발호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중동 정치 상황의 변화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중동지역은 내전 양상을 보이는 리비아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미국으로의 안정적인 석유 수급 차원에서다. 민주화 요구를 둘러싼 바레인과 예멘의 정치적 위기에 미국이 관심을 쏟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친미독재왕정의 안정이 미국의 국가적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즈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골칫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댄 예멘이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2년간 철권을 휘둘러온 그곳은 반미정서가 강한 편인 데다, AQAP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미국이 특수부대 교관과 정보기관 요원을 파견해 예멘의 반테러 부대원을 훈련시켜온 이유도 AQAP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자들은 지금 AQAP를 ‘현존하는 걱정할 만한 위협’으로 여긴다. 잇단 민주화 시위로 사상자가 늘어나고 살레 대통령의 지도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자, 최근 미국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예멘의 불안정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악영향을 끼쳐 결국 빈 라덴이 바라는 대로 미국에 이롭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워싱턴의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문제로 밤잠을 설치게 생겼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의 산악지대에 숨어 있는 빈 라덴도 불면의 밤을 보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빈 라덴이 그리는 정치구도는 ‘이슬람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배제된 신정(神政)국가 건설’이다. 지구상에서 그런 나라를 찾는다면, 지금의 이란 또는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을 들 수 있다.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우두머리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고, 이란 헌법상 시아파 최고 성직자는 대통령보다 큰 힘을 지닌다. 빈 라덴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이 이슬람 신정국가가 되길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랍혁명의 불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번져 친미독재 왕정이 엎어지길 희망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린스턴대 미첼 도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중동 전문가가 지적했듯,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우디의 호메이니’가 되는 것이다.
빈 라덴과 아랍 보통사람의 생각 차이
2011년 봄 아랍 정치변혁 과정에서 빈 라덴을 우두머리로 한 알 카에다가 어떤 구실을 할지가 큰 관심거리다. 알 카에다는 지금까지 중동지역의 친미독재자들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꼭두각시이자 반이슬람 분자이며, 따라서 이들을 제거해야 마땅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런데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와 튀니지의 정치변혁 과정에서 이렇다 할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아랍거리에서 민주화를 요구한 보통사람은 빈 라덴이 바라는 것처럼 ‘이슬람종교가 힘을 쓰는 신정국가’보다 ‘서구적인 자유를 누리는 세속적인 민주국가’ 건설을 바란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꿈이 ‘이슬람 종교가 지배하는 나라’라면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은 ‘독재자 없는 나라, 부패와 가난이 없는 나라’를 꿈꾼다. 빈 라덴의 반미 투쟁조직인 알 카에다의 지도자들이 아랍계 미디어를 통해 “이번에 중동지역에 이슬람 율법을 따른 정부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해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관심 리비아가 아니라 사우디
둘째, 알 카에다의 힘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알 카에다는 9·11테러 이후 10년간 이어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 타격을 받은 탓에 구성원 상당수가 체포 또는 사살됐다. 우두머리인 빈 라덴을 비롯해 지도부는 모두 지하로 들어갔다. 미 정보당국도 지금은 알 카에다가 9·11테러 같은 작전을 펼칠 능력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참조할 만하다. 호주 출신의 테러 전문가 리어 패럴은 ‘포린 어페어스’ 2011년 3·4월호 ‘알 카에다는 어떻게 활동하나(How al Qaeda Works)’라는 글에서 “지난 10년간 미국이 알 카에다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펼쳤지만, 지금 알 카에다는 9·11테러를 저지를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며 서방세계를 향해 경고했다.
9·11테러 이후 지난 10년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웠어도 알 카에다가 소멸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서북부 아프리카를 뜻하는 마그레브 지역(알제리, 모로코, 니제르 등)을 활동 근거지로 삼아 투쟁해온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2002년 출범), 예멘을 근거지로 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 2009년 출범)는 그동안 외국인 납치, 폭탄테러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0년 11월 예멘 남부지역에서 한국석유공사의 송유관을 폭파한 것도 AQAP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권에는 빈 라덴의 반미투쟁에 공감하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며, 알 카에다는 그런 정서를 존립 기반으로 삼아왔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1년 봄의 중동 상황이 빈 라덴에겐 세력을 키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리비아처럼 중동지역에서도 민주화의 진통에 따른 혼란이 장기화한다면, 알 카에다가 다시 중동 정치의 어엿한 한 축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리비아 내전이 오래가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경우 알 카에다가 발호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중동 정치 상황의 변화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중동지역은 내전 양상을 보이는 리비아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미국으로의 안정적인 석유 수급 차원에서다. 민주화 요구를 둘러싼 바레인과 예멘의 정치적 위기에 미국이 관심을 쏟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친미독재왕정의 안정이 미국의 국가적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즈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골칫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댄 예멘이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2년간 철권을 휘둘러온 그곳은 반미정서가 강한 편인 데다, AQAP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미국이 특수부대 교관과 정보기관 요원을 파견해 예멘의 반테러 부대원을 훈련시켜온 이유도 AQAP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자들은 지금 AQAP를 ‘현존하는 걱정할 만한 위협’으로 여긴다. 잇단 민주화 시위로 사상자가 늘어나고 살레 대통령의 지도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자, 최근 미국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예멘의 불안정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악영향을 끼쳐 결국 빈 라덴이 바라는 대로 미국에 이롭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워싱턴의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문제로 밤잠을 설치게 생겼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의 산악지대에 숨어 있는 빈 라덴도 불면의 밤을 보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