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웨슬리 롤스 지음/ 노승영 옮김/ 초록물고기/ 416쪽/ 1만5800원
쓰나미와 대지진이 지구촌 곳곳을 점령한 요즘, 영화 속 재앙이 남 일 같지 않다. ‘설마’하는 일이 갑작스레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그려봐도 행동강령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테러 공격으로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면, 신종 박테리아의 출현으로 외출할 수 없다면, 기후 변화로 1년 내내 살인더위가 계속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먹고, 연락하고, 이동할 것인가.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은 생존 매뉴얼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미 육군 정보장교 출신 생존대책 컨설턴트. 그는 군에서 인간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절감했고, 그것을 계기로 생존을 고민하게 됐다. 이 책은 사회 안전망의 핵심으로 전력을 지목한다. 일주일 이상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그리드다운’ 사태가 오면 ‘전력 공급 중단→상수도 공급 중단→식량 공급 차질→법질서 붕괴→방화와 대규모 약탈 자행→도심 속 도적떼 출몰’ 순서로 사회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비상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들어 조언하지만, 체험만큼 효과적인 공부는 없다고 강조한다. ‘세계 종말 주말 체험’이 대표적. 주말 사흘 동안 두꺼비집을 차단하고, 가스와 수도 밸브를 꼭 잠근 채 소량의 식량으로 버티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에 피난처를 마련해 물자를 미리 저장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이렇게 재난 상황을 가상 체험하다 보면 자연스레 노하우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진을 예사로 겪는 일본인은 지진 상황 매뉴얼을 정확히 꿰고 있다. TV 속 일본인은 세상이 흔들리자 큰 기둥을 찾아 바짝 몸을 붙였다. 기둥 아래 반사각이 방어막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니다.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 대지진을 겪은 뒤에야 부랴부랴 관련 교육에 나섰다. 그것도 반짝 하고 지나갔지만.
미국에서는 일본 대지진 충격 이후 이 책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재앙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 결국 정부나 범지구적 차원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개인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되 이웃과 결속력을 다지는 노력도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물리적 재앙에 대비한 매뉴얼뿐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심적 재앙을 위한 매뉴얼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