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시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살기 좋은 곳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김은성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의 말이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뉴질랜드 기업의 대졸자 초임은 3500뉴질랜드달러. 우리 돈 2800만원 정도다. 뉴질랜드에서 좋은 직업을 얻으려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정도 실력이라면 차라리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으로 진출하는 게 직종에서든 연봉에서든 여러 가지로 낫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주축산업은 낙농과 조림(造林) 등 1차산업이다. 제조업 등 2차산업은 소규모 축산물 가공산업 정도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있는 제조업체들도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로 옮겨가고 있다. 관광, 서비스 등 3차산업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실업률도 높은 편.
김 센터장은 “매년 4~4.5%의 실업률을 기록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6%, 일각에서는 7~8%, 심하게는 1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경쟁력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내놓은 올해 뉴질랜드 실업률 전망도 7%대다. 그러다 보니 매년 뉴질랜드에서 가까운 호주나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 빠져나가는 젊은 층이 적지 않고, 올 들어서는 더욱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이 뉴질랜드로 진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업시장도 작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부족직업군’도 수시로 바뀐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뉴질랜드만큼 매력적인 나라도 없다. EIU가 영국 경제평화연구소와 지난 6월2일 발표한 국가별 ‘세계평화지수(GPI)’에서 뉴질랜드는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살기 편하고 평화롭다는 뜻이다.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자리한 섬나라. 인구는 약 400만명으로 유럽계 정착민과 마오리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000달러 정도. 기대수명은 79.9세로 80대에 육박한다. 현재 뉴질랜드 거주 한인은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2만명이 오클랜드 지역에 산다. 한인이 진출한 업종은 주로 청소업이나 음식업 등 자영업 분야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부족직업군인 요리사와 원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건너온 한인이 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 부족직업군이 뉴질랜드를 이끄는 주류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뉴질랜드는 한국 사회에 비하면 직업에 대한 차별이 적지만 그래도 주류사회는 엄연히 존재한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종으로 진출한 한인도 적지 않지만, 이들은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바로 언어장벽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라는 장벽을 극복한다면 어떨까? 재(在)뉴질랜드 한인회 정애경 이사는 “외형상 다른 나라보다 기회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물질적 욕심만 버린다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차별이 적고 문호가 넓은 곳이 뉴질랜드”라고 말했다.
“매력적인 다문화사회 기회는 항상 열려 있어”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경찰관 이진범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뉴질랜드는 그런 분위기를 거의 못 느껴요. 직업의 귀천도 없고, 차별도 없어요. 언어소통에만 문제 없으면 누구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될 수 있을 만큼 관대한 사회입니다. 대신 다문화를 포용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죠.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차별 발언을 하면 곧바로 징계를 당합니다.”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수사팀에서 근무하는 이진범(35) 씨는 인종과 빈부, 직업, 지위 등 사회적 귀천을 따지지 않는 다문화사회에 산다는 데 더없이 만족한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관심 있는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취업이나 이민을 적극 권한다.
이씨는 뉴질랜드의 한인 3호 경찰관. 경기고,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한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2001년 11월 이민 겸 취업을 위해 뉴질랜드로 향한 것은 앞서 뉴질랜드에 정착한 부모, 동생 등 가족 때문이다.
가족초대비자로 입국한 이씨가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직업이 필요했다. 첫 6개월간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는 청소용역이나 세차 등 잡일을 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운이 좋았던지 1년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
그 후로도 적성에 맞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많이 방황했다. 1년 정도 미니 식당(테이크아웃 식당)을 운영하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양념통닭 배달서비스도 해봤고, 3~4개월간 어학원에서 일하다가 다시 유학원으로 옮겨 1년 반을 보내기도 했다. 한인신문사에서 6개월간 기사도 쓰고 광고영업도 해봤다. 불규칙적인 업무에 월급도 적어 실망스러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사이 영어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이씨는 이때부터 뉴질랜드의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던 2005년 어느 날 우연히 경찰 모집공고를 보았다. 고교 졸업 이상의 학력에 언어소통이 가능하고, 신체가 건강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영어와 수학, 추리 등 각종 시험과 체력 테스트 등 통과 관문이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영어실력을 집중 평가하는 심층 인터뷰를 마치고야 실습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10시간씩 나흘 밤을 실습하면서 이씨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영어 때문이었다.
“경찰차를 타고 2인1조로 현장을 돌았는데, 라디오를 틀어놓고 경찰들끼리 대화하면서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의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건너온 한국 사람 가운데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다행히 평가가 좋게 나와 이씨는 실전 체력테스트 단계에 들어갔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중엔 100kg이 넘는 거구가 많아 웬만한 체력으로는 제압하기 힘들기에 과연 현장 배치가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최종 단계였다.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하려면 보통 6~12개월이 걸리는데, 이씨는 단 2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통과하고 그해 10월25일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교육기간은 5개월. 2006년 3월 졸업하고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 2008년 3월 정식 경찰관으로서 부임하면서 정부와 영구계약을 맺었다.
평화로운 나라 뉴질랜드에서도 경찰은 위험한 직종이다. 현장배치 첫 주에 범인을 검거하면서 얻어맞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추격전도 벌였다. 그래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게 이씨의 말.
근무 여건은 한국 경찰과 천지차이다. 14일 단위로 7일 근무 4일 휴식, 7일 근무 3일 휴식을 번갈아가며 일하고 초임연봉은 5만8000뉴질랜드달러다. 우리 돈 4800만원 정도로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많다. 올해 이씨의 연봉은 6만 달러로 올랐다.
복지 수준도 최상급이다. 일반 휴가 6주에 병가 2주, 기타 휴가 1주까지 합하면 1년에 2개월 정도 휴가를 얻을 수 있다. 뉴질랜드 경찰복무 규칙상 휴가기간에는 물론 근무 중간의 휴식기간에도 업무상 전화는 아무리 긴급한 사항이라도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이씨는 휴가기간에 가끔 한국을 찾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이젠 한국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뉴질랜드 주류사회 진입이 쉽지는 않지만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한국에선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뉴질랜드 농림부 검역부 검역관 김태헌
청정 생태계 국가인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제일 철저하고 까다로운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제공인 규격에 인정된 검역시스템을 갖춘 유일한 나라다.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국외에서 입국하는 모든 짐은 하나도 빠짐없이 검색대를 거친다.
다른 국가의 수장이 방문할 때도 예외가 없다. 다만 외교적 예우 차원에서 뉴질랜드 검역관이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해 사전 방역과 검역을 실시한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공식 방문했을 때도 뉴질랜드 검역관이 미리 한국에 와서 대통령 특별기의 방역은 물론 모든 수화물에 대한 검역을 마쳤다. 그때 한국을 찾은 검역관이 바로 김태헌(알렉스 김·31) 씨다.
김씨는 뉴질랜드의 농림부인 MAF(Ministry of Agriculture and Forestry)에서 검역 및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Biosecurity New Zealand(검역부) Clearance Services(통관서비스)팀 소속 공무원이다. 그의 주업무는 오클랜드 국제공항 내 보세구역(Biosecurity Control Area)에서의 입국카드 심사와 수화물 검역과 엑스레이 검사, 항공기 방역심사 및 내부검역 등이다. 4일 근무 후 4일 휴식을 취하고, 휴가는 매년 2개월 정도.
“저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껏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제가 이루고자 맘먹은 것은 다 이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국에서라면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1월. 1997년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해 2000년 초 제대했다. 복학하기 전 좀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으면서 영어를 익히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어학연수와 여행을 목적으로 적당한 나라를 찾다가 뉴질랜드를 선택하게 됐다.
김씨가 뉴질랜드를 선택한 것은 지구촌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바탕이 됐다.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인종차별이 적고 마음씨 좋은 백인과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 ‘지구상의 마지막 지상낙원’ 같은 이야기가 그를 매료시켰다. 2002년, 뉴질랜드에서의 1년은 김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는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현지인과 함께 집을 빌려 같이 생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문화를 익혔다. 얼마 후 미국과 캐나다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그의 영어실력은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다. 다음 해인 2003년 2월 김씨는 뉴질랜드 매시대(Massey University) 비즈니스학과에 입학하고 3월에 곧바로 결혼했다. 한순간에 뉴질랜드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한국에서 다닌 대학 기간을 인정받고 노력한 덕분에 매시대를 2005년 2월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 ‘노스쇼어 타카푸나 골프장’. 그곳에서 사무 및 운영관리자로 일했다. 뉴질랜드의 공무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내의 권유 때문이었다.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 좀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려면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MAF를 권유해서 결국 지원했죠.”
뉴질랜드에서는 영주권만 있어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 시민권이 필요한 곳은 내무부 등 뉴질랜드 국민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극히 일부 부서뿐이다. 2006년 11월 MAF에 임용됐을 때 그가 처음 지원한 분야는 사무 및 검역 보조관리직이었다. 그러다 4개월 후 시험을 통해 검역관으로 승진했다. 뉴질랜드에서 공무원 승진은 내부 지원자는 물론 외부 지원자가 함께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가능하다.
다만 내부 지원자에게는 약간의 혜택이 있다. 김씨도 이런 혜택 덕분에 검역관이 될 수 있었다. 검역관이 되려면 관련 학과의 학위를 소지해야 하지만, 김씨에게는 교육부 인증코스 1년을 추가로 마치는 조건으로 검역관으로 승진시켜준 것이다. 김씨는 올해로 검역관 3년차다. 근무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의 올해 연봉은 최대 7만 뉴질랜드달러로 우리 돈 5800만원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목표는 영어 잘하기였는데,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면서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같이 골프도 치고 낚시도 가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 영국에서도 통해” 법무법인 ‘필립 리’ 변호사 이관옥·양광모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은 과포화 상태다. 등록된 변호사만 1만명이 넘는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400만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니 변호사가 인구 400명당 1명꼴로 있는 셈이다.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2만여 명의 한인 교포를 대상으로 활동 중인 한인 변호사는 50명 정도. 한인 교포 400명당 한인 변호사 1명꼴로 뉴질랜드 전체 비율과 비슷하다. 뉴질랜드 법률시장에서의 서비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법무법인 필립 리의 이관옥(37·사진 오른쪽), 양광모(38) 변호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인 변호사들이다. 법인 이름 필립 리는 이 변호사의 영문 이름으로, 지난 1월 사무실 문을 열었고 3월 양 변호사가 합류했다. 두 사람은 오클랜드대 로스쿨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이. 한국에서 대학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은 이전까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전북 출신인 이 변호사는 전북대 자연과학대 분자생물학과 92학번. 한국 대학가에 어학연수 붐이 일던 1996년 1년간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많은 아쉬움을 갖게 했다. 결국 그 아쉬움은 귀국 1년 후인 98년 다시 뉴질랜드로 향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의 한 이민회사였다. 주로 한인들의 이민 수속을 대행하거나 상담해주는 일을 맡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주권도 취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졌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고객에게 조언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마침 로스쿨에 다니던 회사 사장으로부터 정보도 좀 얻고, 고객은 물론 저를 위해서도 로스쿨에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결심했죠.” 2000년 로스쿨에 입학한 이 변호사는 2004년 12월 졸업해 13주의 교육연수를 받고 2006년 1월 현지 로펌에 들어갔다.
강원도 춘천 소재 한림대 법대 출신인 양 변호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인 1997년 영어 어학연수를 위해 뉴질랜드에 왔다가 곧바로 자리를 튼 케이스. 오클랜드대에서 인터넷법을 전공으로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2년간 로스쿨 과목을 이수한 뒤 2003년 초 변호사시험에 통과했다. 그해 9월 연수를 마치고 다음해 4월부터 로펌에서 일했다. 양 변호사는 “솔직히 제대 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안 돼서 어학연수를 결심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 변호사까지 됐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나오기도 어렵다. 과포화된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을 보면 그다지 매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로스쿨과는 다른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은 4년제다. 수업료는 유학생의 경우 1년에 1만5000~2만 뉴질랜드달러(약 1250만~1670만원)로 꽤 비싸지만 영주권을 취득하면 6000~7000달러(500만~600만원) 선으로 내려간다.
뉴질랜드의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나 영국에서도 인정받는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호주 변호사 자격증은 곧바로 받을 수 있고, 영국에서도 기본 1개 과목(법 원리)만 수강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에 능통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 미국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다면 한국이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는 셈이다.
이 변호사도 “앞으로 국가 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5년 후 한국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뉴질랜드 오클랜드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김은성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의 말이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뉴질랜드 기업의 대졸자 초임은 3500뉴질랜드달러. 우리 돈 2800만원 정도다. 뉴질랜드에서 좋은 직업을 얻으려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정도 실력이라면 차라리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으로 진출하는 게 직종에서든 연봉에서든 여러 가지로 낫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주축산업은 낙농과 조림(造林) 등 1차산업이다. 제조업 등 2차산업은 소규모 축산물 가공산업 정도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있는 제조업체들도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로 옮겨가고 있다. 관광, 서비스 등 3차산업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실업률도 높은 편.
김 센터장은 “매년 4~4.5%의 실업률을 기록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6%, 일각에서는 7~8%, 심하게는 1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경쟁력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내놓은 올해 뉴질랜드 실업률 전망도 7%대다. 그러다 보니 매년 뉴질랜드에서 가까운 호주나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 빠져나가는 젊은 층이 적지 않고, 올 들어서는 더욱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이 뉴질랜드로 진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업시장도 작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부족직업군’도 수시로 바뀐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뉴질랜드만큼 매력적인 나라도 없다. EIU가 영국 경제평화연구소와 지난 6월2일 발표한 국가별 ‘세계평화지수(GPI)’에서 뉴질랜드는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살기 편하고 평화롭다는 뜻이다.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자리한 섬나라. 인구는 약 400만명으로 유럽계 정착민과 마오리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000달러 정도. 기대수명은 79.9세로 80대에 육박한다. 현재 뉴질랜드 거주 한인은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2만명이 오클랜드 지역에 산다. 한인이 진출한 업종은 주로 청소업이나 음식업 등 자영업 분야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부족직업군인 요리사와 원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건너온 한인이 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 부족직업군이 뉴질랜드를 이끄는 주류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뉴질랜드는 한국 사회에 비하면 직업에 대한 차별이 적지만 그래도 주류사회는 엄연히 존재한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종으로 진출한 한인도 적지 않지만, 이들은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바로 언어장벽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라는 장벽을 극복한다면 어떨까? 재(在)뉴질랜드 한인회 정애경 이사는 “외형상 다른 나라보다 기회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물질적 욕심만 버린다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차별이 적고 문호가 넓은 곳이 뉴질랜드”라고 말했다.
“매력적인 다문화사회 기회는 항상 열려 있어”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경찰관 이진범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뉴질랜드는 그런 분위기를 거의 못 느껴요. 직업의 귀천도 없고, 차별도 없어요. 언어소통에만 문제 없으면 누구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될 수 있을 만큼 관대한 사회입니다. 대신 다문화를 포용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죠.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차별 발언을 하면 곧바로 징계를 당합니다.”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수사팀에서 근무하는 이진범(35) 씨는 인종과 빈부, 직업, 지위 등 사회적 귀천을 따지지 않는 다문화사회에 산다는 데 더없이 만족한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관심 있는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취업이나 이민을 적극 권한다.
이씨는 뉴질랜드의 한인 3호 경찰관. 경기고,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한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2001년 11월 이민 겸 취업을 위해 뉴질랜드로 향한 것은 앞서 뉴질랜드에 정착한 부모, 동생 등 가족 때문이다.
가족초대비자로 입국한 이씨가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직업이 필요했다. 첫 6개월간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는 청소용역이나 세차 등 잡일을 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운이 좋았던지 1년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
그 후로도 적성에 맞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많이 방황했다. 1년 정도 미니 식당(테이크아웃 식당)을 운영하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양념통닭 배달서비스도 해봤고, 3~4개월간 어학원에서 일하다가 다시 유학원으로 옮겨 1년 반을 보내기도 했다. 한인신문사에서 6개월간 기사도 쓰고 광고영업도 해봤다. 불규칙적인 업무에 월급도 적어 실망스러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사이 영어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이씨는 이때부터 뉴질랜드의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던 2005년 어느 날 우연히 경찰 모집공고를 보았다. 고교 졸업 이상의 학력에 언어소통이 가능하고, 신체가 건강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영어와 수학, 추리 등 각종 시험과 체력 테스트 등 통과 관문이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영어실력을 집중 평가하는 심층 인터뷰를 마치고야 실습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10시간씩 나흘 밤을 실습하면서 이씨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영어 때문이었다.
“경찰차를 타고 2인1조로 현장을 돌았는데, 라디오를 틀어놓고 경찰들끼리 대화하면서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의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건너온 한국 사람 가운데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다행히 평가가 좋게 나와 이씨는 실전 체력테스트 단계에 들어갔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중엔 100kg이 넘는 거구가 많아 웬만한 체력으로는 제압하기 힘들기에 과연 현장 배치가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최종 단계였다.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하려면 보통 6~12개월이 걸리는데, 이씨는 단 2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통과하고 그해 10월25일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교육기간은 5개월. 2006년 3월 졸업하고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 2008년 3월 정식 경찰관으로서 부임하면서 정부와 영구계약을 맺었다.
평화로운 나라 뉴질랜드에서도 경찰은 위험한 직종이다. 현장배치 첫 주에 범인을 검거하면서 얻어맞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추격전도 벌였다. 그래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게 이씨의 말.
근무 여건은 한국 경찰과 천지차이다. 14일 단위로 7일 근무 4일 휴식, 7일 근무 3일 휴식을 번갈아가며 일하고 초임연봉은 5만8000뉴질랜드달러다. 우리 돈 4800만원 정도로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많다. 올해 이씨의 연봉은 6만 달러로 올랐다.
복지 수준도 최상급이다. 일반 휴가 6주에 병가 2주, 기타 휴가 1주까지 합하면 1년에 2개월 정도 휴가를 얻을 수 있다. 뉴질랜드 경찰복무 규칙상 휴가기간에는 물론 근무 중간의 휴식기간에도 업무상 전화는 아무리 긴급한 사항이라도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이씨는 휴가기간에 가끔 한국을 찾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이젠 한국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뉴질랜드 주류사회 진입이 쉽지는 않지만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한국에선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뉴질랜드 농림부 검역부 검역관 김태헌
청정 생태계 국가인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제일 철저하고 까다로운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제공인 규격에 인정된 검역시스템을 갖춘 유일한 나라다.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국외에서 입국하는 모든 짐은 하나도 빠짐없이 검색대를 거친다.
다른 국가의 수장이 방문할 때도 예외가 없다. 다만 외교적 예우 차원에서 뉴질랜드 검역관이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해 사전 방역과 검역을 실시한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공식 방문했을 때도 뉴질랜드 검역관이 미리 한국에 와서 대통령 특별기의 방역은 물론 모든 수화물에 대한 검역을 마쳤다. 그때 한국을 찾은 검역관이 바로 김태헌(알렉스 김·31) 씨다.
김씨는 뉴질랜드의 농림부인 MAF(Ministry of Agriculture and Forestry)에서 검역 및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Biosecurity New Zealand(검역부) Clearance Services(통관서비스)팀 소속 공무원이다. 그의 주업무는 오클랜드 국제공항 내 보세구역(Biosecurity Control Area)에서의 입국카드 심사와 수화물 검역과 엑스레이 검사, 항공기 방역심사 및 내부검역 등이다. 4일 근무 후 4일 휴식을 취하고, 휴가는 매년 2개월 정도.
“저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껏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제가 이루고자 맘먹은 것은 다 이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국에서라면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1월. 1997년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해 2000년 초 제대했다. 복학하기 전 좀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으면서 영어를 익히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어학연수와 여행을 목적으로 적당한 나라를 찾다가 뉴질랜드를 선택하게 됐다.
김씨가 뉴질랜드를 선택한 것은 지구촌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바탕이 됐다.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인종차별이 적고 마음씨 좋은 백인과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 ‘지구상의 마지막 지상낙원’ 같은 이야기가 그를 매료시켰다. 2002년, 뉴질랜드에서의 1년은 김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는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현지인과 함께 집을 빌려 같이 생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문화를 익혔다. 얼마 후 미국과 캐나다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그의 영어실력은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다. 다음 해인 2003년 2월 김씨는 뉴질랜드 매시대(Massey University) 비즈니스학과에 입학하고 3월에 곧바로 결혼했다. 한순간에 뉴질랜드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한국에서 다닌 대학 기간을 인정받고 노력한 덕분에 매시대를 2005년 2월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 ‘노스쇼어 타카푸나 골프장’. 그곳에서 사무 및 운영관리자로 일했다. 뉴질랜드의 공무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내의 권유 때문이었다.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 좀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려면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MAF를 권유해서 결국 지원했죠.”
뉴질랜드에서는 영주권만 있어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 시민권이 필요한 곳은 내무부 등 뉴질랜드 국민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극히 일부 부서뿐이다. 2006년 11월 MAF에 임용됐을 때 그가 처음 지원한 분야는 사무 및 검역 보조관리직이었다. 그러다 4개월 후 시험을 통해 검역관으로 승진했다. 뉴질랜드에서 공무원 승진은 내부 지원자는 물론 외부 지원자가 함께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가능하다.
다만 내부 지원자에게는 약간의 혜택이 있다. 김씨도 이런 혜택 덕분에 검역관이 될 수 있었다. 검역관이 되려면 관련 학과의 학위를 소지해야 하지만, 김씨에게는 교육부 인증코스 1년을 추가로 마치는 조건으로 검역관으로 승진시켜준 것이다. 김씨는 올해로 검역관 3년차다. 근무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의 올해 연봉은 최대 7만 뉴질랜드달러로 우리 돈 5800만원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목표는 영어 잘하기였는데,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면서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같이 골프도 치고 낚시도 가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 영국에서도 통해” 법무법인 ‘필립 리’ 변호사 이관옥·양광모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은 과포화 상태다. 등록된 변호사만 1만명이 넘는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400만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니 변호사가 인구 400명당 1명꼴로 있는 셈이다.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2만여 명의 한인 교포를 대상으로 활동 중인 한인 변호사는 50명 정도. 한인 교포 400명당 한인 변호사 1명꼴로 뉴질랜드 전체 비율과 비슷하다. 뉴질랜드 법률시장에서의 서비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법무법인 필립 리의 이관옥(37·사진 오른쪽), 양광모(38) 변호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인 변호사들이다. 법인 이름 필립 리는 이 변호사의 영문 이름으로, 지난 1월 사무실 문을 열었고 3월 양 변호사가 합류했다. 두 사람은 오클랜드대 로스쿨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이. 한국에서 대학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은 이전까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전북 출신인 이 변호사는 전북대 자연과학대 분자생물학과 92학번. 한국 대학가에 어학연수 붐이 일던 1996년 1년간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많은 아쉬움을 갖게 했다. 결국 그 아쉬움은 귀국 1년 후인 98년 다시 뉴질랜드로 향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의 한 이민회사였다. 주로 한인들의 이민 수속을 대행하거나 상담해주는 일을 맡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주권도 취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졌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고객에게 조언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마침 로스쿨에 다니던 회사 사장으로부터 정보도 좀 얻고, 고객은 물론 저를 위해서도 로스쿨에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결심했죠.” 2000년 로스쿨에 입학한 이 변호사는 2004년 12월 졸업해 13주의 교육연수를 받고 2006년 1월 현지 로펌에 들어갔다.
강원도 춘천 소재 한림대 법대 출신인 양 변호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인 1997년 영어 어학연수를 위해 뉴질랜드에 왔다가 곧바로 자리를 튼 케이스. 오클랜드대에서 인터넷법을 전공으로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2년간 로스쿨 과목을 이수한 뒤 2003년 초 변호사시험에 통과했다. 그해 9월 연수를 마치고 다음해 4월부터 로펌에서 일했다. 양 변호사는 “솔직히 제대 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안 돼서 어학연수를 결심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 변호사까지 됐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나오기도 어렵다. 과포화된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을 보면 그다지 매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로스쿨과는 다른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은 4년제다. 수업료는 유학생의 경우 1년에 1만5000~2만 뉴질랜드달러(약 1250만~1670만원)로 꽤 비싸지만 영주권을 취득하면 6000~7000달러(500만~600만원) 선으로 내려간다.
뉴질랜드의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나 영국에서도 인정받는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호주 변호사 자격증은 곧바로 받을 수 있고, 영국에서도 기본 1개 과목(법 원리)만 수강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에 능통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 미국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다면 한국이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는 셈이다.
이 변호사도 “앞으로 국가 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5년 후 한국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