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항으로 막 들어오는 오징어잡이 배(좌측사진). 시장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컨테이너 갤러리(중간사진). 시장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갤러리(우측사진).
이곳은 강원도 주문진의 수산물시장 옥상에 마련된 꽁치극장. 꽁치라는 이름만큼이나 펄펄 뛰는 극장이다. 1층에는 횟집, 2층에는 나이트클럽이 자리한 건물 위에 방치돼 있던 옥상을 활용해 만든 곳이다. 이곳에서는 주문진 대표 어종을 소재로 한 공연이나 상인극, 전문 공연팀의 공연이 매주 펼쳐져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시끌벅적 시장, 삶의 에너지를 뿜다
“주문진시장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듣자,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호기심은 바로 주문진으로 달려가게 했고, 눈 깜짝할 사이 주문진시장의 옥상 극장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주문진시장은 주말이면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인기 있는 시장이다. 아름다운 주문진항을 배경으로 한 수산시장은 항구에서 펄떡이는 수산물을 바로 공급받기 때문에 신선도나 가격 면에서 다른 곳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살아 있는 꽁치 서른 마리 만원!” “오징어 한 박스 만원!”이라는 힘찬 외침이 들려온다. 길거리에는 알이 통통히 박힌 도루묵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최근 주문진시장이 더욱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얼마 전부터 ‘문화’의 옷을 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화라고 해서 지나치게 고상하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장 상인들이 주축이 돼서 만든 문화, 주문진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난 것. 시장에 개성 있는 문화가 결합하면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추진해온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문전성시 프로젝트)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꽁치극장이 있는 수산물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외벽의 벽화였다. 푸른 바닷속의 물고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은 수산물시장다웠다. 꽁치, 명태, 양미리,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그림 속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런데 벽화의 아름다움보다 놀라운 것은 벽화를 그린 주인공이다. 유명 벽화업체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강릉에서 30여 년간 극장 간판을 그린 최수성 할아버지(70)가 직접 그렸다는 것. 최 할아버지는 꼬박 7일간의 작업 끝에 대형 벽화를 완성,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고 한다.
수산물시장 앞과 주차장에는 다소 생뚱맞은 컨테이너가 놓여 있는데, 여기도 문화공간의 하나다. 바로 컨테이너 갤러리인 것. 역할은 시장사람들의 사랑방이다. 한나절 밀려드는 손님을 맞느라 피곤한 상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기획됐는데, 벽에는 시장의 살아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상인들은 여기에 모여 옆집 누가 나왔네, 우리 집 꼬맹이가 나왔네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노랗고 파란 컨테이너는 시장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관광객에게는 물음표를, 주민들에게는 느낌표를 안겨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세요 보세요 주세요’ 신나는 싱쌩쇼
방치돼 있던 주문진 수산물시장 옥상에 마련된 꽁치극장. 주문진 대표 어종을 소재로 한 공연이나 상인극 등이 매주 펼쳐져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넣고 있다.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는 상인들에게 ‘싱쌩쇼’는 어깨와 허리를 풀어주는 구실을 한다. ‘싱쌩쇼’ 체조는 바다동물과 상인들의 몸짓을 기초로 만들어 따라하기도 쉽다. 굳어진 몸도 마음도 풀어지는 시간이다.
수산물시장 안 2층에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갤러리도 마련돼 있다. 옆집 손자 녀석의 귀여운 표정부터 분주히 아침을 가르고 가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 따끈한 국물이 피어오르는 풍경 등 시장의 아름다움이 흑백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2층의 흰 벽을 멋지게 채워주고 있다.
활어처럼 싱싱한 주문진시장을 재미있게 보는 또 다른 방법은 이름으로 보는 방법이다. 오징어, 황태, 쥐포, 멸치, 다시마, 꼴뚜기 등 전국에서 올라온 다양하고 우수한 건어물을 파는 건어물시장에 가면, 우리나라 지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충북 제천, 서울 경기 등 지역명을 가게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전국의 수많은 지역명이 간판에 걸려 있다. 왜 이런 이름을 쓰느냐고 물으니, 전국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란다. 역시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수산물시장 쪽으로 가면 지역명보다는 두꺼비네, 말쟁이네, 공주네, 쌍둥이네, 돼지네 등 귀여운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말쟁이네는 주인 할머니가 ‘말짱만원’이라고 외치며 손님을 불러모으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란다. 공주네는 주인아주머니의 딸이 예쁘기도 하지만, 진짜 이름이 ‘공주’이기 때문이라고. 이름에서부터 유머가 넘쳐흐른다.
주문진시장 사람들의 유머와 끼는 상인극단 ‘놀래미’에서도 드러날 예정이다. 놀래미는 연극 활동을 통해 일상의 즐거운 재미를 찾아주는 모임으로,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프로그램. 꽁치극장에서 놀래미의 공연을 볼 날도 머지않았다.
주문진시장을 돌아보면서, 문화와 시장이 어우러진 모습도 훌륭했지만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현지 사람들과 한층 가까워졌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벽화가 그저 벽화가 아니라, 이곳 주민이 직접 애정을 가지고 그린 벽화라는 것, 갤러리 사진 속의 인물이 시장에서 꽁치를 팔던 그 아주머니라는 것, ‘싱쌩쇼’를 하는 이들이 8등신 내레이터 모델이 아니라 파란색 앞치마를 두른 뽀글머리 할머니라는 것. 이것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달력을 찾고 있었다. 다음 달에는 언제 주문진에 갈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