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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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 ‘신앙 충돌’ 神이여, 어찌하오리까?

관혼상제 둘러싸고 심각한 종교전쟁 … 他 종교 이해와 존중만이 해결책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6-25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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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간 ‘신앙 충돌’ 神이여, 어찌하오리까?
    “당신이 상대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그를 대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최항석(가명) 씨는 요즘도 이 말을 자주 되뇐다. 그는 “나의 믿음이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의 믿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최씨를 둘러싼 환경은 그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조차 “나의 믿음이 소중하기 때문에 당신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했다. 믿음의 강요는 종교전쟁도 불사할 만큼 강력한 불화의 도화선이다.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종교가 만들어졌지만 종교는 결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 종교는 갈등의 씨앗이었다.

    최씨는 친구의 소개로 김주연(가명) 씨를 만났다. 그에게 첫눈에 반한 최씨는 어른들에게 싹싹하고 힘든 일도 척척 해내는 김씨를 보며 자신의 ‘선택’을 뿌듯해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씨가 간혹 교회 다니기를 권유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최씨는 김씨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김씨는 환한 미소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가족 안에서도 다양한 종교 공존

    그런데 쉽게 결혼 승낙을 받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김씨의 부모가 완강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최씨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 당황한 그는 “앞으로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와서 뒤늦게 교회에 나가는 거랑 우리 주연이처럼 모태신앙인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고, 결혼식도 교회에서 올리겠다고 사정한 뒤에야 겨우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주말이면 처가 근처의 교회까지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최씨 집안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최씨 가족은 결혼식을 교회에서 치르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지만 아들을 위해 참고 넘어갔다. 그러나 최씨가 결혼한 뒤에도 교회에 나가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장모 역시 사위의 믿음이 깊지 않다며 불평한 것은 마찬가지.

    결국 첫 제사 때 잠복한 갈등이 폭발했다. 김씨는 시댁 제사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며 자신은 추모예배로 대신하겠다는 뜻을 시어머니에게 밝혔다. 불만이 쌓여 있던 시어머니는 “제사를 지낼 수 없으면 집을 나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도 아내에게 “제사는 고유의 문화인 만큼 이해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살얼음판을 걷던 제삿날. 결국 시어머니는 제사 준비를 강행했고, 김씨는 한마디 말도 없이 친정으로 가버렸다. 최씨는 아내를 데리러 갔지만 “그것 봐라”는 장모의 싸늘한 시선만 돌아왔을 뿐. 그렇게 시작된 별거는 결혼 석 달 만에 합의이혼으로 종결됐다.

    한국은 ‘종교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한 다종교 국가다. 2005년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총인구 4700만여 명 가운데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어떤 종교라도 믿는 사람은 2497만여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53.1%. 종교별로 보면 불교가 1072만여 명(종교인 가운데 4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독교 861만여 명(34.5%), 천주교 514만여 명(20.6%) 순이었다. 다양한 종교가 큰 갈등 없이 공존하는 것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자랑거리였다.

    과거에는 ‘부모가 믿는 종교는 나도 믿어야 한다’는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급격한 핵가족화, 가족 내 민주화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래서 부모는 불교를 믿지만 아들은 천주교, 딸은 기독교를 믿는 등 한 가정 안에서도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게 됐다. 그뿐 아니라 결혼을 통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오면서 종교 분포는 더욱 다양해진다. 건양대 예식산업학과 송현동 교수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신앙의 자유가 가족공동체를 위해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종교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의 종교갈등이 종교집단 간, 종파 및 교파 간, 종교집단과 비종교집단 간의 갈등이었다면 신(新)종교갈등은 가족 내에서 개인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다. 가족 구성원의 종교 분포는 다양해졌지만 ‘다름’에 대한 이해는 미성숙한 상태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아니다’라는 배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신종교갈등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진구(가명) 씨는 두 번이나 종교 때문에 여자친구와 갈라섰다. 처음에는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했지만, 같은 기독교 신자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뒤에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가족 간에 종교가 다르면 불편해요. 주말에 저는 교회에 가고, 아내는 절에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삶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할 수 없다면 바람직한 부부관계가 아니죠.”

    많은 사람들은 부부의 종교가 같으면 가족 간 종교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부의 종교가 같으냐, 다르냐는 단지 부부 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최-김씨 부부처럼 부부와 부모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종교갈등의 불씨는 고부갈등, 형제 간 갈등, 친척 간 갈등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한국상담심리연구원 김홍찬 원장은 “가족 간 종교갈등도 결국 정서적 유대 문제”라고 말한다.

    1등 배우자감은 ‘같은 종교 믿는 사람’?

    가족 간 종교갈등은 상제례를 치르면서 증폭된다. 예를 들어, 믿는 종교에 따라 제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판이하다. 유교와 불교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천주교는 제사를 관습과 문화로 규정해 신앙적 차원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맡겨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전통적 상제례를 우상숭배 등 교리적 이유로 거부한다. 장례식도 마찬가지. 고인의 영전에 절하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올리려는 한국적 정서와 종교적 신념을 놓고 일가친척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분란의 소지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노력이 간혹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다는 것. 이는 가족 구성원의 종교일치를 내걸고 애초부터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만 결혼하는 종교적 동질혼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선 “정말 사랑했지만 종교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결혼정보회사 ㈜좋은만남 선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3112쌍 가운데 55.1%가 동질혼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살아가면서 함께 기도하고 의지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장인 최미영(가명) 씨는 ‘배우자의 종교가 기독교일 것’을 결혼 조건 1순위로 꼽는다.

    “종교가 다른 사람을 여러 번 만나봤는데 힘들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종교가 다르면…. 글쎄, 영적 교감이 안 된다고나 할까요? 결혼 이후에도 종교 문제로 다툴 것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진짜 중요한 궁합은 종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좋은만남 선우 이웅진 대표는 “다른 조건이 다 맞아도 종교가 다르면 결혼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며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결혼 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의 상담 사례 가운데 열에 하나는 가족 간 종교갈등이라고 한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종교라는 것이 영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자신의 종교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종교가 중요하다는 원론적 해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종교 때문에 우리가 불편하다면 인간적 욕심이 개입된 탓이다. 종교로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면 이 말을 새겨보자.

    “신은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 파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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