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넥타이’치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등지고 오른편(당주동) ‘가을’, 왼편(청진동) ‘소우’를 모르면 간첩이죠. 우리 같은 ‘7080’은 라이브 카페가 ‘딱’인데 요즘은 이 둘밖에 없어요.” 이틀에 한 번꼴로 ‘소우’를 찾는다는 김석현(43) 씨의 말대로 ‘소우’는 종로에서 몇 개 남지 않은 라이브 카페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2002년 6월5일 개업한 ‘소우’는 사실 이순신 동상을 등지고 오른편 변호사회관 근처의 한 평 반 남짓한 카페가 원조다. 청진동‘소우’사장의 표현대로라면, 1년에 300일 정도 퇴근길에 들러 노래하고 수다를 떨던 공간인 원조 ‘소우’가 건물 리모델링으로 잠시 문을 닫자 단골 20여 명이 갈 곳을 잃었고, 결국 그 단골들이 ‘펀딩’을 해 현재의 종로구청 앞 ‘소우’(종로구 청진동 3-3)를 차렸다. 이후 원조 ‘소우’ 사장은 변호사회관 지하에 다시 ‘소우’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으며, 리모델링이 끝난 원조 ‘소우’는 새 주인을 찾았으니 현재는 3개의 ‘소우’가 간판을 내걸고 있는 셈이다.
앞서 기자는 개업 7주년에 맞춰 6월5일 오후 ‘소우’의 가수 네 명과 인터뷰를 했다. 대학로나 홍대 앞, 강남, 미사리가 아닌 종로 라이브 가수들의 삶이 궁금했다. 심홍석(27), 서리란(38), 김해권(37), 이민영(28) 씨 등 ‘소우’ 가수들은 종로1가에서 유유히 명맥을 이어가며 오후 8시20분부터 1시간씩(40분 공연에 20분 휴식) ‘광화문 넥타이’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앨범 발매한 실력파부터 댄스 가수까지
심홍석
“저는 인디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주로 유명 가요를 리메이크하는 식으로 앨범을 내죠. 하지만 홍보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심홍석)
“원래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경기도 안양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그렇게 20년이 흘렀네요. ‘먼지가 되어’의 이윤수 씨가 당시 라이브 가수들의 ‘큰형님’이었답니다.”(서리란)
“친오빠가 15년 정도 라이브 가수로 활동했어요. 그래서인지 음악에 친숙해졌고 어느 날 제가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힙합과 소울 같은 흑인음악을 좋아하지만, 이쪽으로 발을 들여놓았네요.”(이민영)
그들은 하루에 많게는 ‘4타임’씩 뛴다고 한다.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자리를 옮겨가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가수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 업(業)도 힘들어요. 가수는 많아지고 라이브 카페는 줄어드니까 ‘물량공세’가 심해졌다고나 할까요. 어떤 업소는 정상적인 ‘페이’(급여)를 못 준다고 미리 얘기해요. 배우려면 적은 ‘페이’라도 가져가라는 거죠. 그런 업소는 오래 못 가요.”(서씨)
정확한 ‘페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그들은 업소당 월 90만원 정도는 받는다고 귀띔했다.
“라이브 카페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요. 인천은 클럽에서도 라이브를 하고 미사리에서는 ‘퍼포먼스’를 중시하죠. 반짝이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비주얼 요소를 강조해요.”(심씨) 서씨는 요즘 미사리가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미사리와 강촌은 ‘준아다마급’(지명도는 있지만 활동이 뜸한 가수)이 활동하는 곳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이브 카페 가수들의 섭외는 어떻게 이뤄질까.
서리란
업주들은 자신의 카페에 맞는 가수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최종 낙점한다.
‘라이브’ 카페라고 해도 요즘에는 ‘생(生)라이브’만 고집할 수 없다. 손님들의 신청곡이 올드 팝에서부터 레게까지 무척 다양해 라이브로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반주기에 의존하는 노래도 많이 부른다는 뜻이다.
“2005년까지 ‘소우’에서는 ‘반주기 가수’를 쓰지 않았어요.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는 거였죠. ‘반주기 가수’가 생기면서 가수가 급격히 많아졌어요. 그만큼 실력보다 퍼포먼스가 중요해졌고요.”
김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이씨가 나지막이 한마디 한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네요.”
그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반주기의 멜로디에 맞춰 원더걸스의 ‘노바디’, 휘성의 ‘인섬니아’,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 등을 댄스와 함께 선보인다고 했다.
무대 오르는 손님 제일 ‘미워’
이민영
“종로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반응이 빨라요.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치면 극좌부터 극우까지 다양하죠. 대학로나 미사리, 강남과는 분위기가 달라요.”(서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상록수’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신청곡이 많았어요.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 반, 콧물 반인 손님들이 허다했죠.”(김씨)
그들에게 최고의 손님은 술에 취하지 않고 박수를 많이 쳐주는 손님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많단다. ‘무대 체질’이라면서 갑자기 윗옷을 벗고 마이크 내놓으라며 무대에 오르는 손님부터 연주 중 ‘기습 키스’를 하는 손님까지 ‘십인십색’이다. 간혹 업주들이 VIP 손님이라며 마이크를 건네라고 할 때도 있단다.
“우리 가게는 MB(이명박 대통령)가 와도 마이크 안 넘겨요. 가수들의 시간이니까요.”
카페 주인의 부연 설명이다.
“가수 초창기 시절에 손님이 노래하겠다는데 제가 인상을 썼어요. 노래 끝나고 그 손님이 계속 ‘기분 나쁘다’ 하시기에 무릎을 꿇었죠. 다른 업소에 노래를 하러 가야 하니 별수 없더라고요. 기분 묘하데요. ‘내가 이 업을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서씨)
“저는 손님이 마이크를 뺏으려고 하면 ‘오디션 먼저 보세요’라고 말하며 웃어요. 저도 오디션 보고 노래 부르잖아요.”(김씨)
“그럼요. 버스 승객이 대형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버스기사에게 운전대를 넘기라는 것과 같은 거예요.”(심씨)
“그에 비하면 저는 행복하네요. 강남 모 카페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의 아주머니가 달려들어 기습 키스를 하는 거예요. 그분 남자친구가 말렸으니 망정이지….”(김씨)
“노래하다 보면 ‘민영아, 애 낳아줘’ ‘우윳빛깔 이민영’ 하면서 환호하는 손님이 많은데 참 민망해요.”(이씨)
김해권
“오늘의 ‘언더’가 내일의 ‘언더’는 아니에요. 좋은 기획사를 만나 ‘오버’(유명 가수)가 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느리게 오래’가잖아요.”(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