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등대 부근의 대가실 언덕에 자리잡은 TV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왼쪽).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숲이 보존된 울진군 서면의 광천계곡을 찾은 관광객들.
제각기 내륙과 해안을 종횡으로 내달리는 두 길의 느낌은 서로 판이하다. 그러므로 두 길을 번갈아 이용하면 울진 여행의 모범코스가 된다. 그래도 먼저 7번 국도변의 동해안 풍경을 감상하면서 울진 땅을 찾아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지루할 듯하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맨 처음 만나는 마을은 울진군 북면의 고포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맛 좋은 자연산 미역인 ‘화포’의 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고포마을은 복개된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분단돼 있다. 불과 2~3m 앞의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도 시외전화 요금을 내야 한다. 한 마을이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된 탓에 겪는 불편은 한둘이 아니다.
고포마을 남쪽에는 나곡해수욕장이 있다.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피서철 성수기에도 비교적 한가롭게 해수욕이나 갯바위낚시를 즐길 수 있다. 나곡해수욕장과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지나면 어느새 죽변항에 들어선다.
울진대게 본고장인 죽변항에서는 어디서나 죽변등대가 눈에 띈다. 1910년 세워졌다는 이 등대 주변에는 대나무(산죽)가 지천이다. 그래서 지명도 ‘대가실’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끼리 줄기와 잎을 비비며 쏟아내는 소리가 파도소리에 뒤섞여 묘한 울림을 전한다. 죽변등대 북쪽 바닷가 언덕 위에는 빨간 지붕의 교회 건물과 아주 오래된 듯한 일본식 집이 눈길을 끈다. TV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오픈세트다. 대가실의 쪽빛 바다와 빨간 지붕의 교회, 이국적 형태의 집이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죽변항과 이웃한 봉평리에는 1988년 발견된 봉평신라비가 있다. 높이 204cm가량의 자연석 빗돌을 다듬어 약 400자의 한자를 새겨놓은 신라시대 비석이다. 당시 울진 지역에 대군(大軍)을 파견할 만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을 해결한 뒤의 조처와 행형(行刑)에 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현존하는 신라 비석 중 가장 오래됐다는 이 비석은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커 국보 제242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봉평리의 봉평해수욕장은 7번 국도의 옛 구간과 맞닿아 있어 찾아가기 편리한 데다 물빛이 맑고 모래가 고와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봉평해수욕장에서 울진읍내까지는 지척이고, 읍내를 벗어나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산교 사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구불구불한 불영천 물길을 따라가는 36번 국도에 들어선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풍광이 수려한 계곡 드라이브코스다. 더욱이 길가의 산비탈에는 준수한 자태의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찼다. 하나같이 밑동이 굵고 줄기가 곧으며 수피(樹皮)가 붉다. 춘양목, 황장목, 강송 등으로도 불리는 금강송이다. 미인처럼 곱고 향기로운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숲은 아름답고 청징(淸澄)하다.
풍광 뛰어난 해수욕장 즐비 … 금강송숲·죽변항도 가볼 만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7번 국도변의 오징어 건조장과 바다 풍경(사진 위). 봉평해수욕장의 솔숲에서 야영하며 피서를 즐기는 관광객들.
망양정이 자리한 근남면 산포리에서 원남면 오산리에 이르는 917번 지방도는 시종 그림 같은 해안을 끼고 달린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물 맑고 모래 고운 해변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망양해수욕장 외에 딱히 해수욕장이라 명명된 곳은 없어도 해수욕을 즐길 만한 조건은 두루 갖춘 해변들이다. 이 해안도로는 오산리에서 다시 7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옛 망양정 터에 자리한 망양휴게소를 거쳐 울진 땅의 또 다른 관동팔경인 월송정까지의 거리는 17km쯤 된다. 월송정은 정자 자체보다도 주변 솔숲이 더 인상적이다. 특히 교교한 달빛이 솔숲에 스며드는 보름날 밤의 정취가 유난히 아름답다고 한다.
월송정까지 둘러봤다면 울진에서의 여정은 얼추 마무리된 셈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정이 넉넉한 여름 휴가철에는 먼 길을 달려 울진 땅만 둘러보고 오기에는 정말 아쉽다. 북쪽의 삼척이나 남쪽의 영덕, 봉화 영양 같은 경북 내륙지방과 연계해 3박4일 정도 넉넉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굳이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바삐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다가 마음 끌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자리잡고 며칠 동안 머무르는 것이 진정한 휴가다. 이번 호의 ‘가족 맞춤여행’에서 세부적인 추천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기본적인 이동경로만 제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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