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덜레이’
그러나 여기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례들을 흑인 전체의 정치적 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이스는 겉모습만 흑인일 뿐 백인보다 더 백인화된 인물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의 흑인들이 오바마가 아닌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이는 피부색이 검다고 그의 정치 성향까지 피부색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또 그렇기에 흑인 대통령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몇몇 흑인 개인의 정치적 도약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극소수 특출난 흑인의 도약 이면에는 아직 보통선거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다수의 흑인이 존재한다는 현실이 있다.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만덜레이’를 보자. 미국의 노예제도를 다루는 이 영화의 제목인 만덜레이는 미국 남부 앨래배마주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영화에서 만덜레이는 수십 년 전 폐지된 노예제도가 버젓이 유지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도덕적인 여주인공은 농장을 흑인들 손에 넘겨준 뒤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돕고 흑인들에게 투표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정작 주인공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흑인들이 노예시절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들은 선거권을 부여받았지만 이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이는 알렉스 헤일리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뿌리’에서 노예해방 후 남부 흑인들에게 일종의 ‘투표권 시험’을 치르는 장면과도 흡사하다.
오바마의 도약과 ‘만덜레이’의 풍경.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한쪽만의 진실이기보다는 두 가지 모순된 현실이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미국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이 낮은 것을 흑인의 정치적 무관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진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것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