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창의력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알고 있다. 그 정도라면 발명가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력은 고3 수준에서 말하는 ‘자기만의 생각’이다.
자기만의 생각을 기르는 방법으로 칼럼 읽기를 권한다. 칼럼 형식과 내용을 분석해보면 필자만의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만의 생각’은 논술의 창의력과 직결돼 있다. 다음 칼럼을 읽고 생각해보자.
[사례1]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빈곤층 비율은 18%로 2003년(16.9%), 2004년(17.4%)에 이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년 새 25만7000가구, 60만6000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2003년의 47.2%에서 46.1%로, 상류층은 24.1%에서 24.0%로 각각 낮아졌다. 가난한 사람은 늘고 중산층과 부자는 줄었으니 양극화가 심해졌다기보다 빈곤화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전진우 칼럼’ 2006년 9월30일자
[사례2] 그럼 5년 단임 대통령은 중·장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정권 말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국가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과제다. 다만 나의 계획, 제도는 나와 생각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도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놓겠다는 인식이 문제다. 오늘 사과나무를 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사과나무 밭을 엎어버리고 포도나무 밭을 만드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간동아 574호 ‘칼럼’,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법학
우리는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말을 쓴다. ‘양극화의 심화’는 상식일 정도로 사람들 대부분이 언급한다. 그러나 필자는 칼럼에서 ‘빈곤화가 확대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 논거로 통계를 제시했다. 주장과 근거 모두 참신함으로 빛난다. 는 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문제로 거론하며 ‘사과나무 밭, 포도나무 밭’의 경구로 마무리한다. 칼럼 마지막에 비유를 과감히 동원해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과 칼럼에서 창의성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논술의 특성과 가까운 것이 칼럼이다. 대학교수 등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쓰는 글로 주장과 논증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칼럼에는 필자만의 창의성이 여러 형태로 들어 있다. 만약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상식적인 논의만 전개했다면 칼럼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이다.
수험생들은 창의성이 논리적으로 잘 드러난 명품 칼럼을 읽으면서 필자만의 창의적 생각을 캐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으로 ‘칼럼 베껴 쓰기’가 있다. 베껴 쓰기는 무비판적인 모방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수험생들은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칠 때가 있다. ‘아하, 이런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구나!’ 하는 느낌이 그것이다.
칼럼은 대부분 서론에서 흥미를 일으키고, 본론에서는 주장에 대한 치열한 논증을 펼친다. 결론에서는 인상적인 마무리 기법을 통해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칼럼을 읽어보면 필자에 따라 흥미 유발 방법, 논증 과정, 마무리 과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 ‘다름’이라는 것은 수험생들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논술 답안을 쓰는 사고 과정에 응용하면 된다.
어느 명문대 논술시험에서 1등 한 학생은 칼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시사주간지나 신문 칼럼을 통해 논술을 공부한 것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논술 고득점 학생들은 칼럼을 읽으면서 그 칼럼만의 ‘창의성’에 주목한다. 필자의 생각, 관점, 서술 방식, 사례 등이 자신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창의성이다.
칼럼은 논술의 보고(寶庫)다. 흥미를 가지고 칼럼 읽기를 즐긴다면 나만의 ‘창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칼럼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쳐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창조해낼 수 있다. 논술의 모든 요소는 칼럼에 다 들어 있다. 명품 칼럼을 통한 논술 쓰기 연습은 결국 명품 논술 답안을 예약한 것과 같다.
자기만의 생각을 기르는 방법으로 칼럼 읽기를 권한다. 칼럼 형식과 내용을 분석해보면 필자만의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만의 생각’은 논술의 창의력과 직결돼 있다. 다음 칼럼을 읽고 생각해보자.
[사례1]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빈곤층 비율은 18%로 2003년(16.9%), 2004년(17.4%)에 이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년 새 25만7000가구, 60만6000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2003년의 47.2%에서 46.1%로, 상류층은 24.1%에서 24.0%로 각각 낮아졌다. 가난한 사람은 늘고 중산층과 부자는 줄었으니 양극화가 심해졌다기보다 빈곤화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전진우 칼럼’ 2006년 9월30일자
[사례2] 그럼 5년 단임 대통령은 중·장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정권 말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국가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과제다. 다만 나의 계획, 제도는 나와 생각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도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놓겠다는 인식이 문제다. 오늘 사과나무를 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사과나무 밭을 엎어버리고 포도나무 밭을 만드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간동아 574호 ‘칼럼’,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법학
우리는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말을 쓴다. ‘양극화의 심화’는 상식일 정도로 사람들 대부분이 언급한다. 그러나 필자는 칼럼에서 ‘빈곤화가 확대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 논거로 통계를 제시했다. 주장과 근거 모두 참신함으로 빛난다. 는 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문제로 거론하며 ‘사과나무 밭, 포도나무 밭’의 경구로 마무리한다. 칼럼 마지막에 비유를 과감히 동원해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과 칼럼에서 창의성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논술의 특성과 가까운 것이 칼럼이다. 대학교수 등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쓰는 글로 주장과 논증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칼럼에는 필자만의 창의성이 여러 형태로 들어 있다. 만약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상식적인 논의만 전개했다면 칼럼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이다.
수험생들은 창의성이 논리적으로 잘 드러난 명품 칼럼을 읽으면서 필자만의 창의적 생각을 캐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으로 ‘칼럼 베껴 쓰기’가 있다. 베껴 쓰기는 무비판적인 모방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수험생들은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칠 때가 있다. ‘아하, 이런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구나!’ 하는 느낌이 그것이다.
칼럼은 대부분 서론에서 흥미를 일으키고, 본론에서는 주장에 대한 치열한 논증을 펼친다. 결론에서는 인상적인 마무리 기법을 통해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칼럼을 읽어보면 필자에 따라 흥미 유발 방법, 논증 과정, 마무리 과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 ‘다름’이라는 것은 수험생들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논술 답안을 쓰는 사고 과정에 응용하면 된다.
어느 명문대 논술시험에서 1등 한 학생은 칼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시사주간지나 신문 칼럼을 통해 논술을 공부한 것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논술 고득점 학생들은 칼럼을 읽으면서 그 칼럼만의 ‘창의성’에 주목한다. 필자의 생각, 관점, 서술 방식, 사례 등이 자신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창의성이다.
칼럼은 논술의 보고(寶庫)다. 흥미를 가지고 칼럼 읽기를 즐긴다면 나만의 ‘창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칼럼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쳐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창조해낼 수 있다. 논술의 모든 요소는 칼럼에 다 들어 있다. 명품 칼럼을 통한 논술 쓰기 연습은 결국 명품 논술 답안을 예약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