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3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양복 가슴에 똑같은 문양의 배지를 단 이들은 자신들을 ‘청자봉’ 소속이라고 소개했다. 청자봉? ‘청년자원봉사단’의 약자라고 한다. 이들은 오후 2시 행사 시작을 앞두고 도착한 이 전 시장을 예정된 좌석까지 안전하게 안내하기 위해 온몸으로 인파를 뚫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행사장 곳곳에 배치돼 주변 경계를 하던 이들은 행사가 끝나자 또다시 이 전 시장을 에스코트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이 전 시장에게 몰려드는 인파를 몸으로 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켜~!”라는 대충 반말과 함께.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들어선 것일까. 유력 대선후보들의 경호전쟁이 시작됐다. 특히 유력 대선후보 진영에선 안전을 위해 경호조직을 크게 강화한 데 이어, 새로운 대규모 경호조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출판기념회에 100여 명 경계
현재 한나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는 이 전 시장. 모든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동안 이 전 시장의 안전을 책임질 만한 경호팀은 따로 없었다. 경찰 간부 출신인 김모 씨와 이 전 시장이 대규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충원되는 사설 경호원 2~3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 이 전 시장 측은 별도의 경호팀을 꾸렸다. 안국포럼의 한 관계자는 “현재 김씨를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경호팀이 움직이고 있다. 사설 경호업체와는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2월1일 서울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호를 받으며 들어가고 있다.
“(경호 상태가) 굉장히 취약하고 불안하다.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태다. 사실상 외부 위협이나 공격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전 시장뿐 아니라 다른 후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규모 경호조직인 청자봉이 투입된 것은 이런 전후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날 행사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청자봉은 어떤 조직인가. 취재 결과 이 조직은 ‘포럼 한국의 힘’(회장 이영수·이하 ‘한국의 힘’)의 산하기관으로, 이날 행사를 위해 급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힘’은 지난해 말에 만들어진 단체이고, 이영수 회장은 한때 한나라당 청년조직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행사에 참여한 청자봉 조직원 가운데 일부는 이 조직의 간부가 대표로 있는 한 사설 경호용역업체 직원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청자봉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이명박 전 시장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순수한 자원봉사단체”라고 주장하면서 “아직은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어서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피했다.
이 회장은 “한국의 힘은 280여 개 지부를 갖고 있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청자봉은 그중 한 조직에 불과하다”면서 “때가 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 캠프인 안국포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만 짤막하게 언급했다.
이 전 시장을 위한 자발적 경호단체는 또 있다. 이 전 시장의 팬클럽인 ‘명박사랑’(대표 임혁)이 공수특전단 출신 회원을 주축으로 꾸린 경호팀이다. 임혁 대표는 “현재는 20명 정도의 조직인데, 최종적으로 8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2월13일 부산진구 부전동 시장을 방문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한 상인과 악수하고 있다.
하지만 명박사랑의 경호 활동은 이 전 시장 측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작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 구실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출판기념회장에서 방탄조끼를 전달하겠다고 발표했던 명박사랑 측의 계획이 무산된 이유도 이 전 시장 측과 전혀 사전 협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날, 서울 신촌 봉원사를 찾은 데 이어 다음 날부터 경남지역 투어에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도 지난해 테러를 당한 이후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대민 접촉이 잦아지면서 경호 문제가 캠프의 최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경호요원을 늘리자니 위화감이 조성될 테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현재 박 전 대표 측이 운영하는 경호팀은 여성 1명과 남성 2명으로 모두 무술 유단자들이다.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이들 중 여성 경호원은 서울 실내행사에만 동행하고 있고, 지방투어에는 남성 경호원 두 명이 박 전 대표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수행비서를 겸해 경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정현 특보(한나라당 부대변인)의 설명이다.
경호팀의 인원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박 전 대표의 경우 여성 정치인이라는 ‘묘한 매력’이 더해져 가깝게 접근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 경호를 더욱 어렵게 하는 부분. 박 전 대표는 가는 곳마다 사인과 악수, 사진촬영 요구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돕기 위해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나섰다. 그림자 경호를 원칙으로 한 ‘박근혜 수비대’가 그것. 그림자 경호란 대원들이 행사장에서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일반 시민으로 위장해 박 전 대표 모르게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다. 명단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수비대원들은 절반 정도가 여성들이고, 이 가운데는 특히 아주머니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맴돌고 있는 한나라당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의원 등도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 2월 초 정 전 장관은 일부 우익단체 소속 회원들에게 차량 테러위협을 받아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정 전 장관 측의 정기남 기획실장은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구국결사대’와 ‘라이트 코리아’ 등 두 개 정도의 단체에서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그들이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사과를 해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선에서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 측은 그러나 아직까지 별도의 경호팀을 꾸리지는 않았다.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 정 실장은 “현재로서는 경호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다”면서 “대선후보로 결정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경호를 배려해주기 때문에 별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머지 후보들 “아직은 필요 없어”
손 전 지사와 김 의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손 전 지사 측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동안 안전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경호요원이 필요 없었고, 현재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김 의원 측은 “당 의장 때도 없었는데 지금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등 유력 야당 후보에 대한 대선 직전 테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훈 의원은 대선 후보들의 경호 시기를 공식선거 개시일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됐을 때로 앞당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 ‘요인경호법안’을 제출했다.
또 김기춘 의원은 대선후보가 사망할 경우 선거일을 한 달 정도 연장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대선후보 등록 이후 5일 이내에만 후보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후 테러를 당했을 경우 새로운 후보로 교체할 수 없는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취지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정략적인 접근이라고 지적하지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