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마지막 호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 올해의 인물’로 ‘유(You)’를 선정했지만 사실 그 주인공은 ‘디지털 시대’였다. ‘타임’은 선정 이유로 ‘디지털 민주주의의 개화’를 들었는데, 이는 디지털 미디어에 만연(?)한 ‘참여의 증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또는 참여) 확대는 최근 웹2.0을 둘러싼 담론에서도 핵심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주제로, 유감스럽지만 참여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요컨대 “웹2.0의 하이웨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 구글이라는 3개의 ‘출구(exit)’로만 이어진다”는 말은 디지털 시대에 기술 독점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환기시킨다. ‘나도 참여하고 너도 참여하지만, 그들이 지배한다’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적 명제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사실 변하고 있는 것은 기술 독점자본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일 뿐이다.
예컨대 구글이 동영상 UCC 업체인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매입하고, 야후가 주목할 만한 UCC 업체 ‘플리커’와 소셜북마크 업체 ‘딜리셔스’를 인수한 현실은 인터넷에서 자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독점자본의 공격이자 손실로 평가된다. 이런 종류의 무자비한 테러는 일찍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수도 없이 반복되며 구글과 야후에 의해 승계돼 유지되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열린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인프라의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발전에 따라’ 대중의 참여는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지만, 자본의 독점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으며 정치적 검열과 사회적 감시도 심화돼왔다. 대신 민주주의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은 꾸준히 퇴보하고 왜곡돼왔다. 인터넷과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국가와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수평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참여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초기의 꿈은 너무 일찍 빛이 바랬다. 이면에 이 세계의 물질적 토대가 기술을 독점한 자본에 의해 세워졌다는 엄연한 현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인간형들이 창조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태생이 자본의 상품적 사생아라는 점에서 그 운명은 새롭지 않으며 여전히 전시대의 연속선상에 있다.
‘오픈소스 운동’ 등이 제3의 출구
‘유’는 다만 프리미엄 아이템과 도토리를 사느라 비용을 출혈하고, 광고에 마비되어 있는 ‘폐인’으로 (디지털) 소비사회의 성실한 시민일 뿐이다. 발달한 디지털 소비사회에서 개인들은 가상화·파편화함으로써 더욱 현실도피적으로, 따라서 체제 순응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인화 씨의 말처럼 현실로 귀환해 세계를 복되게 만드는 대신, 밤을 새워 그 허망한 혁명적 세계를 방황하며 더 많은 아드레날린을 추종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 한편에 여전히 ‘오픈소스 운동’(GNU, 리눅스 등)과 ‘카피레프트’ ‘위키피디아’를 실천하는 ‘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일정한 자유를 실현한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야후로 강제된 3개의 목적지가 아닌 제3의 출구를 발견한다. 이들은 ‘진정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초와 틀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타심을 존중하며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인터넷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실천들은 ‘집단 지성’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증명하며 더욱 진전된 민주주의적 기초와 틀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유’가 아닌 ‘위(We)’, 즉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어떻든, 늘 그랬듯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또는 참여) 확대는 최근 웹2.0을 둘러싼 담론에서도 핵심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주제로, 유감스럽지만 참여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요컨대 “웹2.0의 하이웨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 구글이라는 3개의 ‘출구(exit)’로만 이어진다”는 말은 디지털 시대에 기술 독점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환기시킨다. ‘나도 참여하고 너도 참여하지만, 그들이 지배한다’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고전적 명제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사실 변하고 있는 것은 기술 독점자본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일 뿐이다.
예컨대 구글이 동영상 UCC 업체인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매입하고, 야후가 주목할 만한 UCC 업체 ‘플리커’와 소셜북마크 업체 ‘딜리셔스’를 인수한 현실은 인터넷에서 자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독점자본의 공격이자 손실로 평가된다. 이런 종류의 무자비한 테러는 일찍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수도 없이 반복되며 구글과 야후에 의해 승계돼 유지되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열린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인프라의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발전에 따라’ 대중의 참여는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지만, 자본의 독점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으며 정치적 검열과 사회적 감시도 심화돼왔다. 대신 민주주의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다양성은 꾸준히 퇴보하고 왜곡돼왔다. 인터넷과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국가와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수평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참여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초기의 꿈은 너무 일찍 빛이 바랬다. 이면에 이 세계의 물질적 토대가 기술을 독점한 자본에 의해 세워졌다는 엄연한 현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인간형들이 창조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태생이 자본의 상품적 사생아라는 점에서 그 운명은 새롭지 않으며 여전히 전시대의 연속선상에 있다.
‘오픈소스 운동’ 등이 제3의 출구
‘유’는 다만 프리미엄 아이템과 도토리를 사느라 비용을 출혈하고, 광고에 마비되어 있는 ‘폐인’으로 (디지털) 소비사회의 성실한 시민일 뿐이다. 발달한 디지털 소비사회에서 개인들은 가상화·파편화함으로써 더욱 현실도피적으로, 따라서 체제 순응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인화 씨의 말처럼 현실로 귀환해 세계를 복되게 만드는 대신, 밤을 새워 그 허망한 혁명적 세계를 방황하며 더 많은 아드레날린을 추종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 한편에 여전히 ‘오픈소스 운동’(GNU, 리눅스 등)과 ‘카피레프트’ ‘위키피디아’를 실천하는 ‘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일정한 자유를 실현한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야후로 강제된 3개의 목적지가 아닌 제3의 출구를 발견한다. 이들은 ‘진정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초와 틀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타심을 존중하며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인터넷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실천들은 ‘집단 지성’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증명하며 더욱 진전된 민주주의적 기초와 틀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유’가 아닌 ‘위(We)’, 즉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어떻든, 늘 그랬듯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