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일흔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할 나이지만 서양화가 이동우 씨는 이제야 인생의 본궤도에 오른 기분이다. 그는 경기고 미술반에서 작가의 꿈을 키웠으나 전쟁 등으로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미술을 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 서울대 공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가 사업본부장 등을 거치며 엔지니어로 평생을 보냈다. 이 씨가 뒤늦은 꿈을 이루게 된 것은 1986년 울진 원자력발전소 설계를 위해 프랑스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출장 길에 갖고 싶었던 미술 도구를 사 새벽에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프랑스 국립미술협회 회장 프랑수아 바불레 씨가 산책 나왔다가 내 그림을 본 겁니다. 그 인연으로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프랑스 살롱 비엔날레에 데뷔하게 됐죠.”
그의 작품은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 교포들의 밀항, 장애인, 핵폐기장 문제 등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같이 경쟁을 하는 처지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워낙 다양하고 아이디어가 넘치기 때문에 나도 더 젊었을 때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만족해요.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뺀다면요.”
2004년 겨울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연 그는 이제 다음 전시를 위해 매일 일산의 작업실에 출근해 그림을 그린다. 아들 승환 씨는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일찌감치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GNA에서 전시 기획 및 진행을 맡고 있다.
“출장 길에 갖고 싶었던 미술 도구를 사 새벽에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프랑스 국립미술협회 회장 프랑수아 바불레 씨가 산책 나왔다가 내 그림을 본 겁니다. 그 인연으로 심사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프랑스 살롱 비엔날레에 데뷔하게 됐죠.”
그의 작품은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 교포들의 밀항, 장애인, 핵폐기장 문제 등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같이 경쟁을 하는 처지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워낙 다양하고 아이디어가 넘치기 때문에 나도 더 젊었을 때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만족해요.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뺀다면요.”
2004년 겨울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연 그는 이제 다음 전시를 위해 매일 일산의 작업실에 출근해 그림을 그린다. 아들 승환 씨는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일찌감치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GNA에서 전시 기획 및 진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