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마을 풍경.
산골짜기 된장 냄새와 함께한 구수한 체험
서울의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 차로 네댓 시간 달리면 ‘아라리의 고장’ 강원 정선군에 닿는다. 여기서 좀더 고불고불한 계곡을 따라 차를 몰고 올라가다 보면 주변이 온통 산뿐이고 앞에는 너른 마당 가득 둥그스름한 장독 항아리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진귀한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메주와 첼리스트 된장마을’, 일명 ‘메첼’에 들어선 것이다.
도완녀씨.
‘메첼’은 조계종 초대 교육부장을 지낸 학승인 돈연 스님(58)과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첼리스트 도완녀 선생(50) 부부가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그며 산다는 마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산나물밥이 준비돼 있다는 도완녀 선생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독 즐비한 길을 따라 진한 된장 내음을 따라간다. 모든 것은 셀프. 남기면 벌금인지라 먹을 만큼만 담아 가란다.
빨간 고추장에 묻힌 더덕이며, 쌈장에 무친 가지나물, 깔끔하고 정갈한 나물 반찬을 항아리 뚜껑에 담아 먹는다. 기대하며 한 숟가락 떠넣는 순간 도심에선 느낄 수 없는 신선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아가씨 체면도 내다버리고 배불러라 큰 그릇 뚝딱 해치운다.
산나물밥을 푸짐하게 먹고 나면 도완녀 선생의 ‘웰빙 강좌’가 기다린다. 도완녀 선생은 조선 된장과 간장으로 요리한 맛난 산나물 요리를 시연해 보이며 우리 음식 얘기를 재미나게 풀어냈다.
“조선 된장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 올리고당은 장까지 이동하여 비피더스균의 영양분이 되고, 비피더스균이 늘면 유해균이 억제되고, 장 운동을 촉진해 대장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도완녀 선생은 왜된장과 간장이 점령한 우리 식탁을 전통 된장, 간장식으로 되찾는 길이야말로 가족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맨발로 송림 사이 자그마한 오솔길을 걷는 체험도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발아, 고맙다”를 외치며 도완녀 선생의 뒤를 따라 나선다. 꼬마들은 나뭇가지 한 개씩 손에 쥐고 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걸어간다. 솔잎이 그득 쌓여 푹신한 자연 카펫과 매끈한 자갈이 깔린 오솔길을 열심히 걷다 보면 맨발에 전해져오는 감촉이 간지럽고 묘하다. 하이힐로 긴장된 발바닥을 제대로 지압하는 느낌이랄까. 생소함은 점점 가시고 싸~하니 시원하기까지 했다.
허브터널을 걷는 연인.
다음 순서는 ‘된장댁’ 도완녀 선생의 첼로 연주. 첼로를 연주하던 손은 이제 메주를 담그는 손이 됐지만 인생의 깊이가 더해져서일까, 영혼을 울리는 맛이 있다. ‘사랑을 위하여’ ‘한 오백년’ ‘그리운 금강산’…. 된장을 담그는 산골마을에서 차례차례로 울려퍼지는 웅장한 첼로의 선율은 1500개의 장독을 울리고 구릉 진 산을 넘어 계곡까지 아우르며 돌아온다. 도완녀 선생과 자연이 함께 빚어내는 울림은 이윽고 거대한 합주가 된다.
감동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한 오백년’ 가락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일흔을 훌쩍 넘긴 김점순 할머니는 “첼로 연주는 난생 처음 들어봤지만 너무 좋고 떨려서 흥분이 될 정도였다”고 하신다.
청태산자연 휴양림의 통나무집.
하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번엔 통나무 숙소가 있는 자연휴양림을 향해 떠날 차례. 영동고속도로 둔내 나들목을 빠져나와 왼쪽 길로 8km를 달리면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자락에 있는 둔내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잠만 자기엔 아까운 곳이다. 17만평 규모의 이 자연휴양림에는 여러 가지 야생식물과 소나무, 전나무가 울창하게 보존돼 있다. 상쾌하다 못해 시린 듯한 산속 밤공기에 알싸한 소나무 향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도심에선 보기 어려운 별자리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원래 밤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았던가.
나무 향을 흠뻑 들이켜며 오솔길을 올라가니 동화의 한 장면처럼 숲 속 통나무집이 나타난다. 증조할머니와 함께 온 7살 현민이는 통나무집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할머니, 이 다음에 제가 결혼할 때까지 살아 계시면 여기 다시 와서 함께 자요”라고 말하곤 부끄러워 숨는다. 아이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줄 수 있는 게 휴양림에서의 하루인가 보다. 박하향기 가득한 ‘허브나라’ 여행
경부고속도로 청원 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충북 청원 부용면 외천리 산자락 1만5000평에 자리잡은 궁전 모양의 상수 허브랜드는 여느 허브농장과 다르다. 상수 허브랜드 이상수 대표의 신바람 강의는 유쾌하다. 리듬을 타듯 강약을 조절하는 어조, ‘~하게 될 거야’라는 말투는 상쾌한 허브 향기와 잘 어울린다. 듣다 보면 “할렐루야, 아멘!”이 절로 나올 법한 달변이다.
“페퍼민트를 손바닥으로 비벼보세요. 박하향이 묻어납니다. 코로 그 향을 들이켜면 감기가 달아날 겁니다. 헬리오트로프 꽃도 따먹어 보세요. 부드러운 초콜릿 향이 혀끝에 감싸며 스며들지요.”
정경화씨(34·회사원)는 이대표가 내주는 페퍼민트를 받아 얼른 두 손으로 비벼 현민이와 채연이 두 공주님의 코에 대준다.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살아 걱정이라면서. 강의를 다 듣고 농장 입구에 들어서면 라벤더향이 온몸을 감싸 아찔해질 정도다. 흔히들 이곳에 들르면 사흘 동안 허브향이 몸에 밴다고 하던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3000평 규모의 유리온실 가득한 550여종 허브들의 향연. 연인의 사랑을 깊게 해주는 헬리오트로프, 72살의 폴란드 여왕이 허브 추출액을 마시고 회춘해 폴란드 왕에게 청혼을 받았다는 로즈마리, 반대로 남성의 매력을 강화해준다는 타임 등 갖가지 허브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뽐내며 피어 있다.
왼쪽에 줄지어 선 허브들은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하지만, 오른쪽에 줄지어 선 허브들은 직접 만지고 먹을 수 있다. 체험단은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줄지어 허브 길을 따라간다.
온실의 한가운데에는 이곳 최대의 명소인 ‘허브 터널’이 있다. 50m도 채 안 되는 짧은 꽃길이지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다채로운 향기에 표정이 수시로 바뀐다. 맨발로 허브를 밟고 지나는 ‘허브 카펫’도 이채롭다. 밟고 가다 보면 은은한 레몬향이 느껴진다. 알록달록한 빨주노초 허브 양초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스다.
허브랜드에는 허브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수령 500년의 용송, 수령 1000년의 천년송 등 100여점의 진귀한 소나무 분재와 만지면 자식을 낳는다는 고추공룡 바위 등을 보고 난 뒤, 연못 속 수중터널로 들어가면 철갑상어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허브를 즐기느라 허기지면 온실 안에 있는 레스토랑 ‘허브의 성’에서 로즈마리·스위트바이올렛·레몬타임·세이지 등을 밥에 넣고 비벼먹는 ‘꽃밥’을 맛볼 수 있다. 이곳 꽃밥은 인기가 매우 높아 매달 8000여명의 외국 관광객이 찾을 정도. 허브 꽃밥은 싹이나 꽃들이 뭉개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반드시 젓가락을 이용해 비벼야 한다. 그냥 비볐다간 어디서 보고 왔는지 이대표가 달려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살살 비빈 꽃밥에 설탕의 20배나 단맛을 낸다는 스테미아로 맛을 낸 동치미, 라벤더 된장국을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다.
허브꽃밥은 라벤더 된장국을 곁들여야 금상첨화다.
아로마 테라피라도 된 것인지, 3시간여의 허브나라 여행을 마치고 나오는 일행들의 얼굴에서도 박하향이 났다.
함께 여행을 간 박수연씨(24·회사원)도 “어제 오늘 긴 시간 버스를 타느라 힘들었지만 이번 웰빙 체험 덕에 영혼이 싱그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가식과 고민을 다 날려버리고 순수한 마음만 가져가는 기분”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상수 허브랜드
허브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