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지옥의 문’을 바라보고 설치된 장영혜 중공업의 ‘9대의 지펠 인터넷 냉장고로 구성된 지옥의 문’(2004).
그래서 초기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는 어떻게든 한 자락을 로댕에 기댄 것이어야 했다. 예를 들면, 몸에 대한 전시 같은 것이다. 점차 로댕과 상관없는 전시도 자주 열렸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검고 거대한 ‘지옥의 문’은 다른 작품들을 빨아들일 듯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의 제목은 ‘문을 부숴!’다(10월31일까지). 이것이 ‘지옥의 문을 부숴!’라는 뜻임은 금세 알 수 있다. 전시 작품은 더욱 당돌하다. 로댕의 ‘지옥의 문’ 옆에 같은 크기로 대형 냉장고 9개를 쌓아 ‘지옥의 문’을 패러디한다. ‘지옥의 문’이 검은색 대리석인데 대형 냉장고들은 흰색이라 시각적인 대비도 분명하다.
작품 이름은 ‘ 9대의 지펠 ‘인터넷’ 냉장고로 구성된 지옥의 문’(2004), 작가는 ‘장영혜 중공업’이다.
‘장영혜 중공업’은 여성기업가 장영혜씨가 CEO(최고경영자)로 있는 철강 및 선박 제조업체로 삼성중공업과 1, 2위를 다투는 경쟁 기업이다, 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장영혜씨와 마크 보주 두 미술작가가 1999년 창립한 작가 그룹이다. ‘장영혜 중공업’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이들은 벽에 걸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비물질적인 작업을 해왔다. 인터넷상의 미술 행위, 즉 ‘웹아트’가 이들의 생산품이다.
10대의 프로젝터로 구성된 비디오설치 작품 ‘장영혜 중공업’이 소개하는 ‘문을 부숴!’(2004).
일반적으로 ‘웹아트’라 하면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상호성(인터랙티브)를 가장 큰 특징으로 생각하고 화려한 그래픽 디자인, 신기한 색 변화 등을 떠올리는데, ‘장영혜 중공업’의 웹아트는 작가가 쓴 단어들이 화면 가득 영화처럼 일방적으로 지나갈 뿐이다. 작가는 “나는 인터랙티브, 상호성을 가장 싫어한다. 상호성이란 내게 웃음거리일 뿐이다. 나의 웹아트는 인터넷의 정수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래픽과 디자인, 배너, 색 그리고 나머지를 벗겨봐라. 무엇이 남나? 바로 텍스트다”라고 말한다.
‘문을 부숴!’의 텍스트는 이런 것이다.
…너희들은/ 문을 부서뜨리고/ 내 방에 달려들어/ 자고 있는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내동댕이치고/ …/ 몇몇은 보란 듯이 나를 끌고 가는/ 집행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고/ …/ 몇몇은 창을 열어/ “배신자는 죽여!”/ …/ 참 이상스럽기도 하지/…흩어져 나는/ 여름 바닷바람을 만지며/ 잔광을 머금은/ 푸른빛 바닷물이/ 바라보이는/ 테라스의 테이블에/ …부드러웠던 보사노바.
이 텍스트는 3개의 작품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바뀐 채 빠른 속도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제시된다. 이 텍스트는 명백하게 집단 혹은 절대권력에 의한 개인의 죽음을 의미하며, 특히 ‘9대의 지펠 ‘인터넷’ 냉장고로 구성된 지옥의 문’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지펠 ‘인터넷’ 냉장고는 문에 액정모니터를 설치해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할 수 있게 한 기발한 신상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냉장고가 오히려 여성들을 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키고 사회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삼성과 이 미술작품의 관계다. 작가가 맹렬히 비난한 지펠 ‘인터넷’ 냉장고는 삼성 제품인데 전시 주최도 삼성이다.
‘장영혜 중공업’ 웹아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그래픽과 디자인, 색을 모두 벗겨버리고 텍스트만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 때문인지 전시장에서 명멸하는 텍스트들과 빠른 음악 속에 서 있으면, 진심으로 삼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삼성은 자신을 공격하는 웹 작가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거대한 작품을 설치하게 했다. 웹아트 ‘삼성’에서 ‘장영혜 중공업’이 소개하듯,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는 것’이고 ‘삼성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장영혜 중공업’도 삼성과 제휴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