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스님을 따라 아침 참선에 잠긴 산사체험 수련생들.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15분. 3시30분부터 새벽예불이 시작되니 서둘러야 한다. 우물가에 쪼그린 채 세수를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3시25분, 내 평생 이 시간에 밀린 일 처리하다 잠들기는 했어도 깨어나 하루를 시작해본 적은 없다.
금산사 대웅전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대적광전은 연꽃 속에 담긴 극락,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을 구현한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웅장한 불상이 여럿이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법당 구조다. 앉아 있는 여래불이 다섯, 서 있는 보살이 여섯. 불상들은 너무도 커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위압적이다. 게다가 한두 분이 아니지 않은가.
금산사 마당의 육각 다층석탑 뒤쪽으로 적멸보궁이 보인다.
나눠준 책자를 보고 ‘지심귀명례’로 시작하는 예불문을 함께 읽고, 법당 오른쪽 신중단을 바라보며 반야심경을 읊은 뒤, 자리에 앉아 귀에 익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로 시작되는 천수경을 듣는다. 급한 개울을 타고 내려온 물이 제 길을 잡아가듯, 부드러운 천이 자기 몸을 휘감듯, 울리는 염불소리에 실려 절을 하고 무릎 꿇고 합장하기를 거듭하다가 여래불을 바라본다. 반쯤 뜬 채로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눈이 “무엇 하러 여기 왔는고” 하고 묻는 듯하다.
저녁예불을 드리기 위해 범종을 치고 있다.
2년 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선보이는 작업의 하나로 산사체험(Temple Stay) 행사를 진행했다.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들에게도 특별한 행사였다. 행사는 좋은 평을 들었고, 지난 여름에도 사찰 여름수련회는 만원이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불교전통문화체험사업단이 꾸려져 11곳 사찰을 중심으로 산사체험 행사를 정기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제 여름 한철이 아니라, 주말이면 언제든지 산사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산사 일주문까지 포행하고 있다. 포행(布行)은 호흡에 맞춰 천천히 걸으면서 선정을 닦는 것이다.
죽비를 세 번 치면 좌선자세를 하고 선정에 들어간다.
예습한 대로 발우공양을 끝내고, 잠시 휴식한 뒤 아침 7시부터 금산사 사찰에 대한 안내가 이뤄진다. 금산사에는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3층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안에는 11.82m나 되는 미륵본존불이 있다. 모악산 자락에 흥성했던 미륵신앙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뜰 앞의 잣나무를 살피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에 오른다. 절은 넓고 편안하다.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곳에 넓은 평지가 있고, 평지 위에 오래된 건물들이 서 있다. 매월당 김시습(1435~93)도 이곳 객실에서 하룻밤 자고 가면서 ‘구름 기운 아물아물, 골 안은 널찍한데/ 엉킨 수풀이 깔린 돌에는 여울 소리 들려오네’로 시작하는 시 한 수를 남겼다.
오전에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에는 다도(茶道)체험을 한다. 그런데 기업체에서 온 50명은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근처의 학교 운동장을 빌려 공놀이를 한다고 떠났다. 금산사의 산사체험은 자유롭다.
인터넷(www.geumsansa.org)에서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경내와 주변 산세가 아름답고, 모악산 등산도 할 수 있어서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아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기업체나 단체 체험단은 공놀이 같은 자체 프로그램을 끼워넣을 수 있다. 나는 홀로 모악산에 오른다.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산문을 나선다. 나는 다시 쾌속으로 세상을 달리며 생활할 것이다. 일을 좇지만, 일에 쫓겨다니기 십상이리라. 그 속에서 나를 잃을 즈음이면 이 산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는 돌아서서 대숲바람과 계곡물 소리와 풍경소리에 합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