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총리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기 전 일본과 북한은 실무 차원의 수교회담을 진행해왔다. 그런데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실이 불거지면서 회담 준비는 중단됐다.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는 수교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덟 명의 일본인 납치를 시인함으로써 난관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노력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국회와 시민단체 언론 등이 한목소리로 “납치된 일본인을 데려오라”고 외치면서, 납치된 일본인을 데려오기 전에는 수교교섭을 재개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반북(反北) 분위기가 고조되자 일본 국회는 북한에 대해서는 외화를 보내지 못하도록 외국환관리법을 개정했다. 이어 북한과 무역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무역법을 개정하고, 또 함께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을 금지하는 ‘특정선박 입항금지법안’ 제정도 시도했다. 이 세 가지 ‘대북제재법안’에 대해 북한은 “대북제재법안 제정은 북한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라고 맹비난했다.
대북제재법안을 비난한 노동신문 기사.
그러나 ‘돈이 급한’ 북한은 끝내 고개를 숙였다. 납치해온 일본인 중 생존해 있던 다섯 명을 슬그머니 일본으로 보내준 것이다. 이들은 일본 방문기간이 끝나면 북한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일본 여론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민단체와 합세해 일본과 북한 정부에 “북한에 있는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두 번째 방북이 있기 전 일본 측은 북한 측과 납치 일본인 가족의 일본 귀국 문제를 협상했다. 이때 일본이 제시한 것이 유엔을 통한 식량 25만t과 1000만 달러어치의 의료품 지원이었다. 이러한 정지작업을 거쳐 평양에 간 고이즈미 총리는 김위원장과 수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그리고 일본행을 거부한 세 명을 제외한 다섯 명의 납치자 가족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암초가 나타났다. 납치 일본인 가족을 데리고 귀국하는 ‘모양새’에 집착한 나머지 고이즈미 총리가 김위원장에게 “대북제재법안이 발동하지 않겠다”고 구두약속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여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선 것. 고이즈미 총리는 또다시 곤경에 빠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