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도
10년 이상 한국 바둑을 집권해온 이창호 9단이 최근 전례 없는 부진을 보이며 흔들리고 있다. 제47기 국수전 도전5번기에서 19세의 최철한 7단에게 3대 2로 져 타이틀을 잃은 데 이어, 광주에서 열린 제8회 LG배 결승5번기 1·2국에서 목진석 7단에게 1국을 먼저 내주었다가 가까스로 2국을 이겨 1라운드를 1대 1로 끝냈다. 국수전 도전4·5국에서 신예 최철한 7단에게 연패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나흘 뒤 벌어진 LG배 결승1국에서도 이창호 9단은 자기 특유의 ‘계산바둑’을 두지 못하고 치열한 난타전을 펼치다 또 무너졌다. 이창호가 한 번 지는 것도 뉴스감인데 연속 세 번씩이나 나뒹굴었으니 바둑계가 발칵 뒤집힐 수밖에.
이창호의 아킬레스건은 역시 전투였다. 최철한 7단과 목진석 7단은 초반부터 치열한 몸싸움으로 이창호의 장기전을 무력화했다.
초점은 우상변 흑대마의 사활. 물론 잡히면 지고 잡히지 않으면 이긴다. 재미있는 것은 ‘천하’의 이창호가 잡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도 목진석이 세 번이나 배짱 좋게 손을 빼고 있다는 점. 백 □ 로 선전포고했을 때 흑 ■로 손 뺀 게 첫 번째고, 백 △로 ‘이래도 손 뺄래?’ 하고 묻는데도 ‘어디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 흑 ▲을 둔 게 두 번째. ‘정녕 그렇다면?’ 하고 백2·4로 칼을 뽑는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흑5로 좌변을 못질하고 나선 게 세 번째 손 뺌. 세 번이나 손 빼고도 과연 그가 무사할까?
참고도
결론은 무사했다. 백1로 젖혀 흑대마를 잡으러 가면, 이하 흑10까지 간단히 사는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백6에 이어대고 흑7로 사는 순간, 앞서 세 번의 으름장은 ‘공갈포’에 지나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신중함’의 대명사격인 이창호 9단의 바둑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읽기, 섣부른 대마공격이었다. 287수 끝, 흑 3집 반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