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컬슨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알약은 ‘파란 알약’ 비아그라(위)와 후발주자인‘노란 아몬드’ 시알리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광고 카피가 아니다. 비아그라 홍보대사 보브 돌 전 미국 상원의원의 ‘임상 간증’도 아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휴먼 스테인’에서 앤터니 홉킨스(콜만 역)가 니콜 키드먼(퍼니아 역)과 사랑에 빠진 뒤 친구에게 털어놓는 말이다. 할아버지와 손녀 뻘인 두 사람이 격렬한 정사를 벌인 뒤, 퍼니아는 “이 정도면 A+다. 전남편은 형편없었다”며 감탄한다.
개봉한 지 한 달이 됐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는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주인공 잭 니컬슨(해리 역)은 아예 ‘미스터 비아그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63세의 돈 많고 매너 좋은 독신남 해리는 20대 여성만 상대하는 호색한이다. 물론 비아그라 덕이다.
‘섹스 없는 베드신’으로 유명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도 52세인 남자주인공 빌 머레이(보브 해리스 역)가 25살 유부녀와 애틋한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나온다.
그리고 3월19일 개봉하는 우리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기둥 줄거리도 선우용녀(서울 송여사 역)를 놓고 송재호, 양택조, 김무생 등 60대 초반 남자 셋이 연정을 불태운다는 설정이다.
단순히 노령화된 사회 현실 반영?
3월19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위)와 앤터니 홉킨스 주연의 ‘휴먼 스테인’에서 60대는 비로소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실한 삶을 받아들이는 나이다.
실제로 한국 내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한국화이자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개봉되자 언론사의 의학, 건강 담당 기자들을 상대로 특별상영회를 마련했다. 이 영화에는 뚱뚱한 잭 니컬슨이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를 먹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화이자측이나 영화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는 비아그라와 PPL(작품 간접홍보) 계약을 맺은 바가 없다고 했다. 단지 노년 남성들의 섹스를 주요한 소재로 다루다 보니,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명사인 비아그라가 영화에 점점 더 자주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비아그라를 쉬쉬하며 사야 하는 약품에서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치료제로 끌어올리고, 올바른 복용법까지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시기도 적절하고요.”(최경·비아그라 홍보 담당자)
그가 말하는 올바른 복용법이란 첫째 비아그라는 정력제가 아니라는 것, 둘째 협심증 치료제인 질산염제제와 비아그라를 절대 같이 복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비아그라를 먹고 젊은 여자와 섹스를 하려던 잭 니컬슨이 너무 흥분해 협심증 증세를 일으키는데, 그는 병원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비아그라 복용 사실을 숨기려 한다.
반면 후발주자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또 다른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를 판매하는 한국릴리측은 “비아그라의 선두 프리미엄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랑할 때~’에서 볼 수 있듯 중요한 것은 섹스 자체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이다. 그런 점에서 약효 지속기간이 긴 시알리스가 자연스런 관계를 맺는 데 적당한 차세대 발기부전 치료제가 될 것”이라면서 “노년층의 사랑을 다룬 영화로 우리 정서에 맞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 더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평단과 영화제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감독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다.
‘휴먼 스테인’의 주인공 콜만은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학장이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이 유색인임을 숨기고 유대인으로 살아온 그는 어이없게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 학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충격으로 그의 아내가 죽는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젊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비아그라 처방전을 들고 부지런히 약국에 드나드는 전직 학장의 모습은 엘리트 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관련 탄핵 사건을 끊임없이 대입하며 엘리트 사회의 ‘도덕적 정당성’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이야기한다. 가장 진보적인 척하나 인종과 사랑과 ‘비아그라’, 즉 섹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바로 ‘휴먼 스테인’이다. 콜만은 아내에게도 숨겼던 비밀을 퍼니아에게 털어놓으며 “이것이 위대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마지막 사랑임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섹스를 통해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사랑할 때 ~’의 주인공 해리도 “나, 63살이나 되어서야 철드나 봐.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한다. 그는 20대가 아닌, 50대 여인과 이번엔 비아그라 없이 멋진 섹스를 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선 나이 많은 보브 역시 젊은 샬롯에게 마지막 사랑을 느끼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섹스를 넘어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망이다. 그들은 침대에서도 그냥 기댄 채 잠이 든다. 김진세 박사(고려제일신경정신과)는 “이 영화의 감독은 여성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사랑이 현실의 남녀 관계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남자들도 생물적 욕구보다는 점점 더 정서적 욕망이 강해지는 추세이긴 하다. 사실 ‘주류’와 ‘소수’의 차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만든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60대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온화한 할머니상이거나 고집불통 노인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을 가깝게 다가가 보면 때로 철없기도 하고, 또 때로 무턱대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들도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 구체적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남성 섹스리스 죽음에 대한 공포”
실제로 영화에서 나타난 사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국 성과학연구소 이윤수 박사(비뇨기과 전문의)는 “60세를 훨씬 넘어 약물치료 등을 통해 10년 만에 다시 섹스를 하고 감격해하며 열심히 처방전을 타가는 노인 커플도 있다”면서 “인간에게, 특히 남성에게 섹스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에게 마지막 사랑은 죽음이라는 실존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이것은 ‘남자는 섹스를 잘 해야 한다’는 젊은 시절의 ‘변강쇠’ 강박증과는 다르다. 어쩌면 대부분 남자들이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섹스의 진정한 혹은 여성적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요 관객이 50대와 60대가 아닌데도 이런 소재가 기꺼이 다뤄지는 건, “어느 세대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 게 오대표의 분석이기도 하다.
이윤수 박사가 2002년 우리나라 성인 남성 20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대의 15.2%, 60대의 28%가 비아그라를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엔 발기부전의 90%를 심인성으로 봤지만, 지금은 대부분 충치 같은 육체적 병으로 분류한다”고 말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든 마지막 사랑은 남아있는 셈이다.
덧붙이자면, 영화 속에서도 한국 남성의 ‘정력지상주의’는 꽤 두드러진다. 잭 니컬슨과 앤터니 홉킨스가 비아그라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데 비해 ‘고독이~’의 양택조는 보리밥을 먹다가도 부인을 즐겁게 해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