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본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남대문로5가 대우센터빌딩(큰 사진).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남상국 전 사장이 ‘과욕’으로 자신의 연임을 위한 로비를 하다 그 부메랑으로 연임도 못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삼켜버리고 말았다.”(대우건설 다른 간부)
3월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노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우건설 관계자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남 전 사장의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그만큼 남 전 사장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는 얘기인 셈이다. 물론 이들은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자살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다.
회사 경영 정상화엔 일등공신 ‘평가’
남 전 사장의 자살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노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 전 사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은 “노대통령이 한 사람의 유능한 CEO를 죽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열린우리당 등 여권에서는 남 전 사장의 죽음에 대해 “충격적인 일”이라면서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과적으로 남 전 사장의 자살은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노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남 전 사장 재임 중 대우건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했다. 1999년 말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 건설부문 사장을 맡은 그는 회사 분할을 통해 ㈜대우건설로 출범시켰고, 많은 수주 실적을 올려 지난해 매출 4조2311억원에 순이익 1637억원의 건실한 회사로 키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사 경영 정상화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회사 일각에서 “가만히 있었으면 ‘연임’에 성공했을 텐데, 괜히 로비를 했다가 자멸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평가도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건설업의 특성상 숫자로 드러난 실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서 “비록 재무제표 상으로는 순익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안으로는 곪아가고 있다는 얘기도 많았다”고 밝혔다. 민주당 P의원의 개입으로 공사를 수주한 중국의 한 현장처럼 정치권 ‘민원’에 시달리다 수익성 없는 공사를 떠안게 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남 전 사장은 자신의 연임 문제 역시 ‘정치적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는 노대통령의 형 건평씨뿐만 아니라 여권 고위인사들에게도 손을 뻗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인사의 한 측근은 “남 전 사장이 중간에 사람을 넣어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사장을 연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 은근히 하도급 관련 ‘이권’을 거론하기에 ‘그런 얘기라면 꺼내지도 말라’고 질책한 후 헤어졌다”고 털어놓았다.
한 행사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뒤에 서 있는 형 건평씨 (왼쪽).3월11일 오후 경찰과 119 구조대원들이 남 전 사장 시신을 찾기 위해 서울 한남대교 남단 아래를 수색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남 전 사장이 이처럼 몸이 달았던 것은 정대철 의원과 안희정씨 등이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남 전 사장이 두 사람에게 민주당 경선자금과 대선자금을 각각 제공했기 때문에 참여정부 들어서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구속돼 힘을 쓸 수 없게 되자 건평씨 등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우건설 내에서도 그동안 남 전 사장의 정치적인 ‘곡예’에 대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한 전직 임원은 “남 전 사장은 김대중(DJ) 정권 시절에는 DJ의 가족에게 접근, 자신의 보호막으로 삼았다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세론’이 일자 모교인 경기고 동문 인맥을 활용해 한나라당에도 접근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전했다.
남 전 사장이 재임 중 겪은 몇 차례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정치권 커넥션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위기는 예금보험공사가 2001년 대우그룹 부실 책임조사를 할 때였다. 당시 예금보호공사는 대우건설이 겉으로는 독립법인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지배하는 위장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남 전 사장은 여전히 건재했다.
남 전 사장이 정치적 ‘곡예’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업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게 대우건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서의 전직 임원은 “건설회사는 산하에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 협력업체 사장 가운데는 남 전 사장을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해주고 그 대가로 대우건설로부터 더 많은 공사를 따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임원에 따르면 DJ정권 때 잘나갔던 E건설 Y사장이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
그렇다면 남 전 사장은 왜 그토록 사장 연임에 집착했을까. 한편에서는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의 사장 교체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한 남 전 사장이 외부인사가 대우건설에 입성하는 것을 막으려고 자신의 연임을 위해 뛰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대우 출신 경영인 등이 대우건설 입성을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 것은 사실이다.
연임 집착은 낙하산 막기 위해서?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남 전 사장이 사장 연임에 ‘올인’한 데에는 말 못할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무엇보다 남 전 사장 입장에서는 대우건설을 떠나게 될 경우 맞게 될 후폭풍이 두려웠을 법하다는 것. 한마디로 “남 전 사장이 자신의 재임 중에 있었던 여러 문제가 후임 사장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하든지 사장을 다시 맡으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미 올 1월 초 대우건설 본사에 대한 전면 압수수색을 통해 비자금 장부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도급순위 1~2위를 다투는 대형 건설회사에 대한 수사인 만큼 정치권 로비 외에 수주 로비, 각종 리베이트, 하도급 비리, 임원들의 개인 착복 등 ‘백화점’식 비리가 속속 밝혀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돌았다.
그러나 남 전 사장 자살 이후 검찰 수사는 멈칫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대우건설 전·현직 임원들을 불러 고강도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 또 대우건설 관계자들이 모든 것을 남 전 사장에게 미룬다면 검찰로서도 마땅히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남 전 사장이 “모두 짊어지고 간” 셈이 돼버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