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9일 추미애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혁명 없이 현재 의석도 건지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천혁명 없이는 민주당은 현재의 의석도 건지기 어렵다.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이전에 공천혁명을 하자. 공천의 기준과 원칙을 정한 다음 선대위의 전면에 개혁 인재를 내세워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수권정당의 활기찬 모습을 보인다면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내고도 다른 당 후보에게 부역한 분과 분당에 핵심적인 책임이 있는 분들에 대한 공천은 불가하고 철회되어야 한다. 옥중출마조차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럴 경우 정치 불신에 가득 찬 성난 민심에 부채질하는 격일 것이다. 앞으로 구성될 선대위는 민주당다운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제시하고 구체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목조목 민주당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자회견을 끝맺었다.
“당의 미래와 개혁을 담보하는 공천과 선대위 구성을 촉구하며, 저의 마지막 목소리가 수용되기를 바랍니다.”
추의원의 비판은 곧장 당내 파장을 몰고 왔다. 불쾌하다는 게 대체적 반응이었다. “추의원의 비판은 당을 깨자는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의 한 인사는 “추의원의 그런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임중앙위원이 된 뒤 틈만 나면 공천 물갈이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추의원의 이런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달라고 지도부에 요청했다. 2월20일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조순형 대표가 조목조목 추의원의 주장을 반박한 것은 바로 이런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고 말했다.
“마지막 목소리 vs 당을 깨자는 얘기냐”
비교적 개혁 성향인 한 초선 의원도 “추의원의 충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 있는 사람 다 배제하면 민주당에 남는 게 뭔가. 가뜩이나 자산이 부족한 마당에 그나마 서로 반목해 득이 될 게 뭐냐”고 말했다.
이 정도 비판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추의원의 기자회견이 알려진 직후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추의원을 향해 육두문자가 섞인 거친 표현들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최근까지 ‘추미애 단독선거대책위원장’을 주장하며 응원했던 김경재 상임중앙위원마저 “(추의원이) 이렇게 안정감이 없으면 총선을 치르지 못한다”며 추의원 단독선대위원장안을 철회했다. ‘고립무원’이라는 표현만큼 추의원의 처지를 잘 설명하는 말도 없을 정도가 된 셈이다.
2월20일 열린 민주당 긴급상임중앙위원회 회의는 추미애 의원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이틀 뒤 당내 입 가진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하며 추의원에 대해 적의를 내비쳤다. 한 전 대표를 비롯해 김경재, 김영환 상임중앙위원도 “조순형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해 총선을 치러야 한다”며 추의원의 선(先)공천혁명 주장을 일축했다. 설훈 조성준 의원 등 일부 수도권 의원들이 추의원 지지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세 부족이다.
이처럼 추의원에게 민주당 내 대다수가 적의에 가까운 반감을 드러낸 까닭은 추의원이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던 ‘대선 때 민주당 후보를 내고도 다른 당 후보에게 부역한 분’, ‘분당에 책임이 있는 분’, ‘옥중출마를 생각하는 분’ 등이 사실상 현재 민주당의 주류이자 몸통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연말 전당대회에서 지금의 조대표를 비롯한 5인 지도부를 구성했지만 실제 저변에서 당을 주도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분당 파문 당시 정통모임을 이끌었던 박상천 정균환 의원과 강운태 사무총장 등이 지금도 변함없는 당의 주류라는 것. 특히 공천에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강총장을 두고 ‘실세 총장’이라는 수군거림이 나올 정도다. 이밖에 한 전 대표를 주축으로 한 호남과 수도권 세력도 무시 못할 세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몸통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일종의 자해행위에 대해 정가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해석은 “추의원이 탈당을 위한 명분 축적을 하고 있다”는 것. 추의원 자신은 이런 의혹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19일 기자회견 말미에 “‘마지막 목소리’가 수용되기를 바란다”라고 한 것을 두고 “사실상 추의원이 민주당과 결별을 선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경재 상임중앙위원도 “추의원이 탈당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 떠나는 모험? 또 다른 승부수는?
그러면 사실상 결별선언에 가까운 기자회견이 나오기까지 추의원과 민주당 주류 간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한 재선 의원은 “당의 총선 전략을 놓고 당 주류와 추의원 사이에 견해차가 있었다”고 말했다. 추의원과 김경재 상임중앙위원 등은 최근까지 추미애 단독선대위원장 체제로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조대표를 비롯한 대다수 중진들은 조순형 추미애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를 선호해왔다. 추미애 단독선대위원장 체제는 사실상 정동영 의장으로 대표되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과 정면으로 개혁경쟁을 벌이자는 전략인데, 민주당 주류는 이 전략이 우리당에 말려드는 악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당 전략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조대표가 주는 클린 이미지, 안정감 등이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총선 전략이다. 민주당 지지도는 10% 미만이지만 조대표에 대한 지지는 20%대 중반이라는 점은 조대표 이미지를 잘 활용하면 숨은 민주당 지지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화갑 의원(왼쪽)과 정균환 의원도 추미애 의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비아냥거림과 조소를 뒤로하고 추의원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과연 총선을 앞두고 당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할까. 그렇다면 어느 당으로 몸을 옮길까.
지난 23일 추의원의 향후 행보를 점쳐볼 만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설훈 조성준 송훈석 의원과 장성민 청년위원장 등 20여명의 현역 의원이 긴급 회동을 하고 추의원의 노선에 지지의사를 나타낸 것. 이들은 “현재 민주당 파행 공천을 좌우하는 강운태 사무총장과 유용태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당 주류를 향해 공격의 칼날을 세웠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정서에 의지하는 민주당의 호남 지역 의원을 제외하면 현재의 민주당 지지로 수도권, 중부권 의원은 모두가 당선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중부권 의원 입장에서 추의원의 문제제기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수도권 소장파와 추의원의 연대가 견고하다면 이들의 움직임은 민주당은 물론 우리당 등 주변 세력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한편 당사자인 추의원은 19일 이후 주위와 연락을 끊은 상태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거대한 제방의 붕괴도 실금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은가.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추의원의 움직임은 총선 전체 구도를 흔들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