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팀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레알 마드리드로 대표되는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메라리가는 유럽 프로축구 최강임을 자랑한다. 물론 지단, 호나우두 등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대거 영입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주축이 되는 자국 선수들 실력은 분명 정상급이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는 펄펄 날던 스페인 선수들은 이상하게도 국가 대항전에만 나가면 맥을 못 춘다. 월드컵에서도 매번 우승후보로 꼽히지만 지금껏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스페인 축구팀의 이 미스터리는 이 나라의 지역감정 탓이 크다. 스페인의 지역감정은 한국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이 지역감정이 프로리그에서는 강한 경쟁의식으로 작용해 전력을 상승시켰지만 스페인 대표팀에게는 오히려 악재가 된 것이다.
가령 어느 한 지방 출신의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면 나머지 지방 축구팬들은 그 팀에 등을 돌린다. 대표팀 선수들은 편향적으로 선발될 수밖에 없고, 골고루 뽑더라도 팀워크가 엉망이게 마련이다. 이 같은 지독한 지역감정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스페인 영화 ‘마리포사’가 배경으로 삼았던 시대가 바로 그 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영화에서 꼬마 아이의 시선에 비친 스페인 사회는 1936년 내전이 발생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가르시아라는 작은 마을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공화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교회를 주축으로 한 극우보수세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선다.
결국 프랑코가 주축이 된 반동 쿠데타가 일어나 공화주의자들은 전향하든가 숙청당하든가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화주의자 선생님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 자신이 직접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마리포사’ 이후의 시점, 즉 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내전에서 지역감정이라는 재앙이 싹튼 것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이 프랑코의 반대편에 섰기 때문이다. 프랑코는 내전이 끝나자 보복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수십년간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이들의 박해를 받았다. 카탈루냐 출신은 공직에도 기용되지 않았다. 섬유공업 중심지로 부유했던 바르셀로나는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점점 쇠퇴했다. 대신 마드리드는 프랑코 치하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었다.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프랑코 정권이 끝나자마자 공용어를 카탈루냐어로 바꾸는 등 스페인 내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택했다. 스페인 프로축구의 쌍벽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앙숙이 된 것도 당연하다.
지역감정에 관한 한 스페인과 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처럼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다. ‘황산벌’(사진)이 출발한 지점이 다소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이면서도 정면으로 거론하기에는 껄끄러운 ‘지역감정’에서 얘기를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와 백제 간 전쟁이라는 역사상 사건을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지역대결로 설정한 발상은 그런 점에서 대담하다. 감독은 “지역감정은 그때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칫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이 소재를 감독은 걸쭉한 욕지거리와 유쾌한 웃음으로 풀어냄으로써 스스로 그 같은 논란의 가능성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황산벌에서 얘기하는 지역감정은 지금 우리 사회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신라와 백제 간의 지역대결이 현재의 지역감정의 한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선거 때마다 출몰하는 지금의 지역감정이라는 유령의 뿌리가 김유신과 계백에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호남 사투리의 대결이라는 황산벌의 발상이 관객들에게 심각한 현재적 의미로 읽히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감독이 스스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의 지역감정은 그만큼 ‘정면’으로 다루기에는 만만찮은 문제라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아니면 스페인처럼 ‘이성적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닌, 그래서 진지한 시선으로는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괴물’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축구팀의 이 미스터리는 이 나라의 지역감정 탓이 크다. 스페인의 지역감정은 한국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이 지역감정이 프로리그에서는 강한 경쟁의식으로 작용해 전력을 상승시켰지만 스페인 대표팀에게는 오히려 악재가 된 것이다.
가령 어느 한 지방 출신의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면 나머지 지방 축구팬들은 그 팀에 등을 돌린다. 대표팀 선수들은 편향적으로 선발될 수밖에 없고, 골고루 뽑더라도 팀워크가 엉망이게 마련이다. 이 같은 지독한 지역감정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스페인 영화 ‘마리포사’가 배경으로 삼았던 시대가 바로 그 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영화에서 꼬마 아이의 시선에 비친 스페인 사회는 1936년 내전이 발생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가르시아라는 작은 마을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공화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교회를 주축으로 한 극우보수세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선다.
결국 프랑코가 주축이 된 반동 쿠데타가 일어나 공화주의자들은 전향하든가 숙청당하든가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화주의자 선생님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 자신이 직접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마리포사’ 이후의 시점, 즉 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내전에서 지역감정이라는 재앙이 싹튼 것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이 프랑코의 반대편에 섰기 때문이다. 프랑코는 내전이 끝나자 보복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수십년간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이들의 박해를 받았다. 카탈루냐 출신은 공직에도 기용되지 않았다. 섬유공업 중심지로 부유했던 바르셀로나는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점점 쇠퇴했다. 대신 마드리드는 프랑코 치하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었다.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프랑코 정권이 끝나자마자 공용어를 카탈루냐어로 바꾸는 등 스페인 내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택했다. 스페인 프로축구의 쌍벽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앙숙이 된 것도 당연하다.
지역감정에 관한 한 스페인과 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처럼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다. ‘황산벌’(사진)이 출발한 지점이 다소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이면서도 정면으로 거론하기에는 껄끄러운 ‘지역감정’에서 얘기를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와 백제 간 전쟁이라는 역사상 사건을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지역대결로 설정한 발상은 그런 점에서 대담하다. 감독은 “지역감정은 그때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칫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이 소재를 감독은 걸쭉한 욕지거리와 유쾌한 웃음으로 풀어냄으로써 스스로 그 같은 논란의 가능성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황산벌에서 얘기하는 지역감정은 지금 우리 사회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신라와 백제 간의 지역대결이 현재의 지역감정의 한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선거 때마다 출몰하는 지금의 지역감정이라는 유령의 뿌리가 김유신과 계백에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호남 사투리의 대결이라는 황산벌의 발상이 관객들에게 심각한 현재적 의미로 읽히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감독이 스스로 안전거리를 확보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의 지역감정은 그만큼 ‘정면’으로 다루기에는 만만찮은 문제라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아니면 스페인처럼 ‘이성적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닌, 그래서 진지한 시선으로는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괴물’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