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구본무 회장.
LG그룹의 ‘1등 콤플렉스’는 대단하다. 구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들뿐만 아니라 말단직원들까지도 ‘특정 기업’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LG카드가 ‘잘나가던’ 2000년 무렵 LG그룹에서 ‘동종업계 1등’을 차지한 회사는 LG카드와 LG홈쇼핑밖에 없었다. 특히 삼성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1위에 올라선 LG카드의 그룹 내 위상은 대단했다고 한다. LG카드에 대한 ‘구회장의 찬사’에 자극받은 LG 계열사 경영진들은 이후 경쟁기업에 대해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1등 LG’를 외치기 시작한다.
한때 구회장의 그룹 경영권까지 위협하며 현금서비스 중단 등 파국으로 치닫던 LG카드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수익성을 무시한 ‘1등 전략’에 치중해 LG카드의 부실을 키운 LG그룹에게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구회장의 ‘1등 LG’ 도전 선언과 맞물려 외형적으로는 카드업계 1위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나 주변환경이 악화되면서 결국 무리한 ‘1등 전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LG카드의 업계 1위 달성은 상당 부분 ‘쏟아 붓기식 묻지마 투자’에서 기인했다. 김대중 정부가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면서 획기적 카드 활성화 지원책을 내놓았을 무렵 길거리에서 미성년자 등 무자격자에게 카드를 발급하는 행사가 줄을 이었고 이는 결국 카드사 부실로 귀결됐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의 과열경쟁은 LG카드가 앞장서서 이끌고 다른 업체들이 ‘못 이기는 척’ LG카드를 따라가는 양상이었다고 한다.
LG그룹이 수년 동안 엄청난 돈을 들여 외형 확대에 집중해 LG카드는 겉으로는 업계 1위를 자랑했으나 당연히 속은 곪아터지고 있었다. 경기침체로 인해 경영 환경이 바뀌면서 LG카드는 결국 몰락하기 시작,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던 ‘회장실 전략가’ 출신 이 전 사장은 문책성 인사로 낙마했다. LG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1등 LG’라는 자신감을 주는 대상이었던 이 전 사장이 빗나간 1등 지상주의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추락한 것이다.
한편 LG카드 사태는 채권단이 2조원의 신규 지원자금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카드 대란’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상황을 더 방치할 경우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 등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LG카드 포기’라는 칼을 내건 LG그룹의 ‘버티기 전략’이 채권단을 굴복시킨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실책임을 갖고 있는 오너의 개인 보증을 막기 위해 국민과 금융시장을 놓고 벌인 LG의 ‘벼랑 끝 전술’이 언젠가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LG를 옥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