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뒤 스물여섯에 지방전문대학 상업디자인과 전임강사가 됐으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이 폐과를 하면서 졸지에 시간강사 신세로 전락. 그 후 보따리 장수로 8개 대학을 전전하다 간신히 충청대에 자리잡았고, 서른두 번이나 이력서를 제출한 끝에 14년 만에 서울산업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가 됐다.
나성숙 교수(50)는 거침이 없다. “면접에서 서울대 나온 여자교수가 오면 다른 대학 나온 남자교수가 주눅이 들어서 안 된다, 학부는 미술대학에서 하고 환경대학원을 졸업해서 안 된다, 여자교수는 땡 하면 집에 간다, 이런 말을 들으며 번번이 퇴짜맞아봐요. 한도 맺히고 오기도 생기지.”
디자인과 교수가 디자인 책이 아닌 ‘국립대 여교수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자서전을 쓴 이유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다. “여성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잖아요. 저는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해요. 인생은 유쾌하게, 그러나 함께, 노력해서 성취하자. 여성에게 할당할 필요가 있지만 거저 먹는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죠. 요행을 바라지 말고 여성과 남성 다 같이 잘 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1997년부터 발행해온 개인신문 ‘여우보(女友報·부수 1000부·www.yeowoobo.com)’에서 더욱 솔직 발랄한 여교수의 활약상을 읽을 수 있다.
나성숙 교수(50)는 거침이 없다. “면접에서 서울대 나온 여자교수가 오면 다른 대학 나온 남자교수가 주눅이 들어서 안 된다, 학부는 미술대학에서 하고 환경대학원을 졸업해서 안 된다, 여자교수는 땡 하면 집에 간다, 이런 말을 들으며 번번이 퇴짜맞아봐요. 한도 맺히고 오기도 생기지.”
디자인과 교수가 디자인 책이 아닌 ‘국립대 여교수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자서전을 쓴 이유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다. “여성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잖아요. 저는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해요. 인생은 유쾌하게, 그러나 함께, 노력해서 성취하자. 여성에게 할당할 필요가 있지만 거저 먹는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죠. 요행을 바라지 말고 여성과 남성 다 같이 잘 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1997년부터 발행해온 개인신문 ‘여우보(女友報·부수 1000부·www.yeowoobo.com)’에서 더욱 솔직 발랄한 여교수의 활약상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