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하양이 공기총에 난사당한 채 발견된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기슭 사건현장
경찰수사 결과 밝혀진 공기총 난사 살해사건의 주범은 숨진 하모양(22·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이종사촌 오빠인 김모 판사(30)의 장모 윤모씨(58)와 처갓집 친척. 김판사와 하양의 불륜을 의심한 장모 윤씨는 자신의 고종조카 윤모씨(42)에게 하양을 살해할 것을 교사했고, 조카 윤씨는 친구 김모씨(41)와 함께 하양을 납치한 후 공기총을 난사해 살해했다. 하양은 결국 끔찍한 오해의 덫에 걸려 사돈집 사람들에 의해 청부살해된 것.
지난해 이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된 후 외국으로 달아났던 윤씨와 김씨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4월11일 한국경찰에 넘겨졌다. 경기경찰청은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윤씨와 김씨로부터 “김판사의 장모이자 부산 향토 대기업의 회장 부인인 윤씨의 사주로 하양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낸 뒤 4월14일 이들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조카 시켜 새벽에 납치 공기총 난사
경찰에 따르면 범인 윤씨는 2001년 10월 고모 윤씨(김모 판사의 장모)로부터 “차라리 하양을 죽여버리는 것이 낫겠다. 죽일 사람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고교 동창생인 김씨를 사건에 끌어들였다. 실제 김씨는 공범 윤씨로부터 하양을 살해한 대가로 모두 1억7500만원을 받기로 하고 그중 5000만원을 그 해 10월12일 착수금 명목으로 받아 챙겼다. 하양의 머리와 얼굴을 공기총으로 난사한 주범이 바로 김씨. 윤씨는 사람을 시켜 구입한 공기총을 김씨에게 건네고 하양 살해를 독려했다. 경찰에서 윤씨는 “범행 전에 여러 차례 그만두려고 했는데 고모가 ‘부산지역 폭력배를 보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당시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된 것은 총기를 이용한 범행수법의 잔인함과 대담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양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법조인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됐기 때문이다. 하양 자신도 E여대 법대 3학년으로 사법고시 준비생인 데다 하양의 오랜 남자친구인 홍모씨(27)는 S대 법대 4학년생, 하양의 고교 과외선생이자 홍씨의 과 선배인 이종사촌 오빠 김씨는 현직 판사였다. 더욱이 김판사의 친구이자 학교 동창인 이모 변호사도 하양을 만난 것으로 드러나자 주변에서는 법조계의 S대 법대 스캔들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무수한 헛소문만 남긴 채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하양의 가족, 특히 아버지 하모씨(58)였다. 그는 하양 실종 첫날부터 범인이 조카인 김판사의 장모 윤씨임을 직감하고 경찰에 윤씨 주변에 대한 수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양의 남자관계에 주목했던 경찰은 수사 초기에는 이를 무시하다 수사를 진행할수록 하씨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 장모 윤씨에게 수사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면 김판사의 장모인 윤씨와 하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 하씨가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비극의 발단은 김판사가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99년 12월 윤씨의 딸 이모씨(26)와 결혼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출신으로 92년 S대 법대에 합격해 하씨 집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김판사는 자연히 이모네인 하씨 집을 자주 드나들며 당시 초등학생이던 하양과 친하게 지냈고, 하양이 고등학생이 되자 과외공부까지 책임졌다. 김판사는 결혼한 후에도 아내와 함께 하씨 집을 방문했으며 법대에 들어간 하양은 이것저것 물을 겸 결혼한 김판사의 집에 전화를 걸곤 했다는 것. 문제는 장모 윤씨가 김판사 어머니에게 하양의 전화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김판사의 어머니는 즉시 하양에게 “안사돈 어른이 달가워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전화는 하지 말라”고 주의시켰고, 이후 하양은 김판사에게 거의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윤씨의 의심은 풀리기는커녕 부풀기만 했다. 김판사에게 계속 “하양과 어떤 관계였냐”고 추궁하던 윤씨는 아예 그 이후(2000년 3월)부터 하양이 대학 2학년이던 2001년 9월까지 심부름센터 직원을 동원해 하씨를 미행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직접 사위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가 사위를 감시하기도 했다. 하양이 기숙사에 들어가자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하양의 입소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김판사가 자신의 대학동기 변호사를 하양에게 소개해준 것도 이런 장모의 오해를 없애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난 4월11일 중국 공안에 붙잡혀 국내로 압송된 하양 사건의 주범 윤모씨와 김모씨(위). 하양 시신 발견 직후 경찰이 뿌린 전단(아래).
견디다 못한 하양의 가족은 두 달 후인 2001년 8월 윤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검찰은 한 달 만에 윤씨의 모욕죄를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하양의 가족은 이를 근거로 법원에 윤씨와 그 가족의 하양 근처 100m 이내 접근을 막아달라는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 가처분 신청은 그 해 12월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하양 가족의 이 같은 조치에 분노한 윤씨는 하양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조카 윤씨에게 살인을 지시했다. 그 이전부터 이미 하양을 미행하던 조카 윤씨는 검찰로부터 명예훼손에 대한 기소유예 통지를 받은 10월12일 고모 윤씨에게서 “(미행은 그만두고) 차라리 죽여버려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버지 하씨는 “명예훼손으로 기소유예를 당한 뒤 윤씨의 주변에서 살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미행과 직접 확인에도 불륜의 증거를 잡지 못한 윤씨가 사람을 죽여야 할 만큼 의심하는 병이 깊어진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 하씨의 가족과 경찰은 이를 김판사를 사위로 맞는 과정에서 생긴 윤씨의 콤플렉스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에서 소문난 부자인 윤씨의 집안은 유흥업을 기반으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안이 소유한 부산의 향토 대기업도 스스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유흥업을 통해 번 돈으로 인수했다고 한다. 여전히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이 집안으로서는 S대 법대 출신의 김판사가 딴마음을 먹을까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경찰이 부산의 폭력배와 이번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수사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하양의 가족들은 김판사 집안과 윤씨 집안을 중매한 중매쟁이를 장모 윤씨의 의심을 증폭시킨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중매비용으로 윤씨에게 수천만원을 받은 중매쟁이가 김판사의 집안에서 약속한 비용을 내놓지 않자 윤씨에게 “김판사가 사촌누이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헛소문을 냈다는 것. 물론 모두 사실이라고 믿기는 힘들지만 경찰조사에서 윤씨는 이런 내용을 중매쟁이에게서 들었다고 시인했다.
아무튼 하양 아버지의 제보로 윤씨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를 하던 경기 광주경찰서는 결국 사건현장인 검단산 주변에서 사건 당일 범인 윤씨와 김씨가 살인을 사주한 장모 윤씨와 휴대전화로 통화한 사실을 알아내고 1년여 동안의 추적 끝에 범인을 모두 붙잡았다.
범인들의 자백과 하양 가족들의 진술로 밝혀진 여대생 하양 피살사건의 전모는 결국 부와 권력 간의 비뚤어진 매매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부폭력이 낳은 한 편의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