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1970년대, 독서실 주먹다짐 사건으로 노당선자와 첫 인연을 맺은 최도술씨는 이후 노당선자의 ‘집사’로 활동했다. 그는 이번 인사에서 총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한번 믿으면 웬만해서는 내치지 않는 노당선자의 인사스타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용설이 나돌던 인사들의 탈락도 화젯거리다. 인수위 K씨와 민주당 당직자 K씨가 물을 먹은 대표적인 케이스. 노당선자와 가까운 K의원을 통해 이력서를 넣은 인수위의 또 다른 인사도 청와대 입성에 실패했다. 또 다른 측근에게 전달된 한 언론인의 이력서도 노당선자의 눈길을 끄는 데 실패했다.
청와대 비서진 구성과 관련, 가장 큰 특징은 ‘힘의 분산과 집중’이다. 특정인의 독주는 차단하지만 청와대 전력은 하나로 집중, 파워풀한 청와대를 지향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엿보인다. 파워 청와대를 지향하려는 노당선자의 의중은 양적 팽창에서 일부 드러나지만 철저하게 노무현 사단을 전진배치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노무현 사단의 양날개인 386 및 부산 인맥과 통추세력 등은 이번 인사를 통해 청와대를 ‘접수’했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노당선자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업무 수행능력, 철학적 공유영역 등에 대해 노무현식 검증과정을 거친 후 발탁했다”고 말한다. 철저하게 ‘아는’ 사람 위주로 인선했다는 것. K의원 등을 통해 이력서를 넣은 인사들이 탈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직원은 물론 운전기사까지 ‘새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게 인사에 대한 노당선자의 굳은 의지다.
인사청탁 배제 철저하게 아는 사람 위주 인선
노당선자식 인사의 지향점은 개혁이다. 그러나 소수여당의 한계를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다. 따라서 이번 청와대 인선은 2004년 총선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하게 충성형 참모를 발탁했다는 특징도 눈에 띈다. 이번 청와대 인선은 신계륜 인사특보와 이광재 상황실장 내정자,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비서관 내정자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Y씨는 “32명의 청와대 비서관 인사를 그들이 주도했다”고 말한다. 특히 ‘신계륜팀’은 인사자료 취합, 대상자 면담, 인사를 위한 여론조사 등 전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국세청, 금감원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도 신특보 지시에 의해 이광재 내정자가 추진한 것으로 인수위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노당선자도 “그 팀이 추천했다면…”이라며 신뢰를 나타냈다고 한다.
‘신계륜팀’은 노당선자가 제시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움직였다고 한 측근은 설명한다. 이를테면 재경부 장관과 관련, 노당선자가 제시한 조건은 ‘안정성, 실물경제에 대한 식견, 국제감각’ 등이다. 대변인의 경우 ‘여성, 국제감각, 참신한 이미지, 홍보 마인드’ 등이 발탁 기준. 신계륜팀은 이 기준에 걸맞은 인물들을 찾아 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를 검증팀인 문재인-이호철 라인으로 넘겼다. 문내정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하는 사람’답게 혹독한 검증절차를 밟았다. 문재인팀의 검증을 거친 자료는 노당선자와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 문내정자 등이 참석하는 최종 테이블에 올려졌다.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이해성 홍보수석, 송경희 대변인, 이지현 외신담당 부대변인 내정자 등은 신계륜팀으로부터 출발, 문재인팀을 거쳐 발탁된 대표적인 ‘인사’로 알려졌다. 국민참여수석실 국민제안 비서관에 내정된 최은순 변호사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케이스. ‘민변’ 활동을 하면서 노당선자와 안면은 익혔지만 본인도 발탁에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였다.
문재인-이호철 라인은 부산 인맥의 대표주자다. 최도술 총무비서관, 안봉모 국정기록, 박재호 정무2비서관 내정자 등 부산 인맥은 한국의 아칸소 사단으로 평가된다. 문-이 라인은 또 경남고 3인방으로 분류된다. 3인방 가운데 한 명은 아직 ‘중원’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후문이다
절반 정도 운동권 출신-홍보수석실 기능 대폭 강화
기자회견중인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
37명 비서관 중 10여명이 투옥 경력이 있고, 15명 정도가 운동권 출신이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최소한 교내 시위라도 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라는 농담도 나온다.
홍보수석실 기능을 대폭 강화한 점도 관심사항이다. 홍보수석실은 1명의 수석과 11명의 비서관이 포진, 청와대 최대 기구라는 점에서 국정홍보에 대한 의욕도 남달라 보인다. 인터넷과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요구를 파악하고 각계의 의견을 홍보기획 비서관실에서 취합해 국정철학에 반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숨은 의도는 언론개혁으로 보인다. 노당선자는 언론 및 홍보감각과 국제화 마인드 등의 인선 기준 외에 “정치권과 언론에 신세진 일도, 신세질 일도 없는 사람”이라는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고 한다. 언론개혁에 대한 노당선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의지 때문에 당초 홍보수석 및 대변인 물망에 오른 인사들이 유탄을 맞았다. 신문기자 출신인 이병완 기획조정위 간사,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 김현미 당선자 부대변인 등과 2명의 학자 이름이 꾸준히 거론됐다. 그러나 노당선자가 “방송을 잘 알아야 한다”며 기수를 돌리면서 신예 이해성-송경희 라인이 등장했다. 발표 직후 작은 해프닝도 발생했다. 청와대 대변인 물망에 오른 김현미 당선자 부대변인이 출근을 거부하며 항의했고 외곽에서 거론되던 한 인사는 술로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
인사 때문에 고개를 숙인 인사들은 비단 이들뿐만 아니다. 과거 계보원 2, 3명을 ‘연락병’ 형태로 파견시켜 놓고 권력 중심부의 흐름을 파악했던 정치권 실세들의 경우 이번 인사에서 측근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무너졌다. 노당선자는 민원성 청탁이 예상되는 ‘면담’ 신청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 K의원도 노당선자를 만나 푸념을 늘어놓으며 은근히 자기 사람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 케이스. 노당선자는 30여분간 이어진 그의 푸념에 “그렇습니까”라며 맞장구를 쳤지만 그뿐이었다고 한다. 푸념을 들어주는 것은 인맥 관리 차원일 뿐 인사는 철저하게 노무현식 인사원칙과 잣대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원기 정치고문, 정대철 최고위원, 염동연 이강철 정무특보 등 노당선자의 핵심 측근 그룹 주변에는 민원서류와 이력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한다. 모 특보의 측근은 “(이력서를) 5000장은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이력서가 신계륜팀이나 문재인팀으로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갈등설과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이광재 상황실장 내정자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안희정’에 이어 중도 낙마할 것이란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측근그룹의 견제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런 흐름 때문인지 이내정자는 여러 차례 상황실장 자리를 고사했고, 이는 또다시 ‘파워게임’설로 확대됐다. 이광재-이호철 불화설도 그 가운데 하나. 노당선자의 부산과 386 인맥을 대표하는 두 인사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인사의 동선을 지켜본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경쟁과 보완의 관계일 뿐”이라며 불화설을 부정했다.
인사 시즌이지만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의 움직임이 조명을 받지 못한 점도 관심거리다. 386 및 부산 인맥 등이 속속 등장하지만 문내정자의 ‘손’을 탄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비서실장 직속기구인 총무, 의전, 국정상황, 국정기록 비서관에는 모두 노당선자의 핵심측근 그룹이 포진했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문내정자가 인사 시즌에 보인 정중동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갓 출범한 문재인(민정수석 내정자)-유인태(정무수석) 라인에 대한 ‘말’도 나온다. 노당선자 주변에서는 화합형 문내정자와 원칙주의자 유내정자의 서로 모순된 캐릭터를 주시한다.
386 인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문재인 민정,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내정자에 이어 정찬용 인사보좌관 내정 때까지만 해도 “파격적이지만 참신하다”던 평가는 386의 대거 발탁이 가시화하면서 대표성, 전문성에 대한 회의론으로 이어졌다. ‘개인적 인연’이나 ‘신선함’에만 치우쳐 업무 경쟁력 검증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료들의 불만이 많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 K씨는 “이런 식이라면 당에서 누가 일하겠는가”라며 불만을 쏟아낸다. 비슷한 볼멘소리는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터져 나온다(상자기사 참조). “정권이 교체된 1998년보다 더 각박하다”며 노당선자 진영의 홀대를 비난하는 것이 대표적인 흐름. 그러나 노당선자측은 이를 무시한다. 노당선자의 측근인 김두관 전남해군수의 말.
“미국의 조지아, 아칸소 사단처럼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위치에 가 국정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인사들 가운데 몇몇 인사들은 요즘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등 노당선자의 저서 읽기에 바쁘다. 발탁 직후 노당선자의 국정 철학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송경희 대변인 내정자가 대표적인 인물. 이는 검증기능의 취약성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있다. 권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대화한다. 또 공직사회를 지배하고 싶은 게 권력의 본질이다. 2실장 5수석 6보좌관으로 출발하는 청와대는 작은 정부와 거리가 있다. 일하는 청와대가 될지,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산실이 될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