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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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각체제’로 분산 보좌 실험

정책실·비서실·국가안보보좌관 장관급이 관장 … 태스크포스팀은 국정과제 담당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3-02-21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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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각체제’로 분산 보좌 실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주변에선 지난해 12월 초에 나온 ‘대통령의 성공 조건’이라는 책에 관심이 높다. 총 두 권짜리 방대한 분량임에도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는 평가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이 책을 기획하는 데 크게 기여한 서울대 국제지역원 박세일 교수를 한 차례 만나 자문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노당선자가 박교수를 중용할 것이라는 얘기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이 책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역임한 박교수가 심혈을 기울인 리포트라고 할 만하다. 공직을 경험한 그가 한국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대통령의 성공 조건을 학문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위한 연구팀 구성에서부터 연구주제 선정 및 추진 방식까지 직접 결정하고 이끌었다. 노당선자가 새 정부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구상하는 데 이 책을 상당 부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청와대 비서실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 시도된 실험이라는 점이다. 각각 장관급 책임자가 관장하는 정책실과 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체제로 삼원화하고 별도로 경제·정보과학기술 및 인사보좌관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시스템이다. 보좌관제는 미국 백악관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대신 지금까지 각 부처를 통제하고 관리하던 부처별 담당수석제는 폐지했다.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분리한 것도 처음 시도되는 실험이다.

    또 다른 특징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직접 추진해나갈 국정과제를 담당할 태스크포스팀을 둔다는 점. 우선 취임과 동시에 중점적으로 추진해나갈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 △지방분권 국가 균형발전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정부 혁신(행정개혁·재정개혁) 등 4대 핵심 과제를 담당할 태스크포스팀(팀장은 비서관으로 임명)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4대 과제 추진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형태로 구성할 예정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청와대 비서실 시스템을 보면 노당선자의 국정운영 원리를 짐작할 수 있다. 각 부처 장관에게 큰 폭의 재량권을 주되 정책 조정은 국무총리실에 맡기고, 대통령 자신은 주요 국정과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따라서 각 부처 간 정책 조정 업무를 맡는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이 차관급 차장을 두는 등 그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무조정실에서도 조정이 안 되는 사안은 정책실 기획조정비서관이 담당하도록 할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부처에 권한 대폭 이임 시행착오 우려도

    청와대 비서실 시스템 가운데 ‘대통령의 성공 조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정책수석실 및 국가안보보좌관, 인사보좌관제 신설 등이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인사 추천을 하도록 한 것도 ‘미국의 경우처럼 정무·고위직에 관심이 있는 개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세세한 인적 정보를 인사수석실에 보낼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당선자의 비서실 시스템이 과연 성공적으로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나 각 부처 장관에게 대폭 위임한다는 차원에서 구상된 비서실 시스템인 만큼 대체로 “방향은 맞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청와대 시스템만을 바꾼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내정된 인수위의 한 전문위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관료들은 일단 청와대 의중을 먼저 파악한 다음 일을 추진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청와대와 부처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관료들이 우왕좌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현직 청와대 비서관은 청와대 내 상전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 비서관은 “노당선자의 뜻대로 정부 부처의 자율성이 대폭 늘어날 수도 있지만 반면 대통령 비서실 내부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부처에서는 정책실과 경제과학기술 보좌관실 등에 중복 보고를 해야 하는 문제도 대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대통령이 위원회를 통해 주요 국정과제를 직접 챙긴다면 정책 집행기관인 정부 부처와의 업무 중복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령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의 업무 중복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청와대에서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한다면 총리실 기능이 위축될 수 있어 노당선자의 책임총리제 공약은 물 건너가게 된다.

    ‘3각체제’로 분산 보좌 실험

    노무현 당선자와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왼쪽). 청와대 비서실이 3각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달라지는 비서실장 위상이 주목받고 있다.

    또 업무 영역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청와대 참모진 간에 소모적인 주도권 잡기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령 인사 추천을 담당할 인사보좌관과 인사 검증을 맡는 민정수석 사이에는 필요 이상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참모진의 경험 부족과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인식 부족이 겹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비대화 논란도 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이 장관급 1명(비서실장)으로 출범한 것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은 장관급이 3명이나 되기 때문. 인수위가 “새 정부의 청와대 장·차관급이 17명”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수위측은 “국정과제 추진 위원회는 청와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장관급인 이들 위원회의 장을 제외하면 새 청와대 비서실 장·차관급은 13명”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는 부분은 민정수석실 직속으로 사정팀을 부활하겠다는 구상이다. 청와대 특명사건을 내사하던 과거 사직동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정팀을 10여명 정도 인원으로 신설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정치권 사정을 본격 추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등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민정수석은 “정치권이나 국민을 상대로 하지 않고 대통령 친인척이나 고위 공직자, 청와대 내부 감찰에 치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새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 운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새 대통령 비서실 시스템이 시대 변화에 맞는 방향이라면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정부 관료 모두가 시대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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