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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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경영 몰락 ‘쓴맛’ 잊었나

재벌, 혼맥 통한 배타적 경영권 구축에 관심… 능력 검증 기회 없어 ‘온실 속의 화초’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2-10-18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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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경영 몰락 ‘쓴맛’ 잊었나

    진로의 장진호 회장(사진 위)이나 삼미의 김현철 회장은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IMF의 직격탄을 맞은 2세 경영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에서 2세 경영인의 ‘파워’를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지난해 삼성전자와 거래하던 한 외국계 기업 바이어가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찾았다. 마침 그날은 공장 대청소날인 듯 전 공장이 환경미화 작업에 나선 것 같아 보였고 공장 내 일부 지역에서는 살수차까지 동원해 물청소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은 이건희 회장 아들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상무보’가 취임 후 공장을 처음 방문하는 날이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공장 내 일부 근로자들이 사무실을 비워놓고 대형 회의실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이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이재용 상무보의 공장 방문에 앞서 기흥공장을 찾았던 한 고위임원이 “회의실이 썰렁하게 비어 있는 것이 보기 안 좋다”고 지적하자 이 상무보의 방문에 맞춰 일부 직원들이 일종의 ‘이벤트’를 연출한 것. 이 바이어는 “한국기업의 유교적 풍토 때문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업무를 팽개치면서까지 오너의 2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상무보에 대한 이런 예우는 우리 기업에서 창업회장의 2, 3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사람들은 재용씨를 단순히 상무보로 본 게 아니고, 장차 삼성그룹을 이어받을 ‘미래의 오너’로서 대접한 것이다.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2세경영이나 가족경영은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창업세대들이 ‘한국형’ 재벌기업을 만들 당시만 해도 전문경영인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맨손으로 일궈놓은 기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창업세대들이 자녀들을 일찍부터 유학 보내 외국 경험을 하게 하고 학업을 마치자마자 계열사를 순회하게 하면서 경영수업을 시킨 것이 경영인을 양성하는 유일한 코스였던 셈이다.

    학창시절부터 경영권 승계 목표 엄격한 CEO 훈련



    그나마 창업1세대들이 활동하던 시기로부터 20~30년이 지나 2세들이 경영에 데뷔하면서 가족경영의 승계 흐름은 자연스레 해외유학을 경험한 2세로 이어져 보수적인 재벌그룹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도 있다. 재계에서는 보수적 기업문화로 유명한 삼양사가 정밀화학 및 의약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처럼, 제조업으로만 일관해오던 기업체질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신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2, 3세 경영인 체제가 갖는 장점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2, 3세 경영인들은 학창시절부터 경영권 승계를 목표로 엄격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미국의 유수 대학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지만 주요 그룹 오너 2세들의 경우는 보다 학문적 깊이가 있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태원 ㈜SK 회장은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유학시절에는 경제학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옥스퍼드대 정치학 석사 과정을 통해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일종의 ‘제왕학(帝王學)’을 익히기도 했다. 모두 미래의 CEO가 되기 위한 체계적 훈련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학업을 마치고 경영에 참여한 뒤에도 핵심적 업무를 단기간에 파악할 수 있도록 주요 부서를 순회하면서 경영 감각을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선대(先代) 오너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영 원로들이 일종의 ‘개인교사’로 포진해 각 분야의 경험을 전수하고 업무에 대해 조언하는 것 역시 ‘CEO 단기 압축과정’의 필수적 요건이다.

    2세경영 몰락 ‘쓴맛’ 잊었나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에 벌어졌던 현대그룹 ‘몽(夢)’자 돌림 형제들간의 경영권 분쟁은 2세경영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거치는 주요 부서가 자금이나 구매, 기획 등 ‘돈’과 관련된 곳이라는 점. 기업의 핵심 자원인 돈을 장악해야 장차 CEO가 돼도 흔들리지 않고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창업세대들의 사고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창업세대들은 또 자신의 ‘직할 부대’인 그룹 기획조정실 또는 회장 비서실 등의 조직을 만들어 2세 승계를 준비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막대한 증여세나 상속세 등의 문제로 경영권 승계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일찍부터 이를 실무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던 것. 당연히 이들 조직의 주 업무는 창업주 일가의 ‘재산관리’였고, 이들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후에 각 계열사 CEO로 발탁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창업세대들의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2세 경영자들 가운데는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 창업세대가 기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경험한 ‘쓴맛’을 보지 못한 채 경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자마자 무모한 확장에 나섰고, 그 결과 IMF 직후 잇따른 부도사태를 맞았다.

    이런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2세 승계 등을 통한 총수 일가의 ‘경영권 독점 현상’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2세 경영자들은 사내외 경쟁을 거치지 않고 성장해왔기 때문에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는 형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가족경영에 의존하는 회사일수록 인사를 앞두고 대권승계에 방해가 되는 유능한 경영인을 제거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가족경영의 폐해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대권’을 넘겨받은 2세 경영인들이 회사를 장악해가는 데 ‘병풍’ 역할을 하는 원로들은 살아남고 ‘직언’도 서슴지 않는 전문가 그룹은 도태되는 ‘하향안정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혼맥을 통해 ‘총수 가족’에 새롭게 편입된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 재계에서는 ‘혼맥’을 통해 창업세대의 경영권이 사위에게로 넘어간 대표적인 경우로 동양그룹을 꼽는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첫째 사위인 현재현 회장은 검사를 그만두고 경영에 뛰어들어 현재 동양그룹 회장을 맡고 있으며, 둘째 사위인 담철곤 회장 역시 동양제과 사장을 맡았다가 현재는 분가(分家)한 오리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반면 슬하에 1남5녀를 둔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외아들인 이웅렬 회장 이외에 다섯 명이나 되는 사위들이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딸만 둘을 두고 있는 대상의 임창욱 명예회장도 일찌감치 전문경영인 체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사위를 통한 경영 관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장녀 세령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와 결혼해 대상그룹에서 사위와 경영권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LG그룹 역시 구본무 회장이 딸만 둘을 둔 탓에 사위 쪽으로 경영권이 승계될 가능성이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그룹 내 전통을 감안할 때 아직 학생 신분인 두 딸이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사위를 통한 경영승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진로 장진호 회장, 삼미 김현배 부회장, 쌍용 김석준 회장, 뉴코아 김의철 회장, 한라 정몽원 부회장 등 몰락한 2세 경영인을 가르쳤던 송기철 고려대 명예교수는 99년 제자들을 잘못 가르쳐 부실 경영인을 양산해낸 데 대해 참회하면서 2세 경영 실패의 원인으로 “하나의 짐밖에 질 수 없었던 제자들이 2∼3개의 짐을 지려는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2세 경영의 몰락을 지켜본 한국 경제는 ‘IMF 사태’라는 스승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웠을까. 재계가 아직까지도 혼맥 형성을 통한 배타적 경영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실제로 우리 재계가 얻은 교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재벌은 아직도 아들딸은 물론 사위와 며느리까지 동원해 ‘하나의 짐이라도 더 걸머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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