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

쥐라기 공원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0-17 10: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쥐라기 공원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역사 속에 분명 실재했음에도 상상의 동물처럼 여겨지는 공룡. 그 공룡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즐거운 상상은 스필버그의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영화 ‘쥐라기 공원’ 시리즈가 전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을 때 영국 BBC방송은 야심 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3년간 약 120억원의 제작비와 100명이 넘는 전문가를 투입해 완성한 작품이 ‘공룡 대탐험’이다.

    아마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김없이 VTR 옆에 테이프 두 개짜리 ‘공룡 대탐험’이 꽂혀 있을 것이다. 박제화된 공룡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한 표정을 지닌 BBC의 공룡들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공룡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TV시리즈로 인기를 모았던 ‘공룡 대탐험’이 마침내 책으로 나왔다.

    다큐멘터리 ‘공룡 대탐험’이 주는 교훈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처럼 분별없는 인간들이 설쳐대지 않아도 중생대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들이훌륭한 연기자요 스토리텔러라는 것이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 공격하고 방어하고,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고 번식하는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이 책은 6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새로운 생명’은 늦은 저녁 햇빛 속에 어린 코엘로피시스가 먹이를 찾아 물가에 나온 모습부터 시작된다. 공룡은 삼첩기에 몸놀림이 잽싸고 가뭄에 잘 적응하는 형태로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초기 공룡이 코엘로피시스였다. 두 다리로 직립하고 움켜쥘 수 있는 손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이들은 빠르게 번식한다. 이어 포스토수쿠스, 플라케리아스, 플라테오사우루스, 키노돈트, 페테이노사우루스(최초의 익룡)가 등장한다. 이중 몸길이가 5m나 되는 포스토수쿠스는 갑옷처럼 생긴 등과 강력한 턱을 지닌 무서운 포식자였다. 그는 먼 친척뻘인 플라케리아스를 잡아먹고 나중에 가뭄으로 먹이 부족이 극심해지자 새끼공룡이나 알을 잡아먹으며 생존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포스토수쿠스도 온순하지만 몸집이 거대한 플라테오사우루스를 당할 수는 없었다.

    그 후 공룡들은 ‘크기의 경쟁’을 시작한다. 이 무렵 디플로도쿠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오르니톨레스테스, 아누로그나투스 등 일단 크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공룡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 책의 2장 ‘화려한 지배자’는 초식공룡 디플로도쿠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몸무게가 25t에 이르는 디플로도쿠스는 한꺼번에 알을 100여개씩 낳는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 새끼들이 하나 둘씩 부화할 때 육식공룡 오르니톨레스테스가 구덩이 옆에서 조용히 ‘먹이’의 탄생을 기다린다. 새끼공룡은 구덩이를 빠져나오자마자 오르니톨레스테스의 먹이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살기 위해 달음질쳐야 한다. 디플로도쿠스 새끼들은 살기 위해서는 빨리 성장하는 수밖에 없기에 먹을 것에 집착한다.



    쥐라기 공원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브라키오사우루스보다 몸길이가 2 배쯤 더 긴 디플로도쿠스는 다 자랐을 때 45~50m가 된다. 한때 공룡학자들은 디플로도쿠스의 꼬리가 땅에 끌렸느냐 들렸느냐를 놓고 고심했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디플로도쿠스의 꼬리는 마치 현수교처럼 들려 있어 긴 목과 균형을 이룬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3장 ‘잔인한 바다’는 쥐라기 후기 해양 파충류의 황금시대를 소개한다. 상어 같은 모습에 왕방울 눈을 가진 옵탈모사우루스, 몸길이가 8m 가까이 된 크립토클리두스, 해변에 살며 썩은 고기를 먹은 에우스트렙토스폰딜루스, 물 위를 낮게 날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해양 익룡 람포링쿠스 등이 이 시대 대표선수들이다.

    이때 하늘의 패권은 누가 쥐고 있었을까. 4장 ‘하늘의 제왕’은 1억2700만년 전 백악기로 넘어간다. 단 한 번 날갯짓으로 500km 정도를 날 수 있었던 거대한 익룡 오르니토케이루스 떼가 해변가에서 짝짓기하는 소리는 ‘장엄미사곡’을 연주하는 듯하다. 힘센 수컷을 찾는 암컷들, 그 사이 젊은 익룡과 노쇠한 익룡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한다. 결국 쓰러진 늙은 익룡은 젊은 동료들의 먹잇감이 된다.

    5장 ‘얼음 숲의 영혼’은 백악기 남극권에 살았던 공룡들을 보여준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학자들은 북극이나 남극 부근에 공룡이 서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60년대 알래스카에서 공룡뼈가 발견됐고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공룡화석이 발견돼 이들이 극지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제 아쉽지만 6장 ‘공룡 왕국의 최후’로 넘어가야 한다. 6500만년 전 백악기 후기 수백년간 화산 폭발이 계속되면서 대지는 화산재와 독가스로 뒤덮인다. 더 이상 공룡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면서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의 포효 속에 파충류시대는 막을 내린다.

    징검다리 건너듯 책 한 권을 훑어본 소감은 최고의 다큐멘터리 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필름을 책으로 만들 경우 텍스트가 부실해지기 쉽다. 아무래도 TV는 시각효과를 우선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탄탄한 텍스트 위에 철저하게 고증한 시각효과를 얹어놓았다. 책 속의 사진들은 실제 사진과 모형,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조합이라고 한다. 엉성한 공룡 일러스트나 박제화된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실제로 2억2000만년 전 지구를 활보했다. 최고의 다큐멘터리가 최고의 책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공룡 대탐험/ 팀 헤인즈 지음/ 허민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92쪽/ 3만5000원





    화제의 책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