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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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 얼굴 없고 끝 모른다

공습 1년 탈레반·알 카에다 지하드 계속 … 빈 라덴 행적 묘연 미군 특수부대 ‘고단한 싸움’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2-10-17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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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미국의 10·7 공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1주년을 맞았다. 아프간 전쟁에 비판적인 서방 언론은 아프간 전쟁을 ‘불확실한 전쟁’ ‘끝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알 카에다 조직은 약화됐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탈레반 잔여 세력과 알 카에다가 벌이는 대미(對美) 지하드(성전)는 지금도 아프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군 주둔지인 카불 외곽 바그람 군사공항엔 잊을 만하면 로켓포가 날아들고, 수도 카불에선 걸핏하면 총격전과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아프간 전쟁에서의 최종 승리를 단언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프간 전쟁엔 미군 6500여명, 영국군 6100여명이 투입됐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는 아프간 산악지대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동굴에 은신한 탈레반과 알 카에다 무장세력을 상대로 고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곳곳서 총격전 폭탄테러 발생

    아프간 현지 주민들의 미군에 대한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카불 전쟁부상자 병원에서 만난 한 피해자는 미군을 “오폭 사실을 부인하는 얼굴 두꺼운 군대”라며 비난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로의 확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탓에 아프간 전쟁에 우호적이던 이른바 ‘국제연대’도 갈수록 느슨해져가는 분위기다. 아프간 북부를 지배하고 있는 도스툼 장군(우즈베크족)을 비롯한 지방 군벌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신경 쓸 뿐,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남의 일로 여기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탈레반과 알 카에다 세력은 ‘외부의 침략군’(영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게릴라전으로 맞서면서 폭탄테러와 암살로 아프간 내 친미세력을 위협하고 있다. 7월 압둘 카디르 부통령이 카불 시내에서 경호원 2명과 함께 암살당한 바 있다. 9월5일에는 아프간 수도 카불의 미 대사관 건물 가까이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졌고,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아프간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임시대통령이 저격을 받기도 했다.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행적도 아직 안개 속이다. 아프간 현지 취재 때 바그람 군사공항에서 만난 한 미 특수부대원은 “동굴 속에 은폐돼 있던 탈레반 탱크가 공습으로 사라진 것처럼 토라보라 동굴 속에 숨어 있던 빈 라덴 역시 미군 공습으로 무너진 동굴속에 영원히 매장된 걸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빈 라덴이 죽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상태다. 문제는 아프간 전쟁이 터진 지 1년이 넘도록 미 CIA가 빈 라덴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CIA는 최신 감청장치를 동원해 무선전화와 라디오 송수신은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오가는 전자우편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 CIA는 빈 라덴이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와 함께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간 산악지역에 은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우구스트 하닝 독일 연방정보국(BND) 국장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간 국경 어딘가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 특수부대원들과 CIA 현지 공작원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국경선 일대의 팍티카, 팍티아 등 4개 주에서 빈 라덴을 찾기 위해 매복과 수색을 되풀이하는 특수작전을 펴고 있다. 현상금을 노린 아프간 현지 정보원들의 잇단 제보를 토대로 수색에 나서고 있지만, 이 역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세력이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헤크마티아르는 아프간 최대 부족인 파슈툰족 출신으로 1980년대 아프간 내전 과정에서 헤즈비 이슬라미 무장세력을 이끈 인물이다. 당시 그는 아프간의 다른 어떤 군벌들보다 미 CIA의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많이 받았지만, 90년대 이후 그가 보인 정치적 성향은 빈 라덴과 비슷한 이슬람 근본주의 반미 노선이다. 그는 옛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미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뗀 뒤 잠시 카불 정권을 이끌기도 했다. 최근 카불과 남부 칸다하르에서 일어난 몇몇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로 꼽히기도 하는 헤크마티아르는 카르자이 아프간 임시정부를 쓰러뜨리고 카불에 엄격한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BND는 “빈 라덴이 헤크마티아르 세력과 함께 임시정부 타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금 유입·조직원 충원 재기 노려

    미국과 유럽이 1억 달러가 넘는 빈 라덴의 자산을 동결했지만 알 카에다는 재정난을 겪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감시위원회에 제출된 한 비공식 보고서는 “9·11테러 뒤 펼쳐진 연합군의 전방위 공세로 알 카에다 주력은 붕괴됐지만 알 카에다에 대한 자금 유입과 조직원 충원을 막지는 못했고, 알 카에다의 재정 구조가 전반적으로 탄탄하다”고 밝혔다.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알 카에다 잔여 세력들은 이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CIA는 알 카에다 조직 구조가 지난 1년 동안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9·11 이전에는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조직을 이끌었다면 9·11 이후엔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를 대신해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7명 가량의 중간간부들이 알 카에다 조직을 사실상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알제리, 이집트, 중동, 파키스탄, 동남아시아에서 활동중인 이슬람 테러조직들과 손잡고 대미 지하드 공동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미국을 겨냥한 ‘신(新)테러 동맹’의 출현인 셈이다. 10·7 공습 1주년에 즈음해, 알 카에다의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면서 지하드를 선언했다. 부시의 아프간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결과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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