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씨(43)의 소감이다. 현재 계측기기 회사 시마즈제작소의 주임(과장 아래의 직위)으로 근무하는 다나카 고이치씨는 자신의 수상을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라며 겸손해했다. 노벨화학상은 일본이 3년 연속 수상하는 분야로, 올해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의, 그것도 학사 출신인 무명의 엔지니어가 수상했다.
대학보다 자유로운 연구 풍토
하지만 다나카 고이치씨의 노벨상 수상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일본 기업 내에는 노벨상에 근접해 있는 ‘수상자 예비군’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이들은 노벨상 수상 시기가 문제일 뿐 수상 자체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들은 누구이고, 도대체 어떻게 일본 기업은 이런 탁월한 연구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다나카 고이치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순수한 엔지니어다. 1987년 시마즈제작소에서 다나카씨가 개발한 질량분석기는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의 질량 측정에 필수적인 기기다.
도호쿠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별종으로 통했고, 연구 과정상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시행착오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이 글리세린에 고체 분말을 혼합한 것이었다. 이 실수가 결국 노벨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이는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해 화학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실수가 가능했던 것이다. 만일 생화학 분야의 전문지식이 있었더라면 거기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실수’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되는 나카무라 슈지 캘리포니아대학 산타바바라 분교 교수, 7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에사키 레오나 시바우라공업대학 총장(왼쪽부터).
다나카 고이치씨 다음의 노벨상 수상자로 유력시되는 인물이 나카무라 슈지씨(47)다. 93년 12월 20세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청색 LED(발광 다이오드)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타바바라 분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청색 LED란 빛의 효율성과 내구성이 특출한 조명의 일종으로 지난 20년 이상 적색과 녹색 LED만 존재해왔다. 청색 LED만 있으면 빛의 3원색이 생겨 1600만 색의 표현이 가능해지고, 이는 곧 조명기기, 디스플레이 등의 대혁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치열했다.
이런 청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나카무라씨는 올해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의 공학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고(1824년 창설된 이 상은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이 수상해 ‘노벨상의 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9월에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기술 혁신에 공헌한 인물 6인에게 수여하는 이노베이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그가 재직하고 있던 니치아 화학공업을 퇴직한 후에는 MIT 등 미국의 10개 대학, 5개 기업으로부터 교섭이 들어왔는데, 그중에는 연봉 50억원에 수백억원의 스톡옵션을 제시한 기업도 있었다.
도쿠시마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원래 세계적인 부품기업인 교세라에 입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만나 결혼한 부인이 딸을 출산하는 바람에 그는 교세라 입사를 포기한다. 교세라 본사가 대도시인 교토에 있기 때문에 딸을 여유 있는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고 판단, 지방기업 니치아화학공업을 선택한 것이다. 니치아화학공업은 현재 매출 4000억원에 1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본사 건물도 없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는 니치아화학공업에서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다. 신년 초 하루 이외에는 쉬지 않았고,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연구를 시작하면 각종 회의에도 불참하고 전화도 받지 않을 정도로 몰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 개발에 시간이 걸리자 주변에서는 되지도 않을 청색 LED 개발에 돈만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가와 에이지 사장은 나카무라씨를 전폭적으로 신뢰,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50억원의 개발 자금을 제공하고 미국 유학까지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소노무라 아키라씨(60)는 전자현미경 개발자로 99년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물리학 부문 수상자다. 40만평의 사이타마현 숲속에 있는 히타치 기초연구소의 펠로(최고위 연구자)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86년 단 한 장의 전자현미경 사진으로 59년 이래 지속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 유명해졌다. ‘아하라노프 봄’ 현상이라는, 전자는 자장에 닿지 않아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을 사진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
65년 도쿄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소노무라씨는 “동기생 중에 머리 좋은 녀석들이 너무 많아 좀처럼 따라가기가 어려워” 대학원 진학이 아닌 기업체를 택했다. 대부분의 졸업생이 대학원을 선택했지만 그는 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회사 내에서 전공 분야도 주류가 아닌 전자현미경 기술을 택했고, 회사가 보내주는 유학처로는 미국의 시카고대학(히타치가 전자현미경 기술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던 대학)을 거부하고 독일 튀빙겐대학을 선택했다. 이유는 “시카고대학 기술은 현재 주류이긴 하지만 선진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전자현미경 기술은 초전도와 나노 테크놀로지 분야 연구에서 최대의 무기가 되어 있다. 30여년 전 비주류 기술을 고집한 소노무라씨의 선택은 옳았던 것이다.
이지마 쓰미오씨(63)는 NEC 연구개발 그룹의 수석연구원으로 나노 튜브 개발로 96년 아사히 상을 수상하고, 올해에는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의 물리학 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인물이다. 미국 아리조나대학 연구원, 케임브리지대학 객원연구원을 거쳐 87년부터 NEC에 재직하고 있는 그는 91년 나노 테크놀로지에서 주목받고 있는 탄소 소재의 카본나노튜브의 구조를 해명해 나노 테크놀로지 연구에 불을 붙였다.
이지마씨의 나노튜브 연구는 분자 사이즈의 반도체 제조를 가능하게 했다. 분자를 집적하면 원리적으로는 실리콘의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슈퍼컴퓨터가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경량화되고 계산 속도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 때문에 세계의 컴퓨터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현재 일본 경제는 10년 이상 장기 불황에 빠져 있지만 자동차, 나노 테크놀로지, 바이오 등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경쟁력을 유지하게 하는 원천이 일본 기업의 체제와 문화다. 예를 들어 종신고용은 그 한 예다. 현재 일본 기업의 종신고용 제도는 약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타국가의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도 그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대상이 되는 연구 성과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재에 투자하고 이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용 안정성을 유지한 결과가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수상 가능자) 배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점도 일본 기업의 중요한 장점이다.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씨의 경우는 물론 청색 LED를 개발한 나카무라 슈지씨 등은 자신의 판단을 기초로, 때로는 회사의 방침과 다른 방식으로 기술 개발을 시도했다. 일본 기업의 특징은 이런 ‘이단아들’을 조직 내에 온존시키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세계 노트북 PC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도시바의 노트북 개발이나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개발 역시 바로 이런 개발자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현재 인기 있는 테마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장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연구 주제를 선택할 수 있다. 소니 재직중 발견한 에사키 다이오드로 7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에사키 레오나씨(현 시바우라 공업대학 총장)가 말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자의 자세는 바로 일본적 기업 풍토에서 쉬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유행을 타지 않고 다른 연구자를 모방하지 않는다. 작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