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 magenta@kornet.net

    입력2004-10-13 17: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담배 연기 속에서 안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음을 실감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금연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말이다. 희뿌연 연기가 가득한 파리의 카페에서나 연신 물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랍의 카페에서나…. 이런 담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나라가 바로 쿠바다. 신대륙 발견을 열망하던 콜럼버스는 그 대륙의 원주민들 손에 들려 있던 ‘불타는 나뭇잎’을 스페인으로 가져갔고, 결국 유럽과 전 세계에 퍼지게 했다. 그 나뭇잎이 이제는 쿠바를 대표하는 명품 ‘아바나 시가’로 발전하여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현란한 살사 춤, 사탕수수로 만든 달콤한 럼주, 초록과 하늘빛이 어우러진 카리브해로 대표되는 나라. 그리고 헤밍웨이가 삶의 마지막을 보낼 만큼 사랑했던, 기후 좋고 아름다운 나라. 해는 져도 음악과 열정 그리고 자욱한 시가 연기는 사라지지 않는 나라.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어둠 속에 싸인 스페인풍의 고혹적인 건물들을 지나 아르메스 광장 한쪽에 있는 ‘암보스 문도’ 호텔을 찾아 쿠바에서의 첫날밤을 맞았지만, 여기서 헤밍웨이가 오랜 기간 머물렀다는 감회에 젖지도 못한 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 속에서 그윽한 연기를 뿜어내는 시가를 피우며 소설을 쓰는 헤밍웨이와 두꺼운 시가를 멋지게 물고 있는 말론 브란도를 만났고, 말 위에서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시가를 피우는 체 게바라를 만났다. 사실 아바나 시가는 그 품질의 우수성과 함께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로 전 세계를 주름잡던 유명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바나 시가는 그 애호가들의 면면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나 레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이 아바나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는 매력과 카리스마를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26세에 ‘데일리 그래픽’지의 종군기자 자격으로 아바나에 온 처칠은 하루에 14~16개 그것도 더블 코로나를 즐겨 피웠는데, 항상 절반만 피웠던 그의 습관을 감안하면 평생 25만 개 정도의 시가를 피웠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아바나 시가 광이었다. 지난 1994년 초 세상을 떠난 다비도프 지노는 20세기에 가장 활발하게 아바나 시가를 선전했던 인물로 ‘미스터 아바나’로 불리기도 했고,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나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영화계 스타도 열렬한 애호가였다. 유명 문학인 역시 아바나 시가와 그 연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인데, 발자크는 작품 속에서 군인, 정치인, 자본가, 사교계 인사 등 거의 모든 권력자와 멋쟁이들은 시가를 피우는 것으로 묘사했으며, 낭만주의 여성 작가인 조르주 상드는 “시가는 고통을 잠재우고, 무료함을 달래주며, 한가한 시간을 더욱 편하고 마음 가볍게 만들어주고, 고독한 순간을 수많은 우아한 이미지로 가득 채운다”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기호품 ‘담배’ 아닌 삶의 한 부분



    한때 아바나 시가는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면서 직위가 높은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고가였고 이로 인해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1개비에 영화 한 편 값에서 좋은 와인 한 병 값과 맞먹는 것도 있다. 그래서 명품이자 동시에 사치품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그러나 쿠바에서는 이런 편견을 가질 수 없다. 누구나 손쉽게 아바나산 시가를 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따뜻한 태양 아래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며 팔뚝만한 시가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몬테크리스토나 파르타가스라는 상표가 붙여진 것은 아니어도 쿠바에서, 쿠바인들에게는 모든 시가가 ‘아바나 시가’다. 물론 아바나 시에도 명품만 파는 가게며 ‘아바나 시가 애호가 클럽’이 있지만 이런 장소가 아니더라도, 어느 골목에서나 시가를 문 채 연기를 내뿜는 쿠바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쿠바에는 평생 피고도 남을 만큼의 아바나 시가가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쿠바 뮤지션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는 시가 공장에서 일하며 음악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 역시 아바나 시가 애호가로 “나한테는 시가가 음악만큼이나 중요하고 나의 삶만큼이나 꼭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은 쿠바인들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말인 듯싶다. 그들에게 시가는 담배라는 기호품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인 셈이다.

    카리브海 고독 달래는 ‘하얀 연기’
    최상의 담배잎을 재배할 수 있는 기후 조건과 1810년 자체 생산 이래 지금까지 비밀에 부쳐 있는 제조 비법, 그리고 시가를 말면서 시가를 피울 만큼 시가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있기에 아바나의 모든 시가는 명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바나 시가와 관련하여 이런 말이 있다. “체 게바라와 존 F. 케네디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쿠바산 시가를 엄청나게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점. 케네디는 쿠바산 시가만 사랑했지만 게바라는 그 시가를 만들어낸 쿠바와 쿠바 민중, 자연까지 사랑했다.”

    아바나 시가는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명품이지만 쿠바인들은 오래 전부터 음미해 온 것이며, 생활과 쿠바가 곧 시가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다. 명품의 자부심에 앞서 이미 생활이 된 시가 연기는 지금 경제난 속에서 아픔을 겪는 쿠바인들의 한숨을 덮어주는 하얀 묘약인지도 모르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