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20분이 넘는 혈투 끝에 누구도 예언하지 못했던 4강 신화를 이뤄낸 지난 6월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붉은 악마’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남쪽 관중석에서 ‘대~한민국’구호에 맞춰 갑자기 비누거품이 솟아오르듯 하얀 물결이 솟구쳐 올랐다.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
끝없이 펼쳐진 붉은 카펫 위에 거대한 수를 놓은 것처럼 강렬한 모습으로 ‘아시아의 자존심’을 목청껏 외친 한국 응원단의 장관이 펼쳐졌다. 순간 광주경기장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운 4만5000여 관중 사이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터졌다. 그러나 탄성은 경기장에 모인 관중만의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으로 8강전을 지켜보던 40억 세계인들 역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날 붉은 악마, 아니 모든 한국인은 세계인들을 상대로 ‘아시아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식민(植民)의 역사와 저개발의 질곡, 80년대 도약의 활력을 모두 잃은 채 비합리와 부패로 인해 경제위기를 자초한 ‘미완의 대륙’으로만 인식돼 온 아시아. 아시아는 비로소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세계인들을 향해 ‘우리가 비로소 세계의 중심으로 간다’는 메시지를 웅변으로 외쳤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聖地)인 광주에서 한국인들은 바로 우리가 4강 신화를 통해 아시아의 자존심을 짊어지고 세계무대로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다이내믹 코리아’ 아시아 전체의 새로운 화두로
붉은 악마 신인철 회장은 “일본은 늘 ‘아시아를 벗어나자’(脫亞入區欠)고 외쳤지만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8강, 아니 4강 진출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우리는 ‘아시아의 중심에서 아시아를 이끌고 세계로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를 화두로 꺼내든 것은 비단 광주월드컵경기장의 붉은 악마들뿐만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출전한 중국 응원단 ‘치우미’를 리드한 응원단장은 한국의 20대 여성이었다. 또 8강 문턱에서 좌절한 일본인들은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않고 아시아의 이웃인 한국의 결승행을 응원하고 있다.
16강 문턱을 넘기도 전에 주저앉은 중국 역시 아시아인으로서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전패로 탈락하자 ‘군자의 복수는 10년 걸려도 늦지 않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이를 악물었던 중국 언론들은 유독 한국의 선전에 대해서만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이 탈락한 뒤 언론들은 중국팀의 투지 부족을 한 목소리로 질타하면서 ‘한국의 전투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류(韓流) 열풍으로 그러잖아도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중국 주요 도시에서 이제 축구라는 히트상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만 달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동안 ‘아시아’라는 브랜드는 세계무대에서 역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미국과 유럽이 결승점을 가리키며 치닫고 있다면 아시아는 이제 막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갔거나, 그도 아니면 저 앞에 가던 선수마저 허들에 걸려 넘어져 비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고, 일본은 ‘발톱 빠진 종이호랑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중국은 ‘막 잠을 깨기 시작한 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2 월드컵, 그리고 한국의 4강 신화를 통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구촌의 새로운 ‘허브’(hub)로 떠올랐다. 아시아가 하나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틔웠다면 물론 그 가운데에는 한국이라는 향기로운 꽃술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얼마 전부터 내세웠던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구호는 열광적인 길거리 응원 장면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면서 한국을 상징하는 자연스런 코드로 떠올랐다. 정부가 내세운 백 마디 구호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창조해낸 한 컷의 삽화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축제의 마당에서 ‘일등국민’이라는 백 마디의 계몽성 구호는 오히려 부질없었다. 그보다는 붉은 열정과 함성이 광기 어린 폭풍처럼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손톱만한 휴지조각까지 쓸어담는 어린이의 모습이 일등국민 ‘아시안 피플’(Asian People)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아이콘이었다.
한국 축구의 4강 진출로 ‘일본이 벌여놓은 잔치에 한국이 막바지에 끼어들어 생색내고 있다’며 비아냥대던 일부 국제 여론 역시 발붙일 틈을 없애버렸다. 아시아 축구강국 한국이 아니라 세계 축구강국 한국은 월드컵 개최국으로서도 한점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세계인들은 국제화 수준조차 형편없던 동아시아의 이름없는 도시 서울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최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개도국 개최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여론은 개최국 국민으로서 우리 민족이 갖는 자긍심의 한구석을 그늘지게 했다. 그러나 88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2개로 유럽의 쟁쟁한 올림픽 개최국을 제치고 일약 메달 종합순위 4위를 차지하면서 스포츠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한국은 개도국으로서 올림픽을 개최한 것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스포츠강국으로서 세계인들을 영접했던 것이다.
경제 규모로만 따지면 11, 12위를 차지해 왔지만 국가경쟁력으로는 늘 40∼50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총체적 국가운영 능력 면에서도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한국 축구의 4강 진출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제 규모에도 따라오지 못하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40위권에서 허덕이던 한국 축구가 일약 4강에 진출함으로써 한국 축구도 이제 국제사회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16강 진출 역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일본 축구의 역사를 감안해 볼 때 전형적 고속성장의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전문가인 이종훈 전 중앙대 총장은 “세계 제일의 잠재력을 가진 중국과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을 우리가 앞장서 통합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아시아의 허브(hub), 나아가 세계의 허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총장은 “아시아는 세계의 변방, 한국은 그중에서도 주변국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완전히 뒤엎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서방 언론의 시각도 한결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월드컵을 전후로 두 번씩이나 연달아 한국팀의 안정환 선수를 표지에 올렸다. 지난 5월에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분위기를 전하면서 태극기로 온몸을 감싼 안정환을 표지에 실었고, 이번에는 월드컵 조별 예선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한국의 안정환과 일본의 모리시마 히로아키를 나란히 표지에 올렸다. 이제 미국인과 미국 언론은 아시아와 한국의 놀라운 성장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큐슈국제대학 고바야시 게이지 교수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인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에는 남북한,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 등 분쟁의 역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외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월드컵을 통해 싹튼 아시아 국가간의 우정을 확실하게 키워 결실을 보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괄목상대’한 아시아의 저력에 놀란 세계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저력을 비로소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열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민첩하고 강인한 한국인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경제위기를 최단시일 안에 극복했던 원동력이다. 또한 이러한 열정과 창의성, 민첩성과 강인함은 유럽 지도자를 받아들여 믿기 어려웠던 꿈을 실현시킨 우리 축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
끝없이 펼쳐진 붉은 카펫 위에 거대한 수를 놓은 것처럼 강렬한 모습으로 ‘아시아의 자존심’을 목청껏 외친 한국 응원단의 장관이 펼쳐졌다. 순간 광주경기장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운 4만5000여 관중 사이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터졌다. 그러나 탄성은 경기장에 모인 관중만의 것은 아니었다. 텔레비전으로 8강전을 지켜보던 40억 세계인들 역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날 붉은 악마, 아니 모든 한국인은 세계인들을 상대로 ‘아시아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식민(植民)의 역사와 저개발의 질곡, 80년대 도약의 활력을 모두 잃은 채 비합리와 부패로 인해 경제위기를 자초한 ‘미완의 대륙’으로만 인식돼 온 아시아. 아시아는 비로소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세계인들을 향해 ‘우리가 비로소 세계의 중심으로 간다’는 메시지를 웅변으로 외쳤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聖地)인 광주에서 한국인들은 바로 우리가 4강 신화를 통해 아시아의 자존심을 짊어지고 세계무대로 뚜벅뚜벅 걸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다이내믹 코리아’ 아시아 전체의 새로운 화두로
붉은 악마 신인철 회장은 “일본은 늘 ‘아시아를 벗어나자’(脫亞入區欠)고 외쳤지만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8강, 아니 4강 진출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우리는 ‘아시아의 중심에서 아시아를 이끌고 세계로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를 화두로 꺼내든 것은 비단 광주월드컵경기장의 붉은 악마들뿐만이 아니다.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출전한 중국 응원단 ‘치우미’를 리드한 응원단장은 한국의 20대 여성이었다. 또 8강 문턱에서 좌절한 일본인들은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않고 아시아의 이웃인 한국의 결승행을 응원하고 있다.
16강 문턱을 넘기도 전에 주저앉은 중국 역시 아시아인으로서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전패로 탈락하자 ‘군자의 복수는 10년 걸려도 늦지 않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이를 악물었던 중국 언론들은 유독 한국의 선전에 대해서만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이 탈락한 뒤 언론들은 중국팀의 투지 부족을 한 목소리로 질타하면서 ‘한국의 전투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류(韓流) 열풍으로 그러잖아도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중국 주요 도시에서 이제 축구라는 히트상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만 달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동안 ‘아시아’라는 브랜드는 세계무대에서 역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미국과 유럽이 결승점을 가리키며 치닫고 있다면 아시아는 이제 막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갔거나, 그도 아니면 저 앞에 가던 선수마저 허들에 걸려 넘어져 비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고, 일본은 ‘발톱 빠진 종이호랑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중국은 ‘막 잠을 깨기 시작한 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2 월드컵, 그리고 한국의 4강 신화를 통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구촌의 새로운 ‘허브’(hub)로 떠올랐다. 아시아가 하나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틔웠다면 물론 그 가운데에는 한국이라는 향기로운 꽃술이 있었다.
한국 정부가 얼마 전부터 내세웠던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구호는 열광적인 길거리 응원 장면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면서 한국을 상징하는 자연스런 코드로 떠올랐다. 정부가 내세운 백 마디 구호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창조해낸 한 컷의 삽화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축제의 마당에서 ‘일등국민’이라는 백 마디의 계몽성 구호는 오히려 부질없었다. 그보다는 붉은 열정과 함성이 광기 어린 폭풍처럼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손톱만한 휴지조각까지 쓸어담는 어린이의 모습이 일등국민 ‘아시안 피플’(Asian People)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아이콘이었다.
한국 축구의 4강 진출로 ‘일본이 벌여놓은 잔치에 한국이 막바지에 끼어들어 생색내고 있다’며 비아냥대던 일부 국제 여론 역시 발붙일 틈을 없애버렸다. 아시아 축구강국 한국이 아니라 세계 축구강국 한국은 월드컵 개최국으로서도 한점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세계인들은 국제화 수준조차 형편없던 동아시아의 이름없는 도시 서울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최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개도국 개최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여론은 개최국 국민으로서 우리 민족이 갖는 자긍심의 한구석을 그늘지게 했다. 그러나 88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2개로 유럽의 쟁쟁한 올림픽 개최국을 제치고 일약 메달 종합순위 4위를 차지하면서 스포츠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한국은 개도국으로서 올림픽을 개최한 것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스포츠강국으로서 세계인들을 영접했던 것이다.
경제 규모로만 따지면 11, 12위를 차지해 왔지만 국가경쟁력으로는 늘 40∼50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총체적 국가운영 능력 면에서도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한국 축구의 4강 진출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제 규모에도 따라오지 못하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40위권에서 허덕이던 한국 축구가 일약 4강에 진출함으로써 한국 축구도 이제 국제사회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16강 진출 역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일본 축구의 역사를 감안해 볼 때 전형적 고속성장의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전문가인 이종훈 전 중앙대 총장은 “세계 제일의 잠재력을 가진 중국과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을 우리가 앞장서 통합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아시아의 허브(hub), 나아가 세계의 허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총장은 “아시아는 세계의 변방, 한국은 그중에서도 주변국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완전히 뒤엎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서방 언론의 시각도 한결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월드컵을 전후로 두 번씩이나 연달아 한국팀의 안정환 선수를 표지에 올렸다. 지난 5월에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분위기를 전하면서 태극기로 온몸을 감싼 안정환을 표지에 실었고, 이번에는 월드컵 조별 예선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한국의 안정환과 일본의 모리시마 히로아키를 나란히 표지에 올렸다. 이제 미국인과 미국 언론은 아시아와 한국의 놀라운 성장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큐슈국제대학 고바야시 게이지 교수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인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에는 남북한,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 등 분쟁의 역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는 외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월드컵을 통해 싹튼 아시아 국가간의 우정을 확실하게 키워 결실을 보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괄목상대’한 아시아의 저력에 놀란 세계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저력을 비로소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열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민첩하고 강인한 한국인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경제위기를 최단시일 안에 극복했던 원동력이다. 또한 이러한 열정과 창의성, 민첩성과 강인함은 유럽 지도자를 받아들여 믿기 어려웠던 꿈을 실현시킨 우리 축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