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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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지금 ‘노동자 자치시’

민주노동당, 지방선거에 대거 출마‘싹쓸이 태세’… 송철호 시장후보 등 쾌속 질주

  • < 정재락/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raks23@hanmail.net

    입력2004-10-08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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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은 지금 ‘노동자 자치시’
    ” 안녕하십니까? 또 왔습니다.” 5월24일 오후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노조 사무실.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송철호씨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노조 간부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간부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송후보를 맞았다.

    한나라당 “텃밭 내줄라” 노심초사

    회사측과 임금협상이 진행중인 노조는 송후보가 노조 사무실에 도착하기 직전 협상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상임집행위원회를 열고 있었는데, 송후보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하자 회의를 멈추고 흔쾌히 맞은 것.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이헌구 위원장이 송후보와 악수를 나누고, 다른 노조 간부들은 송후보 뒤에 ‘엑스트라’로 서서 모양새를 갖췄다. 10여분 뒤 송후보가 떠날 때는 “필승을 기원합니다”는 노조 간부들의 구호가 이어졌다.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현대자동차 노조(조합원 3만7000여명)에서 송후보는 ‘특정 정당의 시장후보’가 아닌 ‘동지’였다.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노조(2만1000여명) 등 울산 지역 노동계는 송후보에 대해 한결같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5월25일 노동계와 사회단체, 민주노동당 등의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서 송후보가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김창현 울산시지부장을 누르고 당선된 후 한 달여 만에 보인 변화다.

    울산은 지금 ‘노동자 자치시’
    울산에서 민노당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그룹의 도시 울산에서 현대노조, 현대에 우호적인 유권자들의 지원을 업고 민노당이 현대자동차처럼 쾌속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노당은 광역단체장뿐 아니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자리까지 모두 ‘접수’할 태세다. 6·13 지방선거 후 울산광역시는 그야말로 ‘노동자의 나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자칫 울산 ‘텃밭’을 내주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오자 한나라당은 대책 마련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송후보는 당내 경선을 통해 한나라당 시장후보로 나선 박맹우 후보보다 2.5%(5월11∼13일 경상일보)에서 16.3%(5월20∼22일 조선일보)포인트까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당은 시장, 구청장(5개 선거구),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4대 선거에 울산에서만 35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다. 이중 절반 정도인 17명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간부 출신이다. “울산을 싹쓸이하겠다”는 게 민노당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있는 북구와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는 ‘민노당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송철호 후보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인 이응순씨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조합원과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 당원 등 6만명을 상대로 예비선거를 실시해 조합원과 당원들의 선거 관심도를 높였다. 낙선한 후보들은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고 민노당 바람의 원인을 설명했다. 김창현 후보는 불과 374표 차이로 시장후보 경선에서 낙선했지만 곧바로 송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또 조승수 북구청장과 조규대 시의원도 각각 구청장 경선에서 패했지만 결과에 승복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이위원장이 민노당 밀어주기에 나선 것도 민노당에겐 큰 플러스 요인이다. 노조는 △조합비 적립금 가운데 1억8000만원을 조합원 후보에게 무이자 대여해 주고 △전·현직 노조위원장을 시장과 구청장 선거대책본부에 전진 배치하며 △노조신문과 소식지 등에 후보와 정책 방향을 소개하기로 했다. 또 현재 진행중인 회사측과의 임금협상과 연계해 출정식과 결의대회, 전체집회를 잇따라 열어 민노당 후보들에게 인사말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울산은 지금 ‘노동자 자치시’
    한나라당은 박맹우 후보의 지지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박후보측은 5월22일 권기술 울산시지부장을 위원장으로 한 선거대책본부(이하 선대본)를 발족한 뒤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선대본 유태일 사무국장은 “송후보는 지금까지 국회의원과 시장선거 등에 네 번이나 출마해 인지도가 높은 반면 박후보는 처음 출마했다”면서 민노당 바람을 평가절하했다. 유국장은 “박후보는 행정고시를 거쳐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차기 집권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 후보가 광역시장에 당선돼야 지역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울산시장 후보를 내지 않기로 방향을 잡자 “민주당이 반(反)재벌-친(親)노동자 성향이 매우 강한 민노당과 결국 선거공조를 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의 색깔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울산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풍’(盧風)의 발원지였다. 울산은 노후보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사분규 때 자주 방문해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난달 부산일보 여론조사에서 울산의 경우 노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52.3%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35.9%)를 크게 앞질렀다. 민주당 이규정 시지부장도 “노풍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가 울산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선거에 강한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한나라당과 민노당 사이에선 ‘민주당-민주노동당 선거공조’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박맹우 후보는 민주당이 충청권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자민련과 선거공조를 이루는 것처럼 울산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민노당과 공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송후보는 “민주당과의 공조 운운하는 것은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송후보측은 최근 각 단위노조에 보낸 ‘긴급지침’에서 “한나라당이 송후보가 전라도 출신이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울산시지부 이일성 사무처장은 “민주당이 울산시장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은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정강정책이 다른 부분이 많은데 선거공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장은 이어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지부장의 상처가 너무 깊어 시장 적임자를 물색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원들은 이지부장의 시장 출마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의 사상 첫 광역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당선 이후를 전망하는 다양한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민주노총의 지원으로 당선된 시장이 과연 정부에서 예산을 제대로 받아올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있는 반면, “수십년 동안 고착화된 공직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울산을 잃는 것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안마당’을 내어주는 일. 민노당과 송후보에 대한 ‘대반격’을 준비중이다. ‘울산 노동자 자치구’는 과연 실현될 것인가. 울산이 6·13 지방선거의 핵심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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