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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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멈춘 곳… 그곳이 나만의 별장

  • < 허시명·여행작가 > storyf@yahoo.co.kr

    입력2004-10-11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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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멈춘 곳… 그곳이 나만의 별장
    열살 안팎의 시절, 외제 공산품이 실린 카탈로그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전화번호부의 몇 배에 해당하는 그 두꺼운 책에서도 책장이 뚫릴 정도로 보게 하던 사진이 있었다. 바로 싱크대와 침대, 냉장고가 달린 차의 사진이었다. 차는 지금 막 진초록의 초원 위에 도착한 듯, 햇살 아래서 아이들이 하얀 간이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초원 위에 완벽하고 신기한 집이 완성되는 찰나였다. 이런 차가 세상에 있을까? 사진은 꿈을 찍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때 내 나이만한 아이를 둔 지금, 꿈을 찍은 사진은 현실이 되었다.

    마침내 바퀴 달린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마련된 본격적인 자동차 캠프장,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서였다. 그곳에서 지난 5월26일까지 9일 동안, 세계 캠핑캐러배닝대회가 열렸다. 22개국에서 600여명의 외국인과 900여명의 내국인이 참가했다. 자동차 캠핑의 불모지에서 벌어진 행사라 우리에겐 무척 낯설었지만, 새로운 자동차문화와 여행문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편리와 자유 만끽에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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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회를 계기로 망상해수욕장은 상설 자동차 야영장을 갖게 되었다. 10만평의 땅에 자동차 175대를 세울 수 있다. 단순하게 차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다. 자동차마다 이용할 수 있는 전기와 수도, 오·폐수 처리시설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자동차 야영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곳이 몇 군데 있지만, 본격적인 자동차 야영장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막말로 자동차 옆에 텐트를 칠 수 있으면 자동차 야영장이라 불렀다. 그래서 한여름 성수기에는 주차장인지 야영장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물론 우리에겐 자동차 캠핑장 만큼이나 제대로 된 캠핑카가 없었다. RV(recreational vehicle·레크리에이션 차량)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캠핑카 수준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캠핑카라면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시설이 있는 주방, 화장실과 세면장, 식탁과 의자, 그리고 침실이 갖춰진 이동식 집의 수준이라야 한다. 1991년 기아자동차에서 베스타캠핑카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까다로운 형식승인 제도와 특별소비세, 비싼 차값 때문에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간 외국에서 들여온 캠핑카가 몇 대 있다고 하는데, 실제 운용되는 게 3대라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캠핑카 보급은 미미했다.



    차가 멈춘 곳… 그곳이 나만의 별장
    그런데 이번에 망상에서 세계 대회를 열면서, 한국캠핑캐러비안연맹에서 캠핑카 90대를 들여왔다. 움직이는 동력 캠핑카는 10대인데, 가격은 8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 한다. 다른 차에 연결해 이동하는 무동력 캠핑카가 80대인데, 가격은 2500만원대다. 이 차들이 일부 망상 자동차 야영장에 상주하겠지만, 다른 캠프카들은 전국을 누비고 다니게 될 것이다. 한국캠핑캐러비안연맹에서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이 캠핑카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제 캠핑카를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아직 우리의 캠핑카 문화는 보잘것없지만, 이웃 일본만 해도 캠핑카가 4만대 가량 되고, 캠핑장도 3000곳이 넘는다. 캠핑장은 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일본은 완제품보다 개조한 캠핑카가 더 많은데, 업무용인지 캠핑용인지 모호한 차들만 10만대가 넘는다고 한다.

    차가 멈춘 곳… 그곳이 나만의 별장
    캠핑카 문화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유럽이다. 국경선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차량을 이용해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상 세계대회에 참석한 영국의 토니씨(57)는 30년째 캠핑카를 몰고 있다. 그는 한 해 평균 60일 정도 8만km를 여행한다. 토니는 소형 차량을 몰면서 호텔이나 콘도에서 자면 훨씬 편할 텐데 왜 굳이 캠핑카를 몰고 여행하냐고 묻자, 단 한마디로 답했다.“Freedom(자유)!” 호텔이나 콘도는 남들이 꾸며놓은 공간이고, 캠핑카는 내가 꾸며 사용하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럽 도처에 자동차 야영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도 망상 자동차 야영장을 시발로 앞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자동차 야영장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문화관광부에서 도별로 한 군데씩 자금 지원을 할 계획이고, 이미 강원도 양양, 경기도 화성,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자동차 야영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차장인지 텐트장이지 모를 어수선한 자동차 야영장이 아니라, 개발하기 곤란한 땅에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린 환경친화적인 자동차 캠핑장이 생긴다면 우리의 여행문화도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망상 자동차 야영장을 기획하고 조성한 동해시 강성필 과장은 “우리는 자동차 야영장을 조성하기 위해 소나무 한 그루, 백사장 한 뼘 해치지 않았습니다. 원래 그곳엔 위락시설이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고층의 숙박시설과 콘도가 들어왔다면 해안 풍경은 모두 훼손되었을 겁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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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면 우리의 여행문화는 단조롭기 짝이 없다. 생을 즐기기 위한 여행보다는 가족들에게 봉사하는 피서여행, 그리고 잠깐의 휴식을 위해 집을 떠나는 여행 정도다. 일회적인 여행문화인 셈인데, 캠핑카를 이용하면 나만의 공간인 작은 집을 움직여서 떠나는 생활화된 여행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진정한 여행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집 장만할 돈을 쪼개 움직이는 작은 집을 소유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더욱이 여행은 자유를 구가하는 것인데, 캠핑카가 그런 자유을 보장해 준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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