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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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한 이유 外

  • < 자료 : 지적 쾌락의 세계 와우밸리(www.wowvalley.com) >

    입력2004-10-11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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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한 이유  外
    1815년 6월 나폴레옹의 ‘백일천하’에 종지부를 찍고 23년 만에 유럽에 평화를 가져온 워털루 전투. 재기를 노렸던 나폴레옹은 영국군에 패하고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된다. 그 운명의 날 나폴레옹은 전투 개시를 2시간이나 늦추었다. 군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2시간 덕분에 영국군은 전선을 정비하고, 프로이센의 구원병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물쭈물한 까닭은 무엇일까.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보면 그는 항상 한쪽 손을 상의 속에 넣고 있다. 이것은 위장병 때문에 고생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의 만성 위궤양은 변비가 되었고, 변비는 치질로 악화되었다. 나폴레옹의 치질은 말에 올라타기도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고 통증 때문에 대량의 아편을 사용했다. 결국 워털루 전투 당일 나폴레옹은 군대를 지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주장은 의학사를 연구하는 프랑스의 루돌프 마르크스란 사람이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패인을 분석한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적 불량 퇴학생이었던 ‘히틀러’

    나치의 지도자이며 독일의 독재자였던 히틀러. 전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그의 학교 성적은? 히틀러는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의욕적인 어린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히틀러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형편없는 수학실력 때문에 낙제했다. 나중에는 그가 월등히 성적이 좋았다고 자만했던 지리, 역사 과목도 겨우 낙제를 면했을 정도. 결국 성적 불량으로 전학하게 됐지만 그 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말았다. 퇴학 후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미술학교에 두 차례(1907, 1908)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 낙제생이라고 역사적 인물이 되지 말란 법은 없으나 만약 히틀러가 그때 낙제하지 않고 학교에 계속 다녔으면 세계 역사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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