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002 월드컵 축구대회.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듯한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공중화장실을 고친다, 노점상을 없앤다, 파업도 중지, 정쟁도 중지하자는 이 마당에 “월드컵이 뭐기에”라고 말하는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축구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와 월드컵 대회가 갖는 정치·사회적 의미까지도 읽어내려 하니 오히려 남다르게 관심이 많다.
계간지 여름호가 일제히 축구 관련 특집을 냈다. ‘당대비평’은 ‘월드컵에의 열광: 동원의 공학과 자발적 참여 사이에서’, ‘문학과사회’는 ‘열광의 배후: 스포츠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이다. 당대비평의 특집은 국민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거둔 월드컵의 성공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영석은 ‘노동계급, 축구, 국민 정체성’이라는 글에서 19세기 영국 사회와 축구의 관계를 설명했고, 황병주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역사적인 박스컵대회 개막과 월드컵을 절묘하게 겹쳐 보여준다. 이동연은 ‘붉은 악마와 서포터즈 문화’에서 자발적 참여의 가능성과 그 한계까지도 지적했다. 또 당대비평은 런던대학 사회학 강사인 레스 백의 ‘유니언잭 아래의 흑인’을 통해 스포츠에서의 인종주의 문제를 다뤘다.
‘문학과사회’ 특집은 ‘현대 스포츠의 특성과 수용자의 자발성’(정준영), ‘스포츠는 대중매체에 업힌 채 살아 있다’(원용진), ‘한국 스포츠는 진화하는가’(김찬호)로 꾸몄다. 정준영의 글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관객 스포츠)로 바뀌게 된 현대 스포츠의 진화과정을 설명했고, 원용진은 스포츠 시스템에서 엔진 역할을 하는 대중매체에 주목했다. 김찬호는 스포츠가 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를 함축적으로 반영한다는 전제 아래, 히딩크 사단의 실험이 우리의 삶과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문학과사회’ 특집이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 사회학’을 소개하는 수준이라면, ‘당대비평’은 ‘동원’과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라는 키워드로 월드컵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회학자들이 던진 질문이 게임의 결과만큼 흥미로울 수는 없겠지만, 한 달이라는 긴 월드컵 축제기간 동안 한 번쯤 차분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계간지 여름호가 일제히 축구 관련 특집을 냈다. ‘당대비평’은 ‘월드컵에의 열광: 동원의 공학과 자발적 참여 사이에서’, ‘문학과사회’는 ‘열광의 배후: 스포츠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이다. 당대비평의 특집은 국민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거둔 월드컵의 성공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영석은 ‘노동계급, 축구, 국민 정체성’이라는 글에서 19세기 영국 사회와 축구의 관계를 설명했고, 황병주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역사적인 박스컵대회 개막과 월드컵을 절묘하게 겹쳐 보여준다. 이동연은 ‘붉은 악마와 서포터즈 문화’에서 자발적 참여의 가능성과 그 한계까지도 지적했다. 또 당대비평은 런던대학 사회학 강사인 레스 백의 ‘유니언잭 아래의 흑인’을 통해 스포츠에서의 인종주의 문제를 다뤘다.
‘문학과사회’ 특집은 ‘현대 스포츠의 특성과 수용자의 자발성’(정준영), ‘스포츠는 대중매체에 업힌 채 살아 있다’(원용진), ‘한국 스포츠는 진화하는가’(김찬호)로 꾸몄다. 정준영의 글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하는 스포츠’에서 ‘보는 스포츠’(관객 스포츠)로 바뀌게 된 현대 스포츠의 진화과정을 설명했고, 원용진은 스포츠 시스템에서 엔진 역할을 하는 대중매체에 주목했다. 김찬호는 스포츠가 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를 함축적으로 반영한다는 전제 아래, 히딩크 사단의 실험이 우리의 삶과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문학과사회’ 특집이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 사회학’을 소개하는 수준이라면, ‘당대비평’은 ‘동원’과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라는 키워드로 월드컵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회학자들이 던진 질문이 게임의 결과만큼 흥미로울 수는 없겠지만, 한 달이라는 긴 월드컵 축제기간 동안 한 번쯤 차분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