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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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러 “우린 친구, 핵무기 필요 없어”

공격용 전략핵탄두 3분의 2 감축 합의 … 대립과 불신 청산 ‘전략적 동반자’로

  •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입력2004-10-08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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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24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정상회담을 마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안드레예프홀로 나오자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내외신기자들은 일순 긴장했다. 예정보다 회담이 길어지면서 혹시라도 역사적인 전략핵무기 감축 합의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미 합의문까지 공개된 상황이었지만 두 정상이 마지막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두 정상은 전략핵무기감축협상과 양국의 새로운 전략적 관계에 대한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5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부시 대통령은 “친구 사이에는 서로를 겨냥한 무기가 필요 없다”고 말을 시작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전략무기감축협상에 가장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양국은 93년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Ⅱ)까지 서명했으나 지금까지 겨우 1단계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Ⅰ)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 양국은 2012년 12월31일까지 공격용 전략핵탄두를 1700∼2200기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7295기와 6094기의 핵탄두를 갖고 있지만 이번 협정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는 핵 감축 합의를 넘어서 냉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돼 온 대립과 불신을 청산하고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었다는 데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정상회담과 달리, 오늘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도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불신과 의심에서 벗어나 우호협력의 새 시대에 들어섰다”고 화답했다.

    지난해 1월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표방한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지금까지 양국 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해 왔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2개월 만에 50여명의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스파이로 몰아 추방하자 러시아도 미국 외교관 맞추방으로 맞섰다. 이어 미국이 일방적으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마침내 신(新)냉전이 시작됐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9·11 테러 참사 후 러시아가 미국의 대(對)테러 작전에 적극 협조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경제지원 등 실리를 챙기려는 푸틴 대통령의 실용적인 대외정책이 큰 몫을 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올라섰다.

    물론 이견과 갈등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미국이 ‘불량국가’로 규정한 북한 이란 이라크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러시아는 부시 대통령의 방문 직전 백남순 북한 외무상을 초청해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과시했고,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에 원자력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이 양국이 새로운 협력관계로 나가는 대세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이번까지 다섯 번째 만남을 통해 개인적인 신뢰를 더욱 두텁게 쌓은 것도 앞으로 양국 관계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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