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6개월을 넘어섰다. 무시무시한 공습 전술 때문에 탈레반과 알 카에다 전사들은 패퇴하고 아프간 전쟁도 이제 막바지다. 그러나 매듭짓지 못한 문제가 있다. 미군 공습으로 피해 본 아프간 주민들에 대한 보상 문제다.
1990년대부터 미국이 벌인 여러 전쟁 가운데 아프간 전쟁만큼 민간인 오폭 희생자를 많이 낸 전쟁도 없다. 미군 오폭으로 약 4000명이 죽음을 당했고, 약 50만명이 공습을 피해 피난 갔던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미국은 피해보상은커녕 오폭의 진상을 조사하거나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때문에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은 오폭 피해자 가족들의 잇따른 항의방문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아프간 현지 취재 당시 카불 시내의 전쟁부상자 병원에는 미군 오폭으로 다친 민간인 환자들이 수두룩했다. 아프간 오폭은 90년대 이래 미국이 개입한 여러 전쟁들을 돌이켜보아도 전례 없는 일이다. 걸프전(91년), 보스니아전(95년) 그리고 코소보전(99년)의 경우에도 물론 오폭은 있었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민간기구인 ‘인권감시’(HRW)는 코소보 전쟁에서 약 90건의 오폭 사고가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은 훨씬 많은 희생자를 냈다. 미국 뉴햄프셔대 마크 헤롤드 교수(경제학)는 10ㆍ7 미군 공습 두 달 만인 지난해 12월10일까지 약 3800명의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산했다. 그 뒤로도 미군 공습은 계속됐고, 오폭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민간인 희생자 약 4천명 추정
그러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4월 아프간 오폭 희생자 400여명의 가족들은 카불 미 대사관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항의문서를 전달했다. 아프간 각지에서 어렵게 모여든 이들은 대사관 입구에서 저마다 피눈물 나는 사연들을 토해냈다. 이들의 보상 문제를 돕고 있는 미국 인권단체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현지 실무자 마를라 루지카는 “미국은 오폭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도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미 대사관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답변은 “워싱턴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카불 미 대사관은 지난 1월 미 국방부와 국무부측에 아프간 오폭 처리 문제를 문의했지만, 아직껏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오폭 희생자에 대한 배상은 아니지만, 미국의 반응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은 지난 1월 아프간 남부에서 미 특수부대원의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건 1주일 뒤 미 중앙정보국(CIA) 현지 공작팀이 사망자 1인당 현금 1000달러씩을 지불한 바 있다. 1000달러는 한화로 130만원. 사람의 목숨값 치고는 지나치게 헐값이다. 미국은 9ㆍ11 테러사건의 희생자 1인당 평균 180만 달러를 유가족들에게 지급했다. 아프간 오폭 희생자보다 1800배나 많다.
다른 선례도 있다. 코소보 전쟁 때 유고 벨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3명과 이탈리아 미군 헬리콥터 추락사건(98년)의 이탈리아인 희생자 20명에게는 1인당 150만 달러가 지급됐다. 아프간 밖에서 일어난 오폭사건의 배상 규모를 알 턱 없는 아프간 사람들이지만, 미국이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카불의 전쟁부상자 병원에서 만났던 한 오폭 희생자는 “미국이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논쟁의 주제는 미군 오폭이 단순사고냐, 전쟁범죄냐 여부다. 미군 오폭사건이 날 때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속마음이 여간 쓰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늘 당당한 모습이다. 오폭이 문제 될 때마다 그가 한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오폭은 아닐 것이다. 만일 오폭으로 밝혀질 경우 사과하겠다. 보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 공습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탈레반군과 알 카에다 전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집속탄(cluster bomb)과 데이지 커터 폭탄 등이 그 수단이었다. 이 폭탄들은 축구장보다 넓은 면적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불살라버리는 가공할 무기들이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이 전투원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런 피해를 전투행위에서 불가피하게 따르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변명했다. 95년 오클라호마 미 연방청사 건물을 폭파한 티모시 멕베이가 청사 내 탁아소에 있던 20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죽은 데 대해 검사가 질책하자, “그것은 부수적 피해”라 주장한 것과 닮은 논리다.
전폭기 조종사 출신의 미 항공우주센터 부소장 필립 메일링거는 미 격월간지 ‘외교정책’에 기고한 ‘정확성의 문제’란 글에서 기술 진보에 따라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코소보 전쟁의 경우 1만4000회 출격에 2만8000회 폭격이 있었지만, ‘부수적 피해’(오폭)는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코소보 전쟁에서는 미 첩보기 U-2가 촬영한 정밀 사진과, 적진 깊숙이 침투한 코소보해방군(KLA)이 제공한 정보가 유용했다.
그러나 이번 아프간 전쟁은 달랐다. 산악지대 동굴에 은신한 적을 U-2기가 찾아내기는 어렵다. 개전 초기 한 달 동안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해 초조해진 미군은 B-52기로 마구잡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이는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1차적 원인이다. 게다가 아프간 군벌간의 뿌리 깊은 반목까지 한몫했다. 이들은 상대편을 죽이려 미군과 CIA에 잘못된 정보를 흘림으로써 F-16 전폭기의 오폭 희생자를 더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부터 미국이 벌인 여러 전쟁 가운데 아프간 전쟁만큼 민간인 오폭 희생자를 많이 낸 전쟁도 없다. 미군 오폭으로 약 4000명이 죽음을 당했고, 약 50만명이 공습을 피해 피난 갔던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미국은 피해보상은커녕 오폭의 진상을 조사하거나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때문에 카불 주재 미 대사관은 오폭 피해자 가족들의 잇따른 항의방문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아프간 현지 취재 당시 카불 시내의 전쟁부상자 병원에는 미군 오폭으로 다친 민간인 환자들이 수두룩했다. 아프간 오폭은 90년대 이래 미국이 개입한 여러 전쟁들을 돌이켜보아도 전례 없는 일이다. 걸프전(91년), 보스니아전(95년) 그리고 코소보전(99년)의 경우에도 물론 오폭은 있었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민간기구인 ‘인권감시’(HRW)는 코소보 전쟁에서 약 90건의 오폭 사고가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은 훨씬 많은 희생자를 냈다. 미국 뉴햄프셔대 마크 헤롤드 교수(경제학)는 10ㆍ7 미군 공습 두 달 만인 지난해 12월10일까지 약 3800명의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산했다. 그 뒤로도 미군 공습은 계속됐고, 오폭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민간인 희생자 약 4천명 추정
그러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4월 아프간 오폭 희생자 400여명의 가족들은 카불 미 대사관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항의문서를 전달했다. 아프간 각지에서 어렵게 모여든 이들은 대사관 입구에서 저마다 피눈물 나는 사연들을 토해냈다. 이들의 보상 문제를 돕고 있는 미국 인권단체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현지 실무자 마를라 루지카는 “미국은 오폭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도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미 대사관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답변은 “워싱턴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카불 미 대사관은 지난 1월 미 국방부와 국무부측에 아프간 오폭 처리 문제를 문의했지만, 아직껏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오폭 희생자에 대한 배상은 아니지만, 미국의 반응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은 지난 1월 아프간 남부에서 미 특수부대원의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건 1주일 뒤 미 중앙정보국(CIA) 현지 공작팀이 사망자 1인당 현금 1000달러씩을 지불한 바 있다. 1000달러는 한화로 130만원. 사람의 목숨값 치고는 지나치게 헐값이다. 미국은 9ㆍ11 테러사건의 희생자 1인당 평균 180만 달러를 유가족들에게 지급했다. 아프간 오폭 희생자보다 1800배나 많다.
다른 선례도 있다. 코소보 전쟁 때 유고 벨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3명과 이탈리아 미군 헬리콥터 추락사건(98년)의 이탈리아인 희생자 20명에게는 1인당 150만 달러가 지급됐다. 아프간 밖에서 일어난 오폭사건의 배상 규모를 알 턱 없는 아프간 사람들이지만, 미국이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카불의 전쟁부상자 병원에서 만났던 한 오폭 희생자는 “미국이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논쟁의 주제는 미군 오폭이 단순사고냐, 전쟁범죄냐 여부다. 미군 오폭사건이 날 때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속마음이 여간 쓰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늘 당당한 모습이다. 오폭이 문제 될 때마다 그가 한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오폭은 아닐 것이다. 만일 오폭으로 밝혀질 경우 사과하겠다. 보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 공습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탈레반군과 알 카에다 전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집속탄(cluster bomb)과 데이지 커터 폭탄 등이 그 수단이었다. 이 폭탄들은 축구장보다 넓은 면적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불살라버리는 가공할 무기들이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이 전투원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런 피해를 전투행위에서 불가피하게 따르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변명했다. 95년 오클라호마 미 연방청사 건물을 폭파한 티모시 멕베이가 청사 내 탁아소에 있던 20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죽은 데 대해 검사가 질책하자, “그것은 부수적 피해”라 주장한 것과 닮은 논리다.
전폭기 조종사 출신의 미 항공우주센터 부소장 필립 메일링거는 미 격월간지 ‘외교정책’에 기고한 ‘정확성의 문제’란 글에서 기술 진보에 따라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코소보 전쟁의 경우 1만4000회 출격에 2만8000회 폭격이 있었지만, ‘부수적 피해’(오폭)는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다. 코소보 전쟁에서는 미 첩보기 U-2가 촬영한 정밀 사진과, 적진 깊숙이 침투한 코소보해방군(KLA)이 제공한 정보가 유용했다.
그러나 이번 아프간 전쟁은 달랐다. 산악지대 동굴에 은신한 적을 U-2기가 찾아내기는 어렵다. 개전 초기 한 달 동안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해 초조해진 미군은 B-52기로 마구잡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이는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1차적 원인이다. 게다가 아프간 군벌간의 뿌리 깊은 반목까지 한몫했다. 이들은 상대편을 죽이려 미군과 CIA에 잘못된 정보를 흘림으로써 F-16 전폭기의 오폭 희생자를 더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