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올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법에 의한 ‘정당한 경우’에 국한해 정치자금을 내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SK 손길승 회장이었다. 손회장은 2월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정당한 정치자금 요구만 응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전경련은 8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당하고 투명한 정치자금만 제공하고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업인 자율 실천사항’을 의결했다. 16일에는 “전경련이 정치자금을 공동 모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22일 전경련 정기총회는 이 같은 내용들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공식 채택했다.
지난 4년 내내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 재벌개혁의 요체가 만약 이 같은 ‘불법 정치자금의 근절’이었다면 정권과 재벌의 길고 지루한 승부는 정권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전경련의 치밀하고도 완강해 보이는 이번 ‘거사’가 나온 시점은 정부가 ‘총천연색 게이트 시리즈’의 연타를 맞고 거의 그로기 상태로 코너에 몰린 때다. 굳이 ‘레임덕’이라는 단어의 사용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력은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인 듯 보이기도 한다. 김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건국위원회 전국 시·군·구 추진위원장단과의 오찬에서 “앞으로 1년 남은 임기 동안 특별히 큰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벌인 ‘특별한 큰일’ 가운데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고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더 벌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김대중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인 재벌개혁도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없었던 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미 재벌개혁은 종을 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4년 동안에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큰일을 하지 않겠다는 남은 1년 동안 ‘기적’이 벌어질 리 만무하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경기 초반부터 밀리고 밀리다 수건을 던지기 직전에야 정부가 재벌들로부터 겨우 획득한 페널티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라니. 정치자금 문제로 생애의 절반 이상을 골머리 썩었을 듯한, 급기야 그로 인해 임기 마지막까지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김대통령이 “전경련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한 것은 참 초라해 보인다.
전직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김대통령의 뚝심은 재벌들의 ‘조직적 게릴라 전술’에 결국 패했다. ‘홍수환의 4전5기’는 재벌들의 전매특허다. 재벌들은 역전의 노장답게 힘만 믿고 덤벼드는 ‘초보 대통령’들을 링 위에서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는 법에 능통해 있다. 체면이 있는 탓에 가끔 잽을 날려보았다가 서슬 퍼런 집권 세력의 이빨이 드러나면 꼬리를 내리기도 하면서 카운터파트가 종국에는 지쳐 쓰러지길 기다린다. 모든 정권은 항상 초반에는 힘센 스트레이트를 날리기도 하고 어퍼컷도 쳐 올리지만, ‘권력 중독’으로 스파링을 제대로 못한 까닭에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재벌들의 ‘불법 정치자금 안 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안팎 도처에서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점이다. 명분도 훌륭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하는 등 정치인들에게 시달리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내 주머니에서 ‘피 같은 뭉칫돈’이 나가지 않아 좋다.
한술 더 떠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정치자금 비리의 근원적 차단을 위해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비리는 국민에게 고해성사를 해 대대적인 사면조치를 받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이참에 등골 쑤시는 ‘과거사’에서 해방될 면죄부를 받자는 얘기인가.
이 나라 기업이 정치자금의 족쇄에서 풀려나 정말 그들 주장대로 경쟁력 향상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왠지 또 다른 코미디의 서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이미 줄 설 데 다 섰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든지. 차기 정권에서는 정치자금 스캔들 때문에 열받을 일은 없으려나?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SK 손길승 회장이었다. 손회장은 2월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정당한 정치자금 요구만 응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전경련은 8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당하고 투명한 정치자금만 제공하고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업인 자율 실천사항’을 의결했다. 16일에는 “전경련이 정치자금을 공동 모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22일 전경련 정기총회는 이 같은 내용들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공식 채택했다.
지난 4년 내내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 재벌개혁의 요체가 만약 이 같은 ‘불법 정치자금의 근절’이었다면 정권과 재벌의 길고 지루한 승부는 정권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전경련의 치밀하고도 완강해 보이는 이번 ‘거사’가 나온 시점은 정부가 ‘총천연색 게이트 시리즈’의 연타를 맞고 거의 그로기 상태로 코너에 몰린 때다. 굳이 ‘레임덕’이라는 단어의 사용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력은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인 듯 보이기도 한다. 김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건국위원회 전국 시·군·구 추진위원장단과의 오찬에서 “앞으로 1년 남은 임기 동안 특별히 큰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4년 동안 벌인 ‘특별한 큰일’ 가운데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고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더 벌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김대중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인 재벌개혁도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없었던 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미 재벌개혁은 종을 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4년 동안에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큰일을 하지 않겠다는 남은 1년 동안 ‘기적’이 벌어질 리 만무하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경기 초반부터 밀리고 밀리다 수건을 던지기 직전에야 정부가 재벌들로부터 겨우 획득한 페널티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라니. 정치자금 문제로 생애의 절반 이상을 골머리 썩었을 듯한, 급기야 그로 인해 임기 마지막까지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김대통령이 “전경련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한 것은 참 초라해 보인다.
전직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김대통령의 뚝심은 재벌들의 ‘조직적 게릴라 전술’에 결국 패했다. ‘홍수환의 4전5기’는 재벌들의 전매특허다. 재벌들은 역전의 노장답게 힘만 믿고 덤벼드는 ‘초보 대통령’들을 링 위에서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는 법에 능통해 있다. 체면이 있는 탓에 가끔 잽을 날려보았다가 서슬 퍼런 집권 세력의 이빨이 드러나면 꼬리를 내리기도 하면서 카운터파트가 종국에는 지쳐 쓰러지길 기다린다. 모든 정권은 항상 초반에는 힘센 스트레이트를 날리기도 하고 어퍼컷도 쳐 올리지만, ‘권력 중독’으로 스파링을 제대로 못한 까닭에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재벌들의 ‘불법 정치자금 안 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안팎 도처에서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점이다. 명분도 훌륭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하는 등 정치인들에게 시달리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내 주머니에서 ‘피 같은 뭉칫돈’이 나가지 않아 좋다.
한술 더 떠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정치자금 비리의 근원적 차단을 위해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비리는 국민에게 고해성사를 해 대대적인 사면조치를 받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이참에 등골 쑤시는 ‘과거사’에서 해방될 면죄부를 받자는 얘기인가.
이 나라 기업이 정치자금의 족쇄에서 풀려나 정말 그들 주장대로 경쟁력 향상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왠지 또 다른 코미디의 서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이미 줄 설 데 다 섰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든지. 차기 정권에서는 정치자금 스캔들 때문에 열받을 일은 없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