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사동 거리에는 다른 곳보다 한발 앞서 봄이 찾아온 듯싶다. 외국인과 남녀노소가 골고루 섞인 구경꾼들이 항상 인사동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사동을 찾게 만드는 것일까?
인사동에 처음 들어선 사람은 ‘분명히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골동품 가게나 기념품 상점, 전통찻집과 카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사동의 가장 큰 특징은 갤러리가 많다는 데 있다. 줄잡아 50군데 가까운 소규모 갤러리들이 인사동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이면 그림을 배달하는 트럭이 인사동 길을 오가고 거리 곳곳에 새로운 전시회 포스터가 붙는가 하면, 미대생과 수집가 그리고 작가들이 바삐 인사동 길을 오간다.
근래 인사동 땅값이 올라가면서 적잖은 갤러리들이 돈 안 되는 기획전을 포기하고 대관 위주로 운영 방침을 바꾸었다. 인사동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있는 몇몇 갤러리의 존재는 인사동에서 더욱 소중하다.
인사동길 중간쯤에는 커다란 약국이 하나 있다. 인사동에서 약속할 때 으레 중간 지점으로 삼는 곳이다. 이 약국 뒷길에 ‘갤러리 사비나’가 숨듯이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 사비나는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기획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발소 명화전’이나 ‘숨은 그림 찾기’ ‘일기예보전’ 등은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다.
“기존의 관념적인 미술 전시회들은 소수 엘리트나 컬렉터만을 위한 것이죠. 갤러리 사비나는 전문가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을 염두에 둔 전시장입니다. 예컨대 ‘이발소 명화전’ 같은 경우는 제목부터 구체적으로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 것입니다.”
갤러리 사비나의 이명옥 대표는 대중친화적인 갤러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순발력과 기획력을 꼽았다. “그냥 걸면 어렵게 보이는 작품도 ‘흥겨운 우리놀이’라는 기획전에 걸면 사람들이 흥미로워하지요. 기획력이란 바로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 봄 인사동 초입으로 이사하는 갤러리 사비나는 국내 갤러리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를 모집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획전시를 재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기업 스폰서를 모집하겠다는 것. 항상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갤러리 사비나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 자못 관심거리다.
갤러리 사비나 맞은편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사이드 역시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 아트사이드는 1층이 전시 공간을 겸한 카페, 2, 3층은 전시장으로 꾸며진 건물로 인사동의 여타 건물보다 상당히 세련된 느낌을 준다. 1층 카페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는데 이 공간을 만든 98년 당시에는 “왜 인사동에 PC방을 만드느냐”는 항의도 무수히 받았다는 것이 이동재 대표의 전언.
지난해 ‘차이니즈 아방가르드’전을 개최해 호평받은 갤러리 아트사이드는 앞으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중국 현대미술은 역사가 10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나름의 수준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초청 전시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기획전이 줄어들고 갤러리들이 속속 인사동을 떠나는 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다. 올 봄에도 전통미술을 주로 선보여 온 학고재가 인사동을 떠난다. 원래 인사동과 소격동 두 곳에 갤러리를 운영해 온 학고재는 인사동 공간을 임대하고 소격동에만 전시 공간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업 갤러리의 자리를 젊은 화가들을 위한 ‘대안공간’이 메우고 있는 것도 인사동의 특징이다. 갤러리와 달리 비영리 공간인 대안공간은 문화관광부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땅값이 오르면서 갤러리 운영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대안공간은 워낙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대안공간인 ‘사루비아다방’ 이관훈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현재 인사동에는 ‘대안공간 풀’과 ‘사루비아다방’ 두 곳의 대안공간이 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은 9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하필 ‘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원래 다방이 영업하던 장소를 임대했기 때문이라고.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사루비아다방은 횐색 벽의 깔끔한 갤러리들이 주는 인상과는 정반대로 음습하고 험상궂기까지 하다. 멋모르고 들어서던 관람객들 중에는 놀라서 나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제목과 공간의 성격 때문에 이제는 ‘사루비아다방’ 하면 떠오르는 확실한 이미지가 생겨났다. “그것 자체가 사루비아다방이 거둔 성과”라고 이관훈 큐레이터는 이야기한다.
6명의 운영위원이 꾸려가는 사루비아다방은 해마다 4명의 전시 후원작가를 선정해 400만원의 창작지원 기금을 지급하고 전시회를 열어줄 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 후원작가를 설정할 때는 특별한 제한 기준은 없지만 공간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인지 항상 실험적인 작품들이 응모한다고.
인사동에 있는 또 하나의 대안공간인 ‘대안공간 풀’은 ‘작가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한국 미술계에서 작가들은 점점 소외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핵심은 비평가나 큐레이터가 아닌 작가들 아닐까요.” 대안공간 풀의 기획을 맡고 있는 김장언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이같은 취지에 걸맞게 대안공간 풀은 전시와 세미나, 강좌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일반인 대상과 전문가 대상의 강좌를 분리해 개설하고 있는 것도 대안공간 풀의 특징이다. 역시 99년에 문을 연 대안공간 풀에서는 ‘답십리 우성연립 지하 101호’ 같은 실험성 강한 전시와 ‘중국미술: 철학적 접근’ 같은 전문가 대상의 강좌가 열리곤 한다.
역동성 큰 항상 살아 있는 공간
지난 2000년 인사동길 정비계획이 실행될 때 많은 인사동 사람들은 인사동이 변질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고서점과 갤러리가 떠나고 미국식 커피체인점과 카페, 삼겹살집과 스파게티 식당이 들어섰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갤러리의 빈자리를 대안공간이 조금씩 메우고 있으며 갤러리 또한 스폰서 찾기 등으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 과거가 머물러 있는 거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인사동이 과거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사동의 한계를 규정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인사동은 항상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동성이 인사동을 가장 인사동답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낙관일까.
인사동에 처음 들어선 사람은 ‘분명히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골동품 가게나 기념품 상점, 전통찻집과 카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사동의 가장 큰 특징은 갤러리가 많다는 데 있다. 줄잡아 50군데 가까운 소규모 갤러리들이 인사동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이면 그림을 배달하는 트럭이 인사동 길을 오가고 거리 곳곳에 새로운 전시회 포스터가 붙는가 하면, 미대생과 수집가 그리고 작가들이 바삐 인사동 길을 오간다.
근래 인사동 땅값이 올라가면서 적잖은 갤러리들이 돈 안 되는 기획전을 포기하고 대관 위주로 운영 방침을 바꾸었다. 인사동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있는 몇몇 갤러리의 존재는 인사동에서 더욱 소중하다.
인사동길 중간쯤에는 커다란 약국이 하나 있다. 인사동에서 약속할 때 으레 중간 지점으로 삼는 곳이다. 이 약국 뒷길에 ‘갤러리 사비나’가 숨듯이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 사비나는 각종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기획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발소 명화전’이나 ‘숨은 그림 찾기’ ‘일기예보전’ 등은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다.
“기존의 관념적인 미술 전시회들은 소수 엘리트나 컬렉터만을 위한 것이죠. 갤러리 사비나는 전문가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을 염두에 둔 전시장입니다. 예컨대 ‘이발소 명화전’ 같은 경우는 제목부터 구체적으로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 것입니다.”
갤러리 사비나의 이명옥 대표는 대중친화적인 갤러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순발력과 기획력을 꼽았다. “그냥 걸면 어렵게 보이는 작품도 ‘흥겨운 우리놀이’라는 기획전에 걸면 사람들이 흥미로워하지요. 기획력이란 바로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 봄 인사동 초입으로 이사하는 갤러리 사비나는 국내 갤러리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를 모집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획전시를 재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기업 스폰서를 모집하겠다는 것. 항상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갤러리 사비나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 자못 관심거리다.
갤러리 사비나 맞은편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사이드 역시 독특한 개성을 발산하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 아트사이드는 1층이 전시 공간을 겸한 카페, 2, 3층은 전시장으로 꾸며진 건물로 인사동의 여타 건물보다 상당히 세련된 느낌을 준다. 1층 카페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는데 이 공간을 만든 98년 당시에는 “왜 인사동에 PC방을 만드느냐”는 항의도 무수히 받았다는 것이 이동재 대표의 전언.
지난해 ‘차이니즈 아방가르드’전을 개최해 호평받은 갤러리 아트사이드는 앞으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중국 현대미술은 역사가 10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나름의 수준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초청 전시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기획전이 줄어들고 갤러리들이 속속 인사동을 떠나는 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다. 올 봄에도 전통미술을 주로 선보여 온 학고재가 인사동을 떠난다. 원래 인사동과 소격동 두 곳에 갤러리를 운영해 온 학고재는 인사동 공간을 임대하고 소격동에만 전시 공간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업 갤러리의 자리를 젊은 화가들을 위한 ‘대안공간’이 메우고 있는 것도 인사동의 특징이다. 갤러리와 달리 비영리 공간인 대안공간은 문화관광부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땅값이 오르면서 갤러리 운영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대안공간은 워낙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대안공간인 ‘사루비아다방’ 이관훈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현재 인사동에는 ‘대안공간 풀’과 ‘사루비아다방’ 두 곳의 대안공간이 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은 9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하필 ‘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원래 다방이 영업하던 장소를 임대했기 때문이라고.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사루비아다방은 횐색 벽의 깔끔한 갤러리들이 주는 인상과는 정반대로 음습하고 험상궂기까지 하다. 멋모르고 들어서던 관람객들 중에는 놀라서 나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제목과 공간의 성격 때문에 이제는 ‘사루비아다방’ 하면 떠오르는 확실한 이미지가 생겨났다. “그것 자체가 사루비아다방이 거둔 성과”라고 이관훈 큐레이터는 이야기한다.
6명의 운영위원이 꾸려가는 사루비아다방은 해마다 4명의 전시 후원작가를 선정해 400만원의 창작지원 기금을 지급하고 전시회를 열어줄 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 후원작가를 설정할 때는 특별한 제한 기준은 없지만 공간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인지 항상 실험적인 작품들이 응모한다고.
인사동에 있는 또 하나의 대안공간인 ‘대안공간 풀’은 ‘작가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한국 미술계에서 작가들은 점점 소외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핵심은 비평가나 큐레이터가 아닌 작가들 아닐까요.” 대안공간 풀의 기획을 맡고 있는 김장언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이같은 취지에 걸맞게 대안공간 풀은 전시와 세미나, 강좌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일반인 대상과 전문가 대상의 강좌를 분리해 개설하고 있는 것도 대안공간 풀의 특징이다. 역시 99년에 문을 연 대안공간 풀에서는 ‘답십리 우성연립 지하 101호’ 같은 실험성 강한 전시와 ‘중국미술: 철학적 접근’ 같은 전문가 대상의 강좌가 열리곤 한다.
역동성 큰 항상 살아 있는 공간
지난 2000년 인사동길 정비계획이 실행될 때 많은 인사동 사람들은 인사동이 변질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고서점과 갤러리가 떠나고 미국식 커피체인점과 카페, 삼겹살집과 스파게티 식당이 들어섰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갤러리의 빈자리를 대안공간이 조금씩 메우고 있으며 갤러리 또한 스폰서 찾기 등으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 과거가 머물러 있는 거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인사동이 과거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사동의 한계를 규정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인사동은 항상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동성이 인사동을 가장 인사동답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낙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