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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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수록 꼬여가는 ‘재탈북 미스터리’

유태준씨 말 못할 북한 내 행적 궁금증 증폭 … ‘진실’ 감추려다 의혹만 양산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0-29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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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수록 꼬여가는 ‘재탈북 미스터리’
    한국판 빠삐용인가, 영웅심에 들뜬 거짓말쟁이인가. 지난 2000년 6월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북한에 들어간 후 재탈북해 지난 2월9일 국내에 들어온 유태준씨(34·98년 11월 탈북)의 보위부 감옥 탈출 사실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그의 행각을 둘러싼 의혹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13일 유씨의 공식 기자회견 후 국내 언론은 철통 경비로 소문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의 담과 전기철조망을 목숨 걸고 뛰어넘었다는 그를 한국판 빠삐용에 비유했다. 쇠뭉치에 맞아 찢어진 손목 상처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그는 드라마 주인공 그 자체였다. 탈북자로서 북한에 다시 들어간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재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그가 최초였고, 탈출 과정에 너무나 우연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위부 감옥 탈출 거짓말 시인

    하지만 통일부 등 관계당국이 14일 오전 유씨의 보위부 감옥 탈출 드라마를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더욱이 이날 오후 그를 조사한 국가정보원이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보위부 감옥이 아닌 자신이 일하던 작업장을 걸어서 나왔다’고 발표함으로써 그의 북한 입국과 탈출 과정에 대한 각종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유씨는 지난 17일 재차 기자회견을 가지고 13일 기자회견 당시 보위부 감옥 탈출에 대해 자신이 묘사한 부분은 거짓말이라고 시인함으로써, 불과 닷새 사이에 영웅에서 거짓말쟁이로 급전직하했다.

    문제는 자꾸만 말을 번복하는 유씨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많다는 사실. 지난 13일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정보기관 합동심문조로부터 심한 추궁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갑자기 심경 변화를 일으킨 배경이 석연치 않은 것. 17일 기자회견이 입국 후 바로 가진 최초 합동심문조 조사 내용(국정원 주장)과 한치의 오차가 없다는 사실도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풀수록 꼬여가는 ‘재탈북 미스터리’
    과연 유씨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거짓말을 한 이유는 뭘까. 또 북한 재입국과 탈출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은 없는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유씨가 기자회견장에서 쏟아낸 말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그의 2월13일 기자회견 내용.

    “2000년 6월15일 오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송전툰에서 미리 알고 있던 조선족 최모씨의 도움으로 아내가 함경북도 무산 모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16일 두만강을 건너 그곳으로 갔으나 아내가 없어 25일 함흥의 처가에 가 장모를 만났다. 하지만 장모가 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나가버려 할 수 없이 기차를 타고 무산으로 돌아왔다. 무산에서 두만강 도강을 기다리다 30일 보위부 요원들에게 붙잡혀 청진 보위부 감옥에 수감됐다. 2001년 1월15일 재판에서 32년형을 선고받고 청진 보위부에 재수감됐다 지난해 5월 평양 보위부로 옮겼다. 이후 대남연락관 초대소에서 공작원으로부터 대남 기자회견 연습을 했고, 5월30일과 8월4일 두 차례 인민문화궁전에서 대남방송용 기자회견 장면을 조작 촬영했다. 11월10일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인복을 벗어 3m 담 위에 설치된 전기철조망에 걸고 그것을 타고 올라가 탈출에 성공했다. 같은 달 30일 압록강을 건너 국경을 넘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長白)시에 도착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회 관계자의 거절로 중국 공안원에게 체포됐다. 그 후 계속 대한민국 국민임을 주장해 2월9일 중국 당국에 의해 추방됐다. 한국에 들어온 후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찰로 넘겨져 설 전날인 11일 밤 집으로 돌아왔다.”

    풀수록 꼬여가는 ‘재탈북 미스터리’
    그의 이런 탈옥기에 대해 가장 먼저 의혹을 제기한 것은 보위부 출신 안혁씨 등 탈북자들. “3m 이상의 담과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감방 내부 역시 24시간 철저히 통제되는 보위부 감옥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

    이런 상황에서 유씨의 어머니 안씨가 14일 오후 모 언론매체에 “평양 보위부 감옥을 탈출한 것은 아니다. 평양 보위부 소속 평성 양정사업소 감옥으로 옮겨져 거기서 탈출했다. 양정사업소 부분은 일부러 말하지 말라고 내가 시켰다”고 말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진행됐다. 기자회견이 끝난 지 24시간 동안 잠잠하던 국가정보원도 같은 날 오후 즉각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유씨가 평양 보위부 감옥 수용중 담을 넘어 탈출했다고 보도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2001년 5월 유씨는 청진 정치범 교화소에서 석방돼 한국의 양곡 도정소에 해당하는 양정사업소 노동자로 배치받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보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후 모든 언론이 유씨를 거짓말쟁이로 몬 것은 당연한 일. 유씨는 정말 탈출한 것이 아니라 ‘석방’된 것이고, 철조망이 쳐진 담을 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국정원 주장과 달리 유씨의 주장은 13일 기자회견에 대한 경찰의 ‘추궁’ 재수사가 있은 14일 밤까지만 해도 기자회견 당시와 변한 것이 없었다. 담을 넘어 탈출한 것이지 ‘석방’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14일 경찰 재조사 이후 언론과의 대면을 일절 회피해 오던 유씨는 이날 밤 늦게 ‘주간동아’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김정일이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도 사랑한다’는 친필 지시서를 평양 보위부 간부에게 보내와 좀더 편한 평성 양정사업소로 옮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정사업소도 보위부 소속이고 3m 이상의 담과 전기철조망이 쳐 있어 감옥과 똑같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콘크리트로 된 감방에 갇혀 있었다. 감방 입구도 토굴로 기어 들어가게 돼 있었고 내내 강냉이죽만 먹었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나를 환대해 주었다는 사실을 말하면 김정일의 지위만 더 높아지고, 나에게 불리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을 따르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양정사업소도 보위부 산하이고 감옥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보위부 감옥에서 수인복을 걸어 담을 넘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기자회견 내용 중 김정일 부분과 양정사업소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실이다. 일부 과장된 표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정원 수사국의 한 관계자는 “양정사업소는 노동자가 출퇴근하는 곳이다. 일부 기숙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감옥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석방된 상태에서 다른 탈북자들처럼 국경을 넘어온 것일 뿐이다”고 유씨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던 유씨는 17일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담을 뛰어넘은 적이 없고 걸어서 나갔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의 기자회견 내용은 국정원이 낸 보도 참고자료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14일 밤까지 변함이 없던 그의 주장이 15, 16일 이틀을 지나며 갑자기 바뀐 이유가 뭘까. 유씨는 자신의 발언이 일부 거짓말로 드러나자 당황하면서 관계기관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또한 유씨에 대한 의혹은 북한 체류기간과 탈출 과정 전반으로 확산되는 듯하다. 우선적으로 대두된 의혹은 일반 탈북자들의 수사도 2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북한에 다시 갔다 온 유씨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심문조의 수사가 어떻게 단 이틀 만에 끝나고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었느냐는 점.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감춰왔던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유씨는 탈북자와 다르게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영장 없이는 48시간 이상 구금하지 못한다. 그런데 검찰에 넣은 영장 신청이 기각되면서 보강수사 지시가 떨어졌고 그래서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이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국정원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도 속시원히 답변할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

    다음으로 제기된 의혹은 유씨가 주중대사관의 도움을 받거나 접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임시 여행증명서가 나왔느냐는 점. 또 국정원이 유씨의 재탈북 사실을 입국 당시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발표한 부분과 관련해 중국 지린성 공안청이 주중대사관에 유씨에 대한 신원확인을 요청했는데도 정보기관이 어떻게 이를 몰랐느냐는 것도 또 하나의 의문. 이 때문에 유씨 탈북에 대한 국정원의 방관설 내지 개입 은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국정원의 공식 입장은 “임시 여행증명서 발급은 중국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국내인과 같은 절차에 따라 처리되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는 것.

    하지만 정보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12월 말 이미 유씨의 재탈북과 중국 공안당국의 체포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정보기관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 공안은 유씨가 재탈북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섣불리 범죄인 인도 요청이나 수사협조를 요청했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씨도 “중국 공안이 2000년 6월 입국 당시의 기록을 가지고 취조했을 뿐 다른 부분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중대사관의 이준규 총영사 역시 “국정원 부분은 말할 수 없지만 지난해 10월 한국인 사형 문제가 불거진 후 중국 공안과의 협조가 대단히 잘 되고 있으며, 유씨의 여행증명서 발급은 여권을 잃어버린 일반인과 같은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에서 좋았던 기억을 좋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나쁜 일만 과장하는 탈북자들의 ‘자격지심’이 관계기관의 정보 은폐 습성과 맞물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양산하는 해프닝을 빚은 셈이다. 심지어 유씨는 관계기관 조사와 기자회견에서 북한 형법상 존재하지도 않는 3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지만(북한 형법상 15년형이 최고), 국정원은 조사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언론에 그대로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내를 만난 것은 인민궁전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몇 번 스쳐본 것뿐입니다.” 유씨는 14일 밤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한 바로 다음날 오후 그가 북한에서 아내와 장시간 합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바로 제기됐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유씨는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며, 다만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우선 그가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유해하지 않은 사람’임을 관계당국과 유씨 자신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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