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사유지를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라는 공익단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영국 전체 토지의 무려 1.5%인 약 27만ha를 소유하고 있다. 이중 3분의 1은 호수가 많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또한 영국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은 거의가 이 단체 소유다. 영국 전체 해안의 18%에 해당하는 600마일(약 965km)이 ‘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관리된다. 1965년 시작된 ‘넵튠 캠페인’을 통해 해안선 매입운동이 본격화된 탓이다.
풍광이 뛰어난 해변을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관리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리조트 단지나 러브호텔이 들어설 여지는 전혀 없다. 해변은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된다. 자연 생태계 역시 옛적 그대로다. 관광은 관광회사가 아닌 ‘내셔널트러스트’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개발 봉쇄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전 세계 확산
시인 워즈워스의 생가가 있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호수 지방, 테니슨이 시를 짓던 언덕이 있는 와이트섬,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스 교외의 레이콕 마을, 하얀 해안절벽이 줄지어 있는 도버의 해안선 등 이런 명소에는 으레 ‘내셔널트러스트’의 마크인 ‘도토리가 붙어 있는 떡갈나무 이파리’를 볼 수 있다.
이제 눈치챘겠지만 ‘내셔널트러스트’는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기부금을 모아 토지나 건물 등을 사들이고 기증받아 보전·관리·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다. 지금부터 107년 전인 1895년 변호사 로버트 헌터, 목사 핸드워크 론즐리, 사회사업가 옥타비아 힐 등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회원이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려 25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영국 최대의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영국 인구가 5700만명 정도이니 인구의 4.4% 가량이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인 셈이다.
오늘날 ‘내셔널트러스트’는 전 세계 25개국에서 진행되는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60년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이 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나 지차체가 이 운동의 협력·연대조직으로서 ‘내셔널트러스트를 추진하는 전국의 모임’을 만든 것이 1982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공동대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지난 1월25일에야 겨우 첫번째 전국대회를 열었다. 일본보다 20년이나 늦었다. 김성훈 대표는 이날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운동”이라며 “여러 시민환경단체와의 유기적 연대를 모색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역사는 지난 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광주에서 도심의 팽창과 무등산 훼손을 막기 위해 시민 성금으로 ‘무등산 공유화재단’이 설립돼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99년 대전에서는 오정동 ‘선교사촌’의 훼손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1인1계좌갖기운동 등을 벌여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현재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서울 둔촌동 습지, 천리포 수목원 등 11개 지역이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99년에는 녹색연합이 신태백 변전소 건설을 막기 위해 건설부지 중 1300여평을 구입했으나 강제수용 절차로 저지에 실패했다. 동강지역 문희마을을 살리기 위한 땅 한 평사기 운동 역시 턱없이 부족한 모금액과 주민들과의 견해 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보호보다 개발 위주로 제정돼 있는 정부의 각종 제도와 법,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 세법 등이 더 큰 문제다.
무려 95년 전인 1907년 영국 의회는 ‘내셔널트러스트법’을 제정하고 이 운동의 당위성을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올 12월 대선 향방에만 골몰하는 우리 정부나 국회에서 이 운동에 시선을 돌릴 사람이 있을까?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의 한 구절만 가슴에 담아도 국토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황폐화되지는 않을 듯한데….
“…그리고 나는 기원한다/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 속에 함께하기를”
풍광이 뛰어난 해변을 ‘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관리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리조트 단지나 러브호텔이 들어설 여지는 전혀 없다. 해변은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된다. 자연 생태계 역시 옛적 그대로다. 관광은 관광회사가 아닌 ‘내셔널트러스트’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개발 봉쇄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 전 세계 확산
시인 워즈워스의 생가가 있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호수 지방, 테니슨이 시를 짓던 언덕이 있는 와이트섬,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스 교외의 레이콕 마을, 하얀 해안절벽이 줄지어 있는 도버의 해안선 등 이런 명소에는 으레 ‘내셔널트러스트’의 마크인 ‘도토리가 붙어 있는 떡갈나무 이파리’를 볼 수 있다.
이제 눈치챘겠지만 ‘내셔널트러스트’는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기부금을 모아 토지나 건물 등을 사들이고 기증받아 보전·관리·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다. 지금부터 107년 전인 1895년 변호사 로버트 헌터, 목사 핸드워크 론즐리, 사회사업가 옥타비아 힐 등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회원이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려 25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영국 최대의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영국 인구가 5700만명 정도이니 인구의 4.4% 가량이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인 셈이다.
오늘날 ‘내셔널트러스트’는 전 세계 25개국에서 진행되는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60년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이 운동을 벌인 사람들이나 지차체가 이 운동의 협력·연대조직으로서 ‘내셔널트러스트를 추진하는 전국의 모임’을 만든 것이 1982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공동대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지난 1월25일에야 겨우 첫번째 전국대회를 열었다. 일본보다 20년이나 늦었다. 김성훈 대표는 이날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운동”이라며 “여러 시민환경단체와의 유기적 연대를 모색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역사는 지난 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광주에서 도심의 팽창과 무등산 훼손을 막기 위해 시민 성금으로 ‘무등산 공유화재단’이 설립돼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99년 대전에서는 오정동 ‘선교사촌’의 훼손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1인1계좌갖기운동 등을 벌여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현재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서울 둔촌동 습지, 천리포 수목원 등 11개 지역이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99년에는 녹색연합이 신태백 변전소 건설을 막기 위해 건설부지 중 1300여평을 구입했으나 강제수용 절차로 저지에 실패했다. 동강지역 문희마을을 살리기 위한 땅 한 평사기 운동 역시 턱없이 부족한 모금액과 주민들과의 견해 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보호보다 개발 위주로 제정돼 있는 정부의 각종 제도와 법, 기부금품모집금지법과 세법 등이 더 큰 문제다.
무려 95년 전인 1907년 영국 의회는 ‘내셔널트러스트법’을 제정하고 이 운동의 당위성을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올 12월 대선 향방에만 골몰하는 우리 정부나 국회에서 이 운동에 시선을 돌릴 사람이 있을까?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의 한 구절만 가슴에 담아도 국토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황폐화되지는 않을 듯한데….
“…그리고 나는 기원한다/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 속에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