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28일 오전 3시 북한 사회안전성 소속 이모 중사(32)가 중국 어선을 몰고 충남 태안반도 앞 서해 바다로 귀순했다. 북한 해군과의 서해 교전(6월15일)이 있은 지 보름도 안 된 시점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이었지만 이중사가 한국 땅에서 처음 들은 말은 “개×× 똑바로 앉아”라는 정보기관 ‘합동 신문조’의 욕지거리였다고 한다.
이후 사회에 나온 이중사는 북한에서 받은 항해사 자격증을 활용하지도 못한 채 월 50만~7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조차 체불을 일삼았다. 하수구 청소, 노래방 직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3000만원에 이르는 정착지원금도 사기꾼들의 꾐에 속아 모두 날려버린 그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애인과의 결혼도 여권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이 모두가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권 향상 위한 희생양 되겠다”
그는 이제 한국이 자신을 국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므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렵사리 발행된 단수여권(1회 사용)으로 무비자 국가를 거쳐 미국에 건너가 한국에 사는 탈북자들의 반인권적 상황을 폭로하고 난민신청을 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탈북자들의 ‘탈(脫)한국’과 제3국으로의 난민신청이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탈한국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에 남아 있는 탈북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희생양이 될 준비를 끝냈다”고 말한다. 자유가 그리워 사선을 넘어온 자신들을 한국이 명목상으로만 자국민으로 인정할 뿐, 사실상 ‘불법 체류자’로 취급한다는 주장이다.
정보기관의 구타, 사회의 냉대와 멸시, 해외여행의 제한 등…. 탈북자들이 느낀 한국은 자유롭게 경쟁하고 그 결실을 평등하게 얻을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기회균등의 원칙과 거주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 국민이라 볼 수 없으므로 자신들의 ‘탈한국’은 당연하다는 게 탈북자들의 항변이다.
2001년 9월 한국을 빠져나간 뒤 12월12일 호주 이민국에 난민신청을 해 충격을 줬던 전모씨(28)도 상황은 마찬가지. 탈한국 난민신청 1호인 전씨는 그 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7년 귀순한 뒤 정보기관에서 조사받으며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여섯 차례나 여권 발급을 신청했는데 계속 실패했다. 자유를 위해 남한에 왔으나 생활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특히 전씨가 “그동안 나를 핍박한 정보기관 사람들이 싫어 나간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한다. 위에서 언급한 탈북자 이씨는 “탈북자를 대하는 정보기관의 태도는 인권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상소리와 가벼운 구타는 다반사고 결혼이나 무역대금 수금 등 절박한 사연을 호소해도 여권을 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씨 외에도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을 빠져나간 뒤 이미 제3국에서 불법체류자 생활을 전전하는 탈북자가 또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모 신학교를 다니던 탈북자 주모씨(38·99년 귀순)가 지난해 6월 정보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단수여권을 가지고 무비자 국가인 멕시코를 경유해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들어가 있다는 것.
주씨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한 탓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했고, 최근에는 주 당국의 허가 없이 노점상을 하다 세금 포탈과 불법체류 혐의로 미국 이민청에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지 한인회장이 보석금을 내줘 풀려난 주씨는 현재 한인 가정의 보호를 받으며 난민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주장이다.
주씨의 탈한국 동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권 발급을 둘러싼 정보기관과의 다툼과 사회적 차별이 문제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측은 현재 주씨의 탈한국과 미국 불법체류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전씨 외에는 아는 바도 없고 확인해 줄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전씨와 주씨는 이미 한국을 떠나 있지만 문제는 탈한국 시기만 조율하고 있는 탈북자들. 이들은 해당 국가가 난민신청을 받아줄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단 기회가 오면 한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와 무역업을 하던 탈북자 최모씨(37)에게 정보기관의 여권 발급이 갑자기 중단된 시점은 지난해 1월. 최씨는 지난 95년 귀순한 후 자유롭지는 않지만 매번 1회용 단수여권을 재발급받아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여권 발급 중단으로 무역업을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정보기관은 여권 발급 제한 이유를 속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 다만 “지금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여권 발급이 재개됐지만 이미 자신의 회사는 문을 닫은 후였다.
최씨는 최근 주변 탈북자에게 제3국으로 탈출해 여권 발급 제한 문제와 귀순 당시 정보기관으로부터 당한 ‘비인간적 대우’를 폭로하겠다는 말을 남긴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정보기관 한 관계자는 전씨에 대한 구타 등 탈북자 조사과정의 ‘비인간적 대우’에 관하여 “조사를 원활히 하기 위해 위협적인 포즈를 취하거나 ‘꿀밤‘ 정도 준 것을 확대 과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구타나 비인간적 대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탈한국을 결심하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구타’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여권제한 문제다. 탈북자 여행 허가권을 쥐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탈북자에게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국정원 한 관계자는 “신변 위해 위험이 상당히 있는 경우 보호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여행 보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거주지신변보호지침’(국정원 내부지침)에 따른 합법적 조치”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신변 위해 위험이 상당히 있는’ 경우가 어떤 경우냐는 것. 국정원 한 관계자는 “나가기 전에는 모두가 사업한다, 여행만 하겠다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며 “나름대로의 원칙과 정보를 가지고 여권 발급을 제한했을 뿐, 실질적으로 여권이 필요한 탈북자에 대해서 여권 발급을 제한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의 ‘보호의무’를 강조하는 국정원과 이를 ‘또 하나의 차별’과 ‘인권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들 사이에 두터운 ‘불신의 벽’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양자간의 이런 불신이 자칫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외교적 분쟁을 부를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들어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척 10명을 모두 데리고 나온 뒤 유엔 고등 판무관실에 난민신청을 할 것이라는 박모씨(36)가 바로 그런 경우. 그는 기자에게 지난해 12월 초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박씨는 지난해 초 찜질방 사업이 중국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중국을 자주 다녀왔지만 최근 들어 여권이 나오지 않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박씨는 “99년 2월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에 갔다 체포돼 1년6개월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젠 겁날 것도 없다. 길수네 가족도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느냐”며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탈북자 김형덕씨(민주당 김성호 의원 비서관)는 “당사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하거나 탈북자가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물증을 제시할 수 있다면 여권 발급을 제한해야 하지만, 탈북자 대부분에게 1회용 단수여권만 발행하고 단지 혐의만으로 여행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과보호이며, 탈북자들에겐 통제나 인권탄압으로 비친다”며 “탈북자들의 해외여행에 대한 관련내규의 수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사회에 나온 이중사는 북한에서 받은 항해사 자격증을 활용하지도 못한 채 월 50만~7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조차 체불을 일삼았다. 하수구 청소, 노래방 직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3000만원에 이르는 정착지원금도 사기꾼들의 꾐에 속아 모두 날려버린 그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애인과의 결혼도 여권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이 모두가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인권 향상 위한 희생양 되겠다”
그는 이제 한국이 자신을 국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므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렵사리 발행된 단수여권(1회 사용)으로 무비자 국가를 거쳐 미국에 건너가 한국에 사는 탈북자들의 반인권적 상황을 폭로하고 난민신청을 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탈북자들의 ‘탈(脫)한국’과 제3국으로의 난민신청이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탈한국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에 남아 있는 탈북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희생양이 될 준비를 끝냈다”고 말한다. 자유가 그리워 사선을 넘어온 자신들을 한국이 명목상으로만 자국민으로 인정할 뿐, 사실상 ‘불법 체류자’로 취급한다는 주장이다.
정보기관의 구타, 사회의 냉대와 멸시, 해외여행의 제한 등…. 탈북자들이 느낀 한국은 자유롭게 경쟁하고 그 결실을 평등하게 얻을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기회균등의 원칙과 거주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 국민이라 볼 수 없으므로 자신들의 ‘탈한국’은 당연하다는 게 탈북자들의 항변이다.
2001년 9월 한국을 빠져나간 뒤 12월12일 호주 이민국에 난민신청을 해 충격을 줬던 전모씨(28)도 상황은 마찬가지. 탈한국 난민신청 1호인 전씨는 그 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7년 귀순한 뒤 정보기관에서 조사받으며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여섯 차례나 여권 발급을 신청했는데 계속 실패했다. 자유를 위해 남한에 왔으나 생활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특히 전씨가 “그동안 나를 핍박한 정보기관 사람들이 싫어 나간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한다. 위에서 언급한 탈북자 이씨는 “탈북자를 대하는 정보기관의 태도는 인권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상소리와 가벼운 구타는 다반사고 결혼이나 무역대금 수금 등 절박한 사연을 호소해도 여권을 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씨 외에도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을 빠져나간 뒤 이미 제3국에서 불법체류자 생활을 전전하는 탈북자가 또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모 신학교를 다니던 탈북자 주모씨(38·99년 귀순)가 지난해 6월 정보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단수여권을 가지고 무비자 국가인 멕시코를 경유해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들어가 있다는 것.
주씨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한 탓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했고, 최근에는 주 당국의 허가 없이 노점상을 하다 세금 포탈과 불법체류 혐의로 미국 이민청에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지 한인회장이 보석금을 내줘 풀려난 주씨는 현재 한인 가정의 보호를 받으며 난민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주장이다.
주씨의 탈한국 동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권 발급을 둘러싼 정보기관과의 다툼과 사회적 차별이 문제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측은 현재 주씨의 탈한국과 미국 불법체류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으며 “전씨 외에는 아는 바도 없고 확인해 줄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전씨와 주씨는 이미 한국을 떠나 있지만 문제는 탈한국 시기만 조율하고 있는 탈북자들. 이들은 해당 국가가 난민신청을 받아줄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단 기회가 오면 한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와 무역업을 하던 탈북자 최모씨(37)에게 정보기관의 여권 발급이 갑자기 중단된 시점은 지난해 1월. 최씨는 지난 95년 귀순한 후 자유롭지는 않지만 매번 1회용 단수여권을 재발급받아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여권 발급 중단으로 무역업을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정보기관은 여권 발급 제한 이유를 속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 다만 “지금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여권 발급이 재개됐지만 이미 자신의 회사는 문을 닫은 후였다.
최씨는 최근 주변 탈북자에게 제3국으로 탈출해 여권 발급 제한 문제와 귀순 당시 정보기관으로부터 당한 ‘비인간적 대우’를 폭로하겠다는 말을 남긴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정보기관 한 관계자는 전씨에 대한 구타 등 탈북자 조사과정의 ‘비인간적 대우’에 관하여 “조사를 원활히 하기 위해 위협적인 포즈를 취하거나 ‘꿀밤‘ 정도 준 것을 확대 과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구타나 비인간적 대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탈한국을 결심하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구타’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여권제한 문제다. 탈북자 여행 허가권을 쥐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탈북자에게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국정원 한 관계자는 “신변 위해 위험이 상당히 있는 경우 보호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여행 보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거주지신변보호지침’(국정원 내부지침)에 따른 합법적 조치”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신변 위해 위험이 상당히 있는’ 경우가 어떤 경우냐는 것. 국정원 한 관계자는 “나가기 전에는 모두가 사업한다, 여행만 하겠다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며 “나름대로의 원칙과 정보를 가지고 여권 발급을 제한했을 뿐, 실질적으로 여권이 필요한 탈북자에 대해서 여권 발급을 제한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의 ‘보호의무’를 강조하는 국정원과 이를 ‘또 하나의 차별’과 ‘인권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들 사이에 두터운 ‘불신의 벽’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양자간의 이런 불신이 자칫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외교적 분쟁을 부를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들어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척 10명을 모두 데리고 나온 뒤 유엔 고등 판무관실에 난민신청을 할 것이라는 박모씨(36)가 바로 그런 경우. 그는 기자에게 지난해 12월 초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박씨는 지난해 초 찜질방 사업이 중국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중국을 자주 다녀왔지만 최근 들어 여권이 나오지 않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박씨는 “99년 2월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에 갔다 체포돼 1년6개월 감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젠 겁날 것도 없다. 길수네 가족도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느냐”며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으로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탈북자 김형덕씨(민주당 김성호 의원 비서관)는 “당사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하거나 탈북자가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물증을 제시할 수 있다면 여권 발급을 제한해야 하지만, 탈북자 대부분에게 1회용 단수여권만 발행하고 단지 혐의만으로 여행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과보호이며, 탈북자들에겐 통제나 인권탄압으로 비친다”며 “탈북자들의 해외여행에 대한 관련내규의 수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