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이란 세 음절에서 쉽게 연상되는 건 뭘까. 단연 필설로는 형언키 힘든 특유의 냄새일 터. 그 푹 삭은 전통 장류에 대한 기억들이야 제각각이겠지만 고유명사 ‘청국장’이 ‘청국장 냄새’로 고스란히 묻어나는 독특한 공감각적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매한가지다.
그런 청국장이 요즘 뜨고 있다. 1715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전국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 청국장은 김치와 함께 우리만의 고유한 발효식품. 구수한 맛과는 딴판인 냄새 탓에 우리 식탁에서 적잖이 ‘평가절하’돼 왔지만 300년을 이어온 건강효과가 최근 알음알음 전해지며 ‘21세기 으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청국장 열풍’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일단 맛부터 보시죠.”
1월9일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 눈발을 2시간여 헤치고 닿은 호서대(충남 아산시 배방면). 이 대학 자연과학관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만난 김한복 교수(42·생명과학과)는 기자에게 대뜸 콩알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청국장을 수북이 뜬 숟가락부터 내밀었다. 그의 별명은 ‘청국장 박사.’ 올해로 9년째 붙잡고 있는 화두가 바로 청국장이다.
10여평 남짓한 그의 실험실에선 의외로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온통 냄새가 진동하리라던 막연한 선입감은 막상 그가 ‘창조’한 ‘냄새없는 청국장’을 접한 순간 산산이 깨졌다.
“청국장 냄새는 잡균 때문에 생겨요. 찌개로 끓이면 더 심합니다. 발효과정에서 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주성분이죠. 하지만 균주를 인공 접종해 만든 청국장은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그가 조금 전 먹어보라고 권한 청국장은 생청국장. 생청국장 자체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생청국장 외에 김교수가 현재 개발해놓은 청국장 시제품은 분말형과 캡슐형. 분말형은 청국장을 가루로 만들어 장기보관에 좋게 진공 동결건조한 것이고 캡슐형은 분말형을 말 그대로 먹기 편하게 캡슐에 넣은 것이다. 청국장을 찌개로 끓이면 주요 효소와 영양소가 파괴된다. 그러나 캡슐형의 경우 영양소 파괴나 냄새 걱정없이 어디서든 알약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전통식품 재현 차원의 연구가 아닙니다. 전통식품을 현대적 연구기법에 접목해 ‘재창조’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모든 학문은 실학(實學)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답게 청국장 맛도 강한 맛, 중간 맛, 약한 맛 등 세 가지로 개발해뒀다.
김교수의 ‘청국장 인생’은 지난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스트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선 그는 막상 자신의 연구가 국민건강에 어떤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고민의 밑바닥엔 그의 개인적 경험도 깔려 있었다. 폐기종을 오래 앓은 아버지와 췌장암, 비장암, 간암 등 세 가지 암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봐오면서 누구보다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
“암과 중풍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현대의학은 불치병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근원적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결국 올바른 먹거리가 건강의 필수요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암을 죽이려다 인체 전부를 망가뜨리기보다 암 발생 원인부터 없애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고민의 끝자락에 자연스럽게 닿은 게 식품영양학자들이 ‘기적의 낱알’로 부르는 대두였고 그것도 소금을 쓰지 않고 대두만 발효시켜 만든 전통식품 청국장이었다. 특히 최소 두 달은 걸려야 하는 된장과 달리 청국장은 2, 3일 후면 금방 먹을 수 있고 다른 식품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런 그도 연구에 뛰어들기 전 청국장을 먹어 본 기억은 단 두 번밖에 없다. 20대에 한 번, 30대에 한 번. 그것도 한 번은 먹고 나서 토하기까지 했다.
김교수는 호주머니 속에 콩을 넣어 다니며 밤낮으로 청국장 연구에 매달렸다. 삶은 대두에 볏짚을 군데군데 꽂아 발효시키는 재래식 숙성법 대신 발효에 필요한 순수한 균주만을 토양에서 분리하고 이 균주를 대두에 인공접종해 마침내 자신만의 청국장을 만들어냈다. 하루 동안 불린 대두를 120도에서 20분간 삶은 뒤 식혀뒀다가 무균상자에서 균주를 접종하고 37도로 맞춘 인큐베이터에서 4, 5일간 균을 배양하면 냄새없는 생청국장이 완성된다.
“이거 보이죠? 콩에 끈적끈적하게 실같이 딸려나오는 거. 청국장의 효능은 대부분 이런 점질성 물질(폴리 글루타메이트)에서 나와요. 된장과 청국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개발한 바실러스(Bacillus) 신(新)균주가 바로 이 점질성 물질을 늘리는 균이죠.”
김교수는 청국장 발효과정을 추적하던 중 자신이 개발한 균주를 접종해 만든 청국장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과 혈전용해 효과가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 면역증강 효과가 뛰어난 고분자 핵산의 활성기능이 기존 청국장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국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아보려 스스로 청국장 위주의 식단을 짜 체험해본 결과 변비개선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덕분에 한때 75kg에 달하던 몸무게가 1년 만에 65kg로 줄어들어 다이어트 효과도 거뒀다. 그는 지금도 일반인들이 먹기 꺼리는 생청국장을 실험실과 연구실에 보관해두고 1주일에 2, 3회 30g씩 정기적으로 떠먹는다. 자연히 그의 가족도 청국장 예찬론자가 됐다. 아내(36)는 물론 8, 6세 된 그의 두 딸도 청국장 찌개 정도는 너끈히 먹을 정도다.
김교수는 ‘청국장 먹기 운동’도 펴고 있다. 청국장을 음식에서 하나의 문화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개설한 그의 홈페이지(http://chungkookjang. com)의 접속건수는 현재 2만건을 넘어섰다. 청국장 인터넷 동호회원만도 600명. 김교수는 그들과 함께 청국장에 대해 토론하며 제조법 및 먹는 법, 청국장의 탁월한 성인병(암 및 뇌줄중) 예방효과를 알리고 있다. 그 덕분일까. 그의 청국장 사랑에 대한 네티즌의 호응은 뜨겁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분말형과 캡슐형 청국장을 좀 팔 수 없느냐” “냄새 없는 청국장을 구한다” “청국장을 아파트에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등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일일이 답변 글을 올려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청국장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그가 개발한 청국장을 상품화해 사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의도 잇따르고 있지만 김교수는 “돈에는 미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지난해 4월 ‘바실러스 리케니포미스 비1균주 및 이의 이용’에 관한 특허를 출원하긴 했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국민건강에 맞춰져 있다. 학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새 청국장을 개발하고 그 유익한 효능을 알리는 일일 뿐 제품 개발은 산-학 협동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때문에 정식으로 상품화되기 전까지 자신의 청국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지 못하는 점이 그로서도 조금은 아쉽다.
“앞으로 주부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청국장 교실을 열고 전국 순회 강연, 관련 세미나를 개최할 생각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서 청국장을 알려야죠. 일본인들이 낫도(納豆·청국장과 비슷한 일본 전통식품)에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도 온 국민이 청국장을 즐겨먹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아직도 청국장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단지 냄새뿐인가.
김교수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한 네티즌은 얼마 전 그의 청국장 사랑에 이런 향기로운 찬사의 메시지를 띄웠다.
‘전통식품을 아끼는 건 민족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 청국장이 요즘 뜨고 있다. 1715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전국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 청국장은 김치와 함께 우리만의 고유한 발효식품. 구수한 맛과는 딴판인 냄새 탓에 우리 식탁에서 적잖이 ‘평가절하’돼 왔지만 300년을 이어온 건강효과가 최근 알음알음 전해지며 ‘21세기 으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청국장 열풍’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일단 맛부터 보시죠.”
1월9일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 눈발을 2시간여 헤치고 닿은 호서대(충남 아산시 배방면). 이 대학 자연과학관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만난 김한복 교수(42·생명과학과)는 기자에게 대뜸 콩알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청국장을 수북이 뜬 숟가락부터 내밀었다. 그의 별명은 ‘청국장 박사.’ 올해로 9년째 붙잡고 있는 화두가 바로 청국장이다.
10여평 남짓한 그의 실험실에선 의외로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온통 냄새가 진동하리라던 막연한 선입감은 막상 그가 ‘창조’한 ‘냄새없는 청국장’을 접한 순간 산산이 깨졌다.
“청국장 냄새는 잡균 때문에 생겨요. 찌개로 끓이면 더 심합니다. 발효과정에서 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주성분이죠. 하지만 균주를 인공 접종해 만든 청국장은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그가 조금 전 먹어보라고 권한 청국장은 생청국장. 생청국장 자체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생청국장 외에 김교수가 현재 개발해놓은 청국장 시제품은 분말형과 캡슐형. 분말형은 청국장을 가루로 만들어 장기보관에 좋게 진공 동결건조한 것이고 캡슐형은 분말형을 말 그대로 먹기 편하게 캡슐에 넣은 것이다. 청국장을 찌개로 끓이면 주요 효소와 영양소가 파괴된다. 그러나 캡슐형의 경우 영양소 파괴나 냄새 걱정없이 어디서든 알약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전통식품 재현 차원의 연구가 아닙니다. 전통식품을 현대적 연구기법에 접목해 ‘재창조’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모든 학문은 실학(實學)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답게 청국장 맛도 강한 맛, 중간 맛, 약한 맛 등 세 가지로 개발해뒀다.
김교수의 ‘청국장 인생’은 지난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스트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선 그는 막상 자신의 연구가 국민건강에 어떤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고민의 밑바닥엔 그의 개인적 경험도 깔려 있었다. 폐기종을 오래 앓은 아버지와 췌장암, 비장암, 간암 등 세 가지 암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봐오면서 누구보다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
“암과 중풍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현대의학은 불치병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근원적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결국 올바른 먹거리가 건강의 필수요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암을 죽이려다 인체 전부를 망가뜨리기보다 암 발생 원인부터 없애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고민의 끝자락에 자연스럽게 닿은 게 식품영양학자들이 ‘기적의 낱알’로 부르는 대두였고 그것도 소금을 쓰지 않고 대두만 발효시켜 만든 전통식품 청국장이었다. 특히 최소 두 달은 걸려야 하는 된장과 달리 청국장은 2, 3일 후면 금방 먹을 수 있고 다른 식품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런 그도 연구에 뛰어들기 전 청국장을 먹어 본 기억은 단 두 번밖에 없다. 20대에 한 번, 30대에 한 번. 그것도 한 번은 먹고 나서 토하기까지 했다.
김교수는 호주머니 속에 콩을 넣어 다니며 밤낮으로 청국장 연구에 매달렸다. 삶은 대두에 볏짚을 군데군데 꽂아 발효시키는 재래식 숙성법 대신 발효에 필요한 순수한 균주만을 토양에서 분리하고 이 균주를 대두에 인공접종해 마침내 자신만의 청국장을 만들어냈다. 하루 동안 불린 대두를 120도에서 20분간 삶은 뒤 식혀뒀다가 무균상자에서 균주를 접종하고 37도로 맞춘 인큐베이터에서 4, 5일간 균을 배양하면 냄새없는 생청국장이 완성된다.
“이거 보이죠? 콩에 끈적끈적하게 실같이 딸려나오는 거. 청국장의 효능은 대부분 이런 점질성 물질(폴리 글루타메이트)에서 나와요. 된장과 청국장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개발한 바실러스(Bacillus) 신(新)균주가 바로 이 점질성 물질을 늘리는 균이죠.”
김교수는 청국장 발효과정을 추적하던 중 자신이 개발한 균주를 접종해 만든 청국장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과 혈전용해 효과가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 면역증강 효과가 뛰어난 고분자 핵산의 활성기능이 기존 청국장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국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아보려 스스로 청국장 위주의 식단을 짜 체험해본 결과 변비개선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덕분에 한때 75kg에 달하던 몸무게가 1년 만에 65kg로 줄어들어 다이어트 효과도 거뒀다. 그는 지금도 일반인들이 먹기 꺼리는 생청국장을 실험실과 연구실에 보관해두고 1주일에 2, 3회 30g씩 정기적으로 떠먹는다. 자연히 그의 가족도 청국장 예찬론자가 됐다. 아내(36)는 물론 8, 6세 된 그의 두 딸도 청국장 찌개 정도는 너끈히 먹을 정도다.
김교수는 ‘청국장 먹기 운동’도 펴고 있다. 청국장을 음식에서 하나의 문화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개설한 그의 홈페이지(http://chungkookjang. com)의 접속건수는 현재 2만건을 넘어섰다. 청국장 인터넷 동호회원만도 600명. 김교수는 그들과 함께 청국장에 대해 토론하며 제조법 및 먹는 법, 청국장의 탁월한 성인병(암 및 뇌줄중) 예방효과를 알리고 있다. 그 덕분일까. 그의 청국장 사랑에 대한 네티즌의 호응은 뜨겁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분말형과 캡슐형 청국장을 좀 팔 수 없느냐” “냄새 없는 청국장을 구한다” “청국장을 아파트에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등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일일이 답변 글을 올려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청국장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그가 개발한 청국장을 상품화해 사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의도 잇따르고 있지만 김교수는 “돈에는 미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지난해 4월 ‘바실러스 리케니포미스 비1균주 및 이의 이용’에 관한 특허를 출원하긴 했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국민건강에 맞춰져 있다. 학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새 청국장을 개발하고 그 유익한 효능을 알리는 일일 뿐 제품 개발은 산-학 협동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때문에 정식으로 상품화되기 전까지 자신의 청국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지 못하는 점이 그로서도 조금은 아쉽다.
“앞으로 주부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청국장 교실을 열고 전국 순회 강연, 관련 세미나를 개최할 생각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서 청국장을 알려야죠. 일본인들이 낫도(納豆·청국장과 비슷한 일본 전통식품)에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도 온 국민이 청국장을 즐겨먹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아직도 청국장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단지 냄새뿐인가.
김교수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한 네티즌은 얼마 전 그의 청국장 사랑에 이런 향기로운 찬사의 메시지를 띄웠다.
‘전통식품을 아끼는 건 민족정신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