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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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소녀들의 애틋한 심리

  • 입력2006-01-31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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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투성이 소녀들의 애틋한 심리
    10대 시절이란 흔히 언제나 돌아가고픈 ‘햇빛 찬란했던 날들’로 묘사되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결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 쉴새없이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있어 ‘성장기’란 길고 어두운 터널을 혼자서 통과해야 하는 형벌이 되기도 한다. 입시제도에 짓눌린 채 사회가 원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눈과 귀와 입을 꽁꽁 막아야 했던 우리들에게도 10대 시절이 그리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라도 무사히 터널을 빠져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별안간 눈앞을 가로막는 검은 차단기로 길이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된 채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불운한 청춘들도 있다.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는 정상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힌 상처투성이 소녀들의 치유와 성숙에 관한 이야기다.

    아스피린 한 통과 보드카 한 병을 한꺼번에 들이킨 17세의 소녀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은 응급실에 실려간 뒤 ‘자살미수’ 판정을 받고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는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자살 기도를 부인하지만 ‘인격경계 혼란장애’라는 병명이 붙여져 클레이무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또래 소녀들을 두려움과 경멸의 눈으로 지켜보던 케이슨은 어느새 순수한 비이성의 세계에 동화되고,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인다.

    방안에 틀어박혀 아빠가 사온 치킨만 먹어대는 ‘파파 걸’ 데이지, 화상으로 흉한 외모를 갖게 된 폴리, 탈출과 귀환을 반복하며 끝내 요양원을 떠나지 못하는 리사 등과 함께하면서 바깥세상을 잊어 가던 케이슨은 그녀를 바깥세계에 다시 합류시키려는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와 충돌하며 고통스럽게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정신병원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1975년 밀로스 포먼 감독이 만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있다. 잭 니컬슨이 주연한 이 영화가 정신병원을 무대로 제도와 폭력에 대한 저항정신, 자유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투쟁을 다룬 사회 고발성 영화라면 ‘처음…’은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심리 드라마다. 영화는 성장기 소녀들의 통과의례의 아픔을 선연하게 그리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타인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나지막이 속삭인다.

    서른의 나이에도 여전히 청춘영화의 상징 같은 깊은 눈망울의 배우 위노나 라이더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안젤리나 졸리 등 여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볼 만하다. 특히 섹시하기 그지없는 입술을 가진 안젤리나 졸리는 몽롱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클레이무어 소녀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관객의 시선까지 꽉 붙잡는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지만, 매력적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남성관객들 역시 본전생각은 안해도 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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